흙길을 걷고 여름 내음을 맡고. 꼬릴 흔들고 좋아하는 게 느껴지고. 여느 반려견과 다를 게 아무것도 없다. 개농장에서 죽을뻔했던 베라가 비로소 살아가고 있다./사진=산책을 너무 잘해 흐뭇한 남형도 기자
무성한 녹음에 파묻혀 여름을 킁킁거리며 맡던 개. 이름은 베라. 계절의 절정을 알리는 울창한 쓰르람이 매미 소리에 콸콸 청량하던 계곡 물소리. 오감을 자극하던 여름의 질감. 응당 호기심이 가득할 거였으나 재촉하지 않고 발맞춰 걷던 개. 돌아간다고 했을 때 떼도 안 쓰고 가만히 따라와 다시 견사로 들어가던, 착한 개.
모르는 이가 봤다면 평범했을 산책에 마음이 몹시 일렁였던 건, 개가 겪은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였다.
인천 계양산 개농장의 옛날 모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좁은 뜬장. 이런 곳에 갇혀서 음식물 쓰레기나 먹으며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사진=아크 보호소
이리 산책을 잘하는 개인데, 그 좁은 곳에 갇혀서 얼마나 나오고 싶었을지. 잘 살아가기 위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몸을 옆으로 기댄다, 쓰다듬어 달라고
호의가 가득한 개들의 눈빛. 죽이는 인간도 있으나, 살리는 사람도 있단 걸 알게 되었다는듯./사진=남형도 기자
3년 만에 아크 보호소 개들을 만났다. 아래 견사 애들부터 살펴봤다. 매일 고생하며 돌보는 보호소 직원이 이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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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 이름이 쓰여 있어요. 색깔별로 해뒀는데요. 처음 오시는 분들도, 만져도 괜찮은 애들이 녹색 이름표에요. 소심한 애들이 노란색이고요."
위쪽 견사에 있는 아크 보호소 개의 모습. 덩치만 컸지, 아주 순둥순둥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쓰다듬는 걸 이리 좋아하고. 계속 꼬리를 흔들고. /사진=남형도 기자
바람 쐬어주고 얼음 주던 이들
아크 보호소에 봉사와서 밥을 주는 봉사자 정소희씨. 유독 눈에 밟히는 애들이 있어, 여기에 계속 오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혜영씨가 개들에게 줄 물을 콸콸 담으며 말했다. 2020년 11월부터 보호소 봉사를 하고 있다. 큰 강아지 보면 움찔했는데 이리 귀엽고 순할 줄 몰랐다고. 평생 여기서 살다 끝나는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입양도 가고 견사도 넓어지고 희망이 보여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돌보던 애들이 좋은 가족 만나 잘 지내는 걸 보면, 진짜 엉엉 운단다.
제빙기를 들여와 시원한 얼음물도 줄 수 있게 됐다. 더 나은 돌봄이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사진=남형도 기자
깨끗한 물 대신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걸 먹고 살았을 개농장 개들. 이리 좋아하는 데도, 그렇게만 줬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간식 앞발에 껴서 먹고, 걷고, 사랑받고
무더위에도 보호소 개들을 돌보기 위해 모인 봉사자들. 살리기 위해 땀흘리는 것도 개의치 않던, 더없이 좋은 사람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느라 견사 안에 처음 들어갔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움직였다. "도도야, 단테야, 가르텐아." 그리 이름표를 보고 반갑게 부르면서. 쓰다듬어주고, 두 팔 가득히 안아주었다. 여느 개보다 더 순했고,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신문지를 깔아주러 몸을 낮췄을 때, 베라가 다가와 얼굴을 핥아주었다. 예쁘고 따뜻하고 보드라워 행복해졌다.
아이들이 제일 신난 시간은 역시 '간식' 먹을 때였다. "간식줄까?"란 말만 들어도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다가가 하나씩 건네줬다. 소중하게 물고 가더니 앞발에 껴서 와그작와그작, 맛나게도 먹었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이리 소중한 생명이 한순간에 사라질뻔했다고. 그게 말이 되느냐고. 이 시간을 살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바깥에 나와 걸어다니는 시간. 그러다가도 들어가자고 하면 묵묵히 들어가는 착한 개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는 그를 유독 마음 쓰는 이가 있었다. 봉사자 정소희씨였다. 구석에 웅크린 메르테스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가갔다. 조심스레 어루만져 주었다. 소희씨는 "원래 산책을 아예 못했는데, 몇 번 데리고 나오니까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며 "빨리 입양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눈에 밟힌다고, 그래서 계속 오게 된단다.
고통받는 동물, 시민의 힘으로…"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좋은 가족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만이 가득하다. 여기 오는 이들의 진심이 다 그랬다./사진=남형도 기자
거기엔 381명의 시민들이 모여 연대하고 있었다. 개농장 개들의 힘듦, 고통, 아픔에 공감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이다. 조직도 체계적으로 잘 구성돼 있다. 기획 위원 열 명이 중심을 이끌고 있다. 외국계 회사원, 약사 등 다 자기 일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부 단위엔 후원을 이끄는 팀, 펫페어팀 등도 있다.
해외 입양을 가서 가족을 만난, 아크 보호소의 개들. 식용견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사진 속에서 환히 웃는 개가 분명히 말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언제 죽을지 몰라 늘 조마조마하던 개가, 비로소 맘 편히 낮잠을 잔다./사진=아크 보호소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 받고 있어요. 이들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시민 힘밖에 없습니다. 이 기사를 보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게 뭘지 더 고민하고 시야를 넓혀주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기자의 반려견 똘이한테 하는 것처럼 몸을 낮춰서 놀자고 해봤다. 함께 놀자고, 꼬릴 흔들며 신나하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사진=남형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