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선 전 한국정책학회 부회장
악동 복서 타이슨의 명언이다. 이런 복싱 경기 상황을 국가의 예산, 즉 나라살림 계획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지방자치단체부터 중앙부처, 기획재정부와 국회 예산 관료까지 대한민국 엘리트 공무원이 총동원돼 만든 나라살림 계획인데 어이없이 한 방 독하게 맞는 상황이 설마 발생할까? 필자의 대답은 예스다.
정부 예산은 세수입 및 부담금 등 세외수입의 총수입 부분과 행정·국방·복지 및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등 각종 사업비의 총지출 부분이 유기적 연계를 가지면서 구성되는 나라살림 계획서다. 한때는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고자 총수입 범위 내에서 총지출을 제한하는 소위 양입제출(量入制出)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지금 재정 여건에서는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용어가 됐다. 이젠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전쟁 상태에서나 발행해야 한다는 국채 발행이 안 되는 해를 상상하기 어렵게 됐다.
비록 세수를 추계한 공무원들의 체면은 많이 구겼지만 지난 2개년의 초과 세수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원래 예상치 못했던 돈이 생겼을 때 기쁨은 배가되지 않던가? 경제가 기대했던 것보단 좋다는 방증이고, 추가 재원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정치인들은 선심을 쓸 수도 있기에 또한 좋다. 안 쓰고 그대로 남기면 연도 말에 세계잉여금으로 처리해 나랏빚을 갚을 수 있어 국가재정이 건전해진다. 물론 2개년간 발생했던 초과 세수는 대부분 추가경정예산의 재원으로 쓰였다.
야당은 여러 이유를 들어 시종 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 대책과 수해복구를 위한 추경이 시급하다고 한다. 분명 최근 가계부채 상황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들어 은행권, 제2금융권, 대부업체 연체율의 상승 추세가 가속화됐다. 총부채상환비율(DSR·총금융부채원리금/연간소득)이 70% 이상인 차주가 299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책이 필요하다면 당사자인 대출기관의 채무조정이 먼저다. 만기나 금리 등을 통해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키우는 자구 조치가 우선이다. 민간의 대차관계 영역에는 국가재정이 쉽게 들어가선 안 된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도 그렇고, 국민 혈세 정서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재해복구를 위한 추경도 그렇다. 우선 예비비를 사용하고 관련 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게 먼저다.
또 누적되는 적자재정이 초래하는 유동성 위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거 2년간 100조원을 넘는 초과 세수 중 40조원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만들어 낸 부동산 시장의 거품과 관련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올해 세수의 급감은 부동산 시장의 빠른 냉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계속 돈을 풀고 유동성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자산시장의 거품현상이 반복되고, 결국 감내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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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지난 수년 동안 추경의 일상화로 재정의 여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다. 스위스 국가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의 '재정'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2018년 22위였지만 올해는 40위로 18계단이나 하락했다. 재정수지 악화와 국가채무 증가에 따른 결과이다. 포크배럴 정치(pork barrel politics)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선심성 예산의 유혹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재정 건전성을 위해 긴축재정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정치적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 한때 예산심의 과정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예산 관료로서 국가재정을 걱정하는 연구자의 관점에서 그런 바보스러운 정파의 주장을 좀 더 자주 듣고 싶다.
홍형선 전 한국정책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