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할 의사 없다" 병원 옮겼는데 하지마비…대법 "배상 책임"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3.07.30 09:00
글자크기
= 서울 서초구 대법원. 2015.8.20/뉴스1  = 서울 서초구 대법원. 2015.8.20/뉴스1


환자가 병원을 옮기도록 하면서 충분히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지 않은 병원에 책임을 묻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환자 A씨가 충남대병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4년 10월2일 허리통증으로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정형외과 전공의 B씨는 MRI(자기 공명 영상법)검사를 시행한 후 A씨의 증상을 '요추 4-5번 척추관 협착증'과 '좌측 추간판 탈출증'으로 진단했다.



B씨가 "나흘 휴일이라 담당교수 회진이 없고, 입원을 해도 수술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A씨는 "일단 집 근처 정형외과로 입원해 증상이 나빠지면 다시 진료를 받으러 오겠다"고 답한 뒤 병원을 나와 동네병원에 입원했다.

A씨는 10월4일부터 통증이 심해져 다리에 마비증상이 나타났다. 이에 다시 이 대학병원에 내원해 흉추 9번과 12번 사이의 경막외 혈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하지마비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게 됐다.



A씨가 처음 해당 대학병원에서 받은 MRI 판독결과엔 '흉추 12번부터 요추 1번에 걸친 척추 경막외 혈종, 척수 압박 중등도 이상'이라고 기재돼 있었지만, 전원조치 당시 B씨는 '응급환자 전원 의뢰 및 동의서'에 이 내용을 넣지 않았다.

이에 A씨는 B씨가 환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며 해당 대학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당시 수술이 아닌 전원조치를 한 것은 진료방법의 선택에 있어 합리적 범위 안에 있어 과실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B씨가 의사에게 요구되는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척수 경막외 혈종은 신경학적 증상이 발생한 후 12시간 이내의 수술을 받지 않으면 치명적이고 영구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며 "환자에게 신경학적 이상소견이 나타나면 신속히 수술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세밀한 경과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B씨는 영상의학과의 판독 없이 요추 MRI를 자체적으로 확인하면서 A씨에 대한 상당량의 혈종을 진단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A씨의 상태에 비춰볼 때 B씨가 전원조치를 할 때 척추 경막외 혈종 등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전원 병원 의료진이나 A씨나 보호자에게 설명했는지 등을 판단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