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해줄게" 나오면 쐈다…고립된 섬 잔혹한 테러 [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23.07.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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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 백색 테러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1년 노르웨이 테러범 브레이비크가 총을 든 모습/사진= 게티이미지·노르웨이 2011년 노르웨이 테러범 브레이비크가 총을 든 모습/사진= 게티이미지·노르웨이


2011년 7월 22일 오후 3시 25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에 큰 폭발음이 들렸다. 사제폭탄을 이용한 테러였다.

총리실을 비롯한 여러 부처의 건물이 파손됐고 7명이 사망, 19명이 다치는 피해가 났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범인은 유유히 자리를 떠 오슬로 북서쪽 30km의 한 섬으로 향했다.

노르웨이의 집권당이던 노동당의 청년캠프 행사가 열리던 우퇴이아 섬이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없이 배가 유일한 탈출수단이던 섬에서 범인은 캠프 참가자 한 명 한 명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대테러부대가 출동, 진압에 나선 끝에 범인은 투항했다. 그러나 한 시간 반 가량 총기 난사로 수백명이 죽거나 다친 참사가 벌어진 뒤였다.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노르웨이 테러 사건이다.

대체 누가, 이슬람? 틀렸다
노르웨이 당국과 세계는 처음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의심했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벌어진 지 10년, 서방과 이슬람권 갈등도 지속됐다. 하지만 범인은 뜻밖에 노르웨이 남성이었다.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Breivik)다. 1979년 오슬로에서 태어난 그는 노르웨이 극우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우파 성향의 극단적 생각을 강화했다.

당시 테러 역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이민과 다양성에 우호적인 노르웨이 노동당을 노린 걸로 드러났다. 그는 '2083:유럽독립선언'이란 글을 온라인에 공개하고는 범행에 나섰다.

총리실과 노동당 행사장이 표적이었단 점이 주목됐다. 수사 결과 그는 총 3차례 총리를 역임하고 노르웨이에서 존경받는 그룬틀란 전 총리를 노린 걸로 드러났다. 그런데 범인이 우퇴이아 섬에 도착했을 때 그룬틀란 전 총리는 일정을 마치고 섬을 떠난 뒤였다. 이에 그는 남은 참가자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우퇴이아 섬의 테러 추모공원/사진= 노르웨이 웹사이트우퇴이아 섬의 테러 추모공원/사진= 노르웨이 웹사이트
경찰제복 입어 속수무책, 단독범으로 역대급 피해
준비는 치밀했고, 실행은 잔인했다. 그는 폭탄제조를 위해 화학비료 등 각종 재료를 사들였다. 총기도 장만했다. 노르웨이 경찰 제복과 가짜 배지도 인터넷에서 구입했다. 이는 희생자를 늘리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경찰제복을 입은 그가 섬에 들어갈 때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희생자들도 처음엔 경찰로 보이는 그를 경계하지 못했다. 그는 심지어 숨어있던 학생들에게 '보트가 구조하러 왔으니 나오라'고 유인했고, 밖으로 나온 이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대테러부대는 헬기를 미처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배를 이용해 섬에 도착하면서 대응 시간도 오래 걸렸다. 수사 결과 그가 사용한 총알에 니코틴이 들어있던 걸로 나타났다. 과다한 양의 니코틴이 폐를 통하지 않고 혈액으로 직접 들어가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그의 잇단 테러로 총 사망자만 77명, 부상 319명이 나왔을 만큼 가공할 범죄였다. 한 사람이 일으켰다고 하기에는 인명 피해 규모가 너무 컸다. 실제로 2016년 프랑스 니스에서 대형 트럭이 인파를 덮친 테러(사망 86명)가 나기 전까지 브레이비크는 단독범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경우였다.

한국에서도 이 사건은 크게 주목됐다. 브레이비크가 한국과 일본을 단일민족이라서 범죄가 적고 보수주의, 민족주의가 강한 이상적 국가로 봤다는 점 때문이다.



가석방 신청하고 나치식 인사법
수사당국은 브레이비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냈다. 다음해인 2012년 8월 24일 그는 징역 2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형량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2020년 9월, 가석방을 신청했다. 그리고 복역한 지 10년이 된 지난해 2월1일 노르웨이 지방법원은 이 가석방 신청을 기각했다.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별로 뉘우친 게 없다는 이유가 컸다. 브레이비크는 가석방 심리에 죄수복 대신 검은 정장을 입었는데 오른팔을 앞으로 뻗는 나치식 경례로 인사를 해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비록 대규모 테러집단이 아니라 극단적 생각을 가진 개인도 혐오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켰지만 그후 10여년간 유럽의 극우정치세력이 점차 기반을 넓히고 테러도 종종 일어났다.



증오가 이렇게 힘이 센 걸까. 그러나 사람들은 증오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입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당시 노르웨이 총리는 희생자 추도식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가 현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다.

또 우퇴위아 섬의 한 생존자는 CNN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 저토록 큰 증오를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 했을 때 얼마나 더 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테러가 벌어진 우퇴위아 섬은 현재 추모공원으로 운영 중이다.
(로이터=뉴스1) 김정률 기자 =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21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68차 나토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2.11.2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로이터=뉴스1) 김정률 기자 =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21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68차 나토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2.11.2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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