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미국의 대중국 제재 여파는 한국이 고스란히 맞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은 지난 6월까지 11개월 연속 감소했다. 정보통신산업(ICT) 전체로 범위를 넓혀 봐도 올해 상반기 중국향(向) 수출액이 36.5% 줄었다.
그렇다고 중국과 거리를 두기도 어렵다. 중국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최대 수출국이자 생산기지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 쑤저우엔 패키징 공장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생산 공장, 다례엔 낸드플래시 공장, 충칭에 패키징 공장을 가동 중이다.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 전체 낸드 생산의 40%가량을, 우시 공장은 SK하이닉스 D램 전체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책임진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대중 제재와 무관하게 꾸준히 중국 시장 공략을 지속해 왔다. 지난달 마이크론은 7700여억원을 중국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마이크론 제품의 구매 중단을 명령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엔비디아도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 콜레트 크레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잇달아 미국 정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중단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에 압력도 행사할 전망이다. 인텔과 퀄컴의 CEO들은 이주 중 워싱턴에 모여 정부 인사들과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정에 대해 논의한다. 이들 기업은 중국 시장 위축이 얼마나 큰 타격이 될 것인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중국의 공급망 배제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지 2주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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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의 중국 매출 비중은 20~30%를 웃돈다. 퀄컴은 지난해 매출의 64%를, 인텔은 27%를 중국에서 거뒀다.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강조해도 기업들은 쉽사리 중국 시장을 놓을 수 없다. 자국 기업의 피해를 모를 리 없는 미국이 오히려 ASML이 있는 네덜란드와 소부장이 강한 일본 등 다른 나라에 중국 제재를 더욱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반도체를 자급할 능력이 없는 중국도 미국에 기대야 하긴 마찬가지다. 중국 해관(세관)과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의 반도체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5% 줄었지만, 자체 생산량은 0.1% 증가에 그쳤다. 미중의 반도체 물밑 '밀회'로 인한 피해는 정작 엉뚱한 한국이 뒤집어쓰게 생긴 셈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 기업은 제재 대상이 아닌 칩 판매를 확대하거나, 설비 투자를 늘리면서 중국 시장 공략을 지속하고 있다"라며 "'차이나 리스크'는 상존하지만, 중국 시장을 한시에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국내 기업도 현명한 출구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