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藥 주도권 다시 쥔 바이오젠·에자이, 국내사 반색 이유는

머니투데이 정기종 기자 2023.07.0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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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 공동개발 '레켐비' 美 FDA 정식 승인…근본적 치료제 가능성 인정에 주목
시장 외면받은 아두헬름 대비 부작용 위험 크게 낮춰… EU·韓 허가도 재도전

치매藥 주도권 다시 쥔 바이오젠·에자이, 국내사 반색 이유는


바이오젠·에자이의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정식 승인을 획득했다. 이로써 두 회사는 앞선 아두헬름의 실패를 딛고 다시 한번 치매 시장 주도권을 쥐게 됐다. 멀찍이 앞서 나간 양사 행보에도 추격자인 국내 개발사들은 오히려 반색하는 분위기다. 선도 품목 출시로 인한 해당 분야 자본시장 관심 제고와 각 사 개발 및 허가 전략에 대한 가이드라인 확보, 관련 생산·진단 기업들의 수혜 기대감이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레켐비는 6일(현지시간) 미국 FDA로부터 정식 승인 허가를 획득했다. 지난 1월 신속승인 절차를 통해 의료현장 처방이 승인된 이후 약 반년만이다. 지난달 FDA 자문위원회로부터 만장일치로 받아낸 정식허가 권고가 이변 없이 승인으로 이어졌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원인 물질로 꼽히는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를 분해하는 기전의 치료제다. 기존 치료제들이 증상 완화에 그친 것과 달리, 처음으로 경증 또는 초기 환자의 인지 기능 저하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인정받았다. 18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18개월간의 임상 3상에서 위약 대비 인지 저하를 27% 늦췄고,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제거 역시 확인한 것이 근거다.

특히 양사가 지난 2021년 승인받고도 높은 부작용 가능성에 실패를 맛본 아두헬름 대비 뇌부종 부작용을 4분의 1 수준으로 낮춘 점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아두헬름은 당시 부작용과 효능 논란을 이겨내지 못하고 미국 내 처방 확대 제한과 유럽 허가 실패 등에 봉착하며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바이오젠과 에자이는 알츠하이머 근본적 치료 가능성을 높인 레켐비를 통해 오는 2020년 8조2500억원에서 2026년 12조원 규모로 전망되는 글로벌 알츠하이머 치료제 시장 중심에 다시 서게 됐다. 미국은 물론, 유럽과 캐나다, 중국, 일본 등에서 허가를 위한 심사가 진행 중이다. 국내 식품의약안전처에도 지난달 허가 신청이 접수됐다.

'치매정복 가능성에 눈길→개발사 투자 유치 동력'…관련 CMO·진단 분야 수혜 기대감도
치매藥 주도권 다시 쥔 바이오젠·에자이, 국내사 반색 이유는
국내는 10여개사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도전 중이다. 대표적인 업체는 아리바이오와 젬백스앤카엘이 꼽힌다. 아리바이오는 세계 최초의 경구용 치매 치료제 'AR1001'의 한국·미국 임상 3상, 젬백스는 'GV1001'의 국내 3상 허가 및 미국 2상 단계에 있다. 다만 두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국내사들은 임상 1~2상 단계로 허가 도전까진 시간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사들은 레켐비의 허가에 기대감을 보인다. 불가능의 영역으로 보였던 치매 정복이 실마리를 찾은 만큼 추가 치료제 개발에 대한 관심에도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관심은 곧 자본 유치와 직결된다. 줄곧 자금조달 부담을 안고 치료제 개발에 도전 중인 바이오벤처에겐 필수적인 동력이다.


업계 관계자는 "누적된 국산 신약 개발 고배에 자본시장 역시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신약 개발사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난도 높은 치매 치료제 개발은 상대적으로 외면받기 쉽다"며 "레켐비의 행보가 시장 안착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국내 개발사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우호적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레켐비의 불확실성 역시 후속 개발사들엔 이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대다수 국산 신약의 전략은 세계 최초 지위를 노리기보단, 형성된 시장에서 일정 부분의 비중을 취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발 앞서 시장에 진출한 품목의 존재가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특히 레켐비는 아두헬름 대비 낮은 부작용 위험에도 여전히 안전성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 10%대 뇌부종 부작용을 비롯해 임상 과정에서 발생한 3명의 사망자가 배경이다. 명확한 한계에도 허가를 얻어낸 레켐비는 후발 주자들의 개발 및 허가 전략에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이밖에 2025년 완공을 앞둔 5공장을 통해 알츠하이머 치료제 수주계획을 밝힌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알츠하이머 진단 사업을 보유한 피플바이오, 퓨쳐켐, 듀켐바이오 등 치료제 개발사는 아니지만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 기업들의 수혜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에자이 역시 혈액을 기반으로 알츠하이머를 진단하는 C2N과 협력했으며, 레카네맙 3상 과정에 이를 활용했다"며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 확인을 위한 진단 기술 보유한 국내 기업들을 향한 관심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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