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했습니다. 빗물받이 전담관리자 분들이, 청소를 매일 열심히 하신 덕분에, 빗물받이가 너무 깨끗해서요. 최대한 더러운 걸 찾아다닐까, 쓰레기가 그나마 많았던 것만 넣을까 싶었지요. 그러다 생각을 고쳤습니다. 애써주신 덕분에 깨끗해진 거잖아요. 잘 관리하면 이리 된다고요. 있는 그대로 쓰고, 외려 그 노력을 기리자고요. 전과 후가 이리 다른 걸요./사진=남형도 기자
장동석씨(59)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1조 조장의 자신만만하던 말. 불안해진 난 상하좌우를 부단히 두리번거렸다. 아니, 이게 아닌데. 더러운 빗물받이를 찾고 있었다. 담배꽁초가 꽉꽉 낀, 애쓰지 않아도 어디서나 자주 보이던 그것. 그걸 청소하러 왔건만, 대체 왜 다 이리 깨끗한 걸지.
장씨의 유일한 조원, 과묵하게 빗물받이를 살피던 김현덕씨가 슬며시 웃으며 말을 보탰다.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1조 조장 장동석씨(오른쪽)와 기자(왼쪽). 빗물받이 쓰레기를 함께 치우는 중./사진=형광조끼 나도 입고 싶은데, 생각했던 남형도 기자
"에이, 또 왜 그러시나. 하하하."(동석씨)
'이런, 이번 주 체헐리즘 기사는 망한 걸까.'
5월 15일, 금천구 '빗물받이 전담관리반'의 출범
서울 금천구청 앞에 모인, 빗물받이 전담관리자 분들과 송선훈 금천구청 치수과 주무관(오른쪽)./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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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계기는 이랬다. 지난해 여름, 강남역이 시퍼렇게 잠겨 물바다가 됐던 밤. 이를 본 한 중년 남성이, 몸을 숙여 무언가 번쩍 들었다. 꽉 막힌 '빗물받이'였다. 그러자 종아리까지 찼던 물이 쑥 빠졌단 목격담이 전설처럼 돌아다녔다.
지난해 여름, 서울 강남역이 물에 잠겼을 때 나타나 빗물받이를 들어 물이 빠지게 했던 '슈퍼맨'. 그러나 영웅이 나타나는 걸 우연에 기댈 순 없고, 과거로부터 배워야 했다. 평소에 관리해야 한단 걸./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들 중에 장동석씨와 김현덕씨가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수십 년 일하며 잔뼈 굵은 동석씨. "잡부야말로 실제 현장 일을 다 하며,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외치던 사람. 특히 자신이 지어낸 서울 영등포 6층짜리 건물을 지나갈 때면 몹시 뿌듯해했다. 현덕씨는 벽돌을 쌓는 '조적' 일을 40년 해왔다. 살려고 매일 버텼던 두 사람의 관절은, 세월에 풍화되어 더는 무게를 견딜 수 없게 됐다.
정말 일하고 싶던 이가…빗물받이를 퍼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끌고 가며 빗물받이를 살피는 동석씨. 대화할 때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갈 때도, 하나하나 다 살폈다./사진=남형도 기자
"내년이면 환갑인데, 일자리 경쟁이 아주 치열해요. 지원하는 것마다 떨어졌어요. 많이 울었지요. 두 달을 방에서 울고 나오지도 않았다니까요."
빗물받이를 치운지 얼마 안 됐을 때, 5월 무렵 초기에 상태가 이랬다. 쓰레기가 엄청 많았다./사진=금천구청
동석씨는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1조 조장. 현덕씨는 조원. 둘은 이리 만났다. 5월 15일, 마침내 금천구 가산동, 독산 3동, 4동 등 몇 개 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금천구 안에 있는 빗물받이만 약 1만 5000개. 보통 일이 아녔다. 그리고 처음 마주했던, 오래 쌓인 빗물받이 안 쓰레기는 참혹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쓰레기를 왜 이리 마구 버렸을지. 뚜껑을 열고, 쓰레기가 가득한 내부를 보고, 들어가 일일이 파냈을 게다. 짐작만으로도 노고의 무게를 안다./사진=금천구청
"지렁이는 또 얼마나 많았어요. 바퀴벌레랑."(현덕씨)
오르락내리락, 하루 평균 2만 보…다가가니 '하수구' 악취가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두 분과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기자. 고약한 하수구 악취가 빠짐없이 올라와 오래 머물기 쉽지 않았다./사진=송선훈 금천구청 주무관
동석씨의 자전거 바퀴가 도르르르. 부드럽게 구르는 소릴 따라 발을 맞췄다. 자전거 손잡이엔 아이스박스가 걸려 있었다. 그 안엔 얼음물 세 통이 들어 있었다. 아이스박스 작은 주머니엔 일자 드라이버가 꽂혀 있었다. 뒷좌석엔 쓰레기봉투를 실었다. 두 사람은 나와 대화하면서도, 스치는 빗물받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프로다웠다.
빗물받이만 집중해서 보니, 정말 많단 걸 실감했다. 서울 시내에 55만7000개가 있다고 하니. 오르락내리락, 좁다란 길을 빠른 속도로 함께 걸었다. 그러면서 매일 이 길을 걸었을 이들을 짐작했다. 동석씨는 "하루 평균 2만 보 정도는 걷는다"고 했다. 구석구석, 안 닿는 곳이 없었다.
빗물받이를 들어 쓰레기를 치우려는 김현덕 빗물받이 전담관리자./사진=금천구청
낙엽과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담배꽁초 쓰레기가 범벅이 된 빗물받이가 보였다. 동석씨가 "치우고 가자"고 했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으니 쓰레기가 더 잘 보였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하나씩 주워,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좁은 틈의 쓰레기는 일자 드라이버로 일일이 파냈다.
그러느라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깊숙한 곳의 하수구 내음이 코에 훅하고 들어왔다. 묵직하고 습한 악취였다. 뚜껑을 열고 파냈다면 더 괴로웠을 거였다. 그 일을 사람이, 곁에 있는 이들이 빠짐없이 한 거였다.
개똥 봉지 놓여 있고…냄새난다며 '장판'으로 덮어놓고
차라리 바닥에 버리는 게 낫겠다. 치우는 게 훨씬 더 힘들어진다. 담배꽁초 제발 좀 아무데나 버리지 마세요./사진=금천구청
"여기 시장 골목은 빗물받이 쓰레기가 정말 심했는데요. 이젠 깨끗해요. 다 파내가지고요. 어디 하나 지저분한 데가 없네요! 금천구는 여러 자치구 중 제일 깨끗하다, 그렇게 얘기해주세요. 하하하."
개똥을 여기에 버린 인간은 대체 누굴지.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 허릴 이리 깊이 숙여서 하나하나 줍고 있다. 모두가 못 봤을진 몰라도, 버린 자는 알 거다. 자기가 벌인 일이란 것,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소담한 공원에서 음료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는 빗물받이 전담관리자 두 분./사진=음료수를 쏜 남형도 기자
"비 오는 날, 물 빠지는 것 보면 속이 뻥 뚫리지요"
청소라고 해서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뚜껑을 열고 안에 있는 걸 줍고 쓰레기 봉투에 버리고. 그러니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함부로 버리지 않으면 된다. 여긴 쓰레기통이 아니므로./사진=금천구청
그래서 그저 있는 그대로 잘 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이리 물어보았다.
"비 많이 오는 날에요. 빗물받이가 깨끗하니, 콸콸 물 빠지는 거 보면 좋으시지요?"(기자)
"아우, 그럼요. 속이 아주 시원하지요. 막혔던 제 몸 여기저기가 내려가는 것 같아요. 깨끗해서 보기도 좋고요."(동석씨)
"아무렴요. 조장님이 잘해주신 덕분에요."(기자)
"하하하하하, 다른 조도 깨끗할 거예요. 엄청 고생들 했거든요. 정말요."(동석씨)
하수구 냄새가 올라온다며 겹겹이 쌓아 빗물받이를 막아둔 사람.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 물이 빠질 수 없게 돼 문제가 생긴다./사진=남형도 기자
끝으로 시민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다. 너무 상식적인 얘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기에 꼭 남긴다.
"쓰레기 많이 버리지 말고, 특히 담배꽁초 빗물받이에 넣지 말고요. 자기 집 앞은 자기가 쓸었으면 좋겠습니다."
찬물을 따라 마시는 장동석 조장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따라가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다. 얼음물은 필수였다./사진=남형도 기자
오가며 만나는 공원. 거기 소담한 그늘이 가장 좋은 쉼터였다. 쉬고 있는데, 동석씨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쉼이 끝나고 걸으며, 그에게 무슨 이야길 했느냐고 물었다. 동석씨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길어서, 돈을 더 버는 이와의 대화였단다. 눈빛에 아쉬움이 묻어있기에 그에게 물었다.
"더 일하시고 돈을 더 버는 게 좋으신 거지요?"(기자)
"그럼요, 당연한 말씀이지요. 집에 빨리 가서 뭐 하겠어요. 물가는 물가대로 너무 올랐고요."(동석씨)
그리고 그가 이리 덧붙였다.
"자식이 둘이에요. 둘 다 대학생이고요. 아르바이트는 다 하는데…."
그제야 알았다. 나보다 20년을 더 살아 무릎이며 허리가 욱신거린다고 했음에도, 그의 발걸음이 몹시 치열했던 이유를.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도 평지처럼 성큼성큼 가던 사람, 아니 두 자녀의 아버지./사진=남형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