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영아,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주민번호의 역설"

머니투데이 강주헌 기자 2023.07.0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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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명예교수 인터뷰 "출생신고시 보호자 주민번호 기입이 유령 영아 사고 발생시키는 원인"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출생 미등록 아동, 이른바 '유령 영아' 사망·유기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현행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문송천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다. 문 교수는 출생신고를 할 때 반드시 보호자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산모 등이 신고를 기피하고 유령 영아 사건이 발생한다며 주민등록번호의 대안으로 무작위 숫자 형식의 개인식별번호를 제안했다.

문 교수는 6일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출생신고 기피와 같은 일은 한국에서만 발생한다"며 "주민번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출산과 관련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족쇄가 되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주민번호의 역설"이라고 밝혔다.



문 교수는 "외국에서는 출생·사망 신고의 경우 증인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증인 자격이 없는 가족은 신고 못하게 돼있고 증인자격이 있는 병원이나 장례식장만 법적으로 신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에 대해서도 "병원 측에 남(환자)의 개인정보를 억지로 기입하게 만드는 구조"라며 "이를 잘 알고 있는 의료계가 협조하기 어렵고 출생아 등록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출생통보제)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의료기관은 산모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아이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 성별 등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해야 한다. 출생신고와 관련한 책임을 기본적으로 일선 의료기관이 지도록 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출생·사망통보제는 주민번호와 같은 민감정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외국에서 병원 측을 통한 출생·사망통보가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며 "외국처럼 병원이 성명과 출생주소지만 기입하면 되는 통보제라면 통보를 안 해줄 이유가 없지만 병원 통보서 자체에도 주민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들어가 실질적으로 동시에 신고까지 대행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주민번호는 폐지하는 게 정답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주민번호 제도를 개편할 때 여권번호나 전화번호처럼 수시 변경 가능한 무작위 숫자를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그 전에는 주민번호 제도 때문에 부작용과 반발이 계속될 것" 말했다.


문 교수는 한국 최초의 전산학 박사로 잘 알려졌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세계 최초로 '클라우드(CLOUD)'라는 개념을 정립했으며 컴퓨터 관련 최초 한글 교과서인 '컴퓨터 개론'(1979)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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