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재벌들 기후위기 나몰라라…'22조 큰손' 성공회가 칼 뺐다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3.07.0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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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정유사, 탄소 감축 평가서 100점 만점에 10점대…성공회 "올해 안에 투자 정리"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쉐브론 지사 출입문에 기업로고가 새겨져 있다./AFPBBNews=뉴스1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쉐브론 지사 출입문에 기업로고가 새겨져 있다./AFPBBNews=뉴스1


기후변화로 인해 지난 3일 글로벌 평균 기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세계 정유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도 기후위기 문제를 사실상 등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130억 파운드 규모 자산을 운용하는 영국 성공회는 석유기업 투자를 전면 정리하고 있다.

지난해만 3800억 달러 벌어들인 석유재벌들…탄소감축 노력은 고작 '10점'
지속가능한 경영을 목표로 하는 국제연합체인 세계벤치마킹연합(WBA)과 비영리 투자연구단체 CDP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엑슨모빌, 쉐브론, BP, 로열더치 쉘, 토탈에너지스, 코노코필립스, 에니 등 세계 7대 정유업체들은 파리기후협약에 따른 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전부 10점대를 기록했다.



평가는 해당 기업에서 발간하는 경영보고서와 탄소배출량 수치, CDP 자체 집계 자료 등을 토대로 이뤄졌다. WBA는 △탄소감축 목표치 목표달성 기간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있는지 △탄소감축 계획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는지 △저탄소 기술·전략 연구개발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지 △탄소감축 계획을 실제로 이행하고 있는지 △앞으로도 계획을 지켜나갈 것으로 보이는지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겼다고 밝혔다.

그 결과 7대 정유기업 중 미국계 쉐브론이 10.3으로 최하점을 기록했다. 최고점을 기록한 프랑스계 토탈에너지스도 19.4점에 불과했다. 쉐브론에 대해 WBA는 "이익 대부분을 탄소 배출량이 높은 산업분야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 산업을 더욱 확대해나가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며 "2028년 이후부터는 탄소감축 목표치를 전혀 수립하지 않고 있다. 쉐브론이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할 의도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토탈에너지스에 대해서는 "저탄소 산업 분야에서 창출하는 수익이 전체의 2%에 불과하다. 저탄소 R&G 기술개발 투자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업활동을 보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긴 했으나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정한) '기온 1.5도 이하 상승'을 지키기 위한 감축량에는 미치지 못했다"며 "현재 추세를 2027년까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WBA는 "7대 정유사는 지난해 3800억 달러(약 493조6580억원)를 벌어들였지만 저탄소경제를 위한 투자는 오히려 위축됐다"며 "저탄소경제 이행을 위해 2030년까지 최소 6000억 달러(약 779조5800억원) 투자가 필요하나 전혀 채택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감축 계획을 밝힌 기업은 이번 조사대상에 포함된 99개 기업 중 29곳뿐"이라며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임에도 대다수 기업들은 관련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다"고 했다.

파리협약 이행 이미 빨간불…성공회 "에너지 기업들, 저탄소경제 이행 책임져야"
유럽연합(EU)이 운영하는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위원회(C3S)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1~11일 지구 평균 지표면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으나,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기온이 상승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파리협약 합의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


이에 세계 증시의 큰손으로 꼽히는 영국 성공회는 올해 안으로 정유업체들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성공회는 기부금 103억 파운드(약 17조129억원), 연금 32억 파운드(약 5조2855억원)를 운용하고 있다. 성공회는 지난달 22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성공회 내 투자협의체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설정한 기준을 충족한 석유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며 "올해 안으로 이들에 대한 투자를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FT는 "성공회 측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사업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투자를 끊겠다며 석유회사를 압박해왔다. 올해 말까지 석유, 가스업체 11곳의 지분을 전량 매각할 방침"이라며 "이미 2021년에 20개 회사를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성공회 최고위 성직자이자 석유업계에서 11년 간 재무책임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저스틴 웰비 캔터버리 대주교는 "기후위기가 우리의 터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신의 피조물들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라며 "에너지 기업들은 저탄소경제로의 이행을 책임져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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