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M엔터테인먼트
이 글의 주인공인 샤이니의 종현이 과거 샤이니를 위한 곡을 못 만드는 게 아닌 '안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Odd Eye'를 증거로 제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아이돌 음악을 아래로 보는 평론가들은 더러 있겠지만 더는 케이팝으로 통칭되는 아이돌 음악을 비평의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용감한 사람은 없다. 가요는 음악도 아니라고까지 했다는 사람이 '케이팝의 첨병'으로서 구석구석 활약하는 씁쓸한 현실만 빼면 이제 케이팝은 대중음악 평론가라면 싫어도 알아야 할 현재의 세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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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샤이니는 늘 최고였음에도 모두의 최고가 될 순 없었다. 데뷔 때 10대, 20대 여성 팬들이 대다수(지금은 20~30대가 됐을 여성 팬들)였던 그들의 인기와 영향력이 '안방'까진 이르지 못했다는 말이다. 무슨 얘기냐면 빌보드 앨범, 싱글 차트 1위를 밥 먹듯 하는 BTS가 지상파 뉴스와 각종 시사 매체를 통해 다뤄지며 세대 불문 가족 모두의 대화에 오르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된 반면 샤이니는 그렇진 못했다는 얘기다. 이는 언젠가부터 케이팝의 마케팅 포인트가 '국위선양'이 되면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데뷔와 동시에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음에도 당시 '국가대표'급으로 떠오르던 원더걸스와 빅뱅의 아성에 맞서지 못했을 때부터 경험한 이 난감한 분위기는 샤이니에게는 조금 억울한 일이었을 수 있다. 실제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 같은 세계적인 거물 아티스트들이 거쳐간 애비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s)에 아시아 최초로 입성하는 등 케이팝의 글로벌화를 위한 멍석을 차근차근 깔아온 자신들이 시쳇말로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간' 탓에 빌보드 차트 정상을 내리 차지한 후배 보이밴드에게 국민적 인지도를 양보해야 했던 건 쓰라린 아이러니로 보였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실력으로 운을 개척해 온 샤이니에겐 너무 가혹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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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샤이니는 기죽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갈 길을 정했고 알았으며 또 계속 걸었다. 2017년의 비극으로 큰 위기를 맞았던 때에도 그들은 세 장의 미니앨범을 더한 6집을 보란 듯이 내놓았다. 2년 여 뒤엔 'Heart Attack'과 'CØDE' 등이 실린 7집 'Don't Call Me'로 샤이니는 팀의 롱런을 선언했다. 그리고 다시 2년 여가 흘러 8집이 나왔다. 여덟 번째 앨범 'Hard'는 샤이니의 빛이 꺼지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15년 차 보이밴드가 트렌드로 트렌드를 덮어버리는 이 드문 광경은 샤이니 이후 아이돌 그룹들이 음악을 놓지 않았을 때 어디에 이를 수 있는지, 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등대처럼도 보인다. 레트로 비트, 트렌디 텍스처가 힙합의 그늘 아래 하나 되는 'HARD'와 이들의 강점인 '10X'의 그루비 펑키 스타일은 그 등대의 쨍쨍한 라이트다. 그룹 보컬의 아름다운 화음과 개인 보컬의 안정된 발성을 바탕으로 음악 장르 간 이상적인 합의를 이끌어내 온 이들에 걸맞게 앨범은 그런 식으로 서두르지 않고 범작 이상의 영역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긴다. 'Identity'에서 'Sweet Misery'와 '불면증'을 지나며 더 견고해지는 그 여정은 음악으로도 팀으로도 레전드가 되고 싶은 멤버들의 예술가로서 욕망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주장하는 듯 들린다.
아이돌 그룹의 생명은 길어야 7년이라는 업계 기준을 샤이니는 두 배로 연장시키며 깨버렸다. 콘텐츠(음악)와 플랫폼에 대한 꾸준한 고민으로 트렌드에서도 마케팅에서도 밀리지 않으면서 이들은 15년 동안 케이팝을 대표하는 보이밴드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마이클 잭슨과 디앤절로, 넵튠스를 좋아했던 고 종현의 "너무 큰 부재"는 분명 그룹의 큰 손실로 남아 있지만, 또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활동 중단에 들어간 온유 없이 세 명만 콘서트와 8집 활동을 해나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8집을 다 듣고 나면 그 모든 걱정이 기우가 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거다. 샤이니는 열심히 하지 않는 법을 모른다." 이제 팬들은 민호의 다짐을 믿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