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배상법, 보호대상은 국민이다[MT시평]

머니투데이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2023.06.2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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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국가배상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그 손해를 배상하게 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 법령을 잘 숙지하고 지켜야 할 공무원이 이를 위반해서 국민에게 손해를 가했다면, 고의든 과실이든 당연히 그 손해는 배상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배상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가배상법의 제정 취지가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법원이 매우 엄격하게 국가배상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법관이나 법원공무원이 법령을 위반하는 실수를 했다면, 공정한 법집행을 믿은 국민들이 느낄 실망감 등을 고려할 때 국가의 책임이 보다 넓게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역시 실상은 반대다.

대법원은 "법관의 재판에 법령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더라도 바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이 정하고 있는 직무수행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권한을 행사했다고 인정할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며, 이것이 '확립된' 입장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달 1일 대법원 판결에서도 그 '확립된' 법리가 다시 확인되었다(대법원 2021다202224). 사법보좌관이 경매절차와 관련하여 배당표원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가압류권자를 배당에서 제외하고 배당표원안을 작성했는데, 이 경우에도 단순히 그와 같은 결과만으로는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 공무원의 실수로 국민에게 발생한 피해에 법원이 스스로 면죄부를 준 결론 자체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 과정도 납득하기 어렵다. 위 사건에서 원심인 고등법원은 사법보좌관의 과실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는데, 굳이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까지 '확립된' 판례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결론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특히나 과실에 의한 책임이 문제되는 사건에서 누구에게 과실이 있는지, 손해액은 얼마인지 등과 같은 사실관계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원심 판결이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잘못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지도 않고 그저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심 판결이 '사법보좌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단했다.


물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공무원이나 판사도 업무를 잘못 처리할 수 있다. 그 때마다 그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전체 공무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공무원들이 소위 '복지부동'을 하며 소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우려도 있으므로, 국가배상법이 정한 것처럼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이상 공무원에게 최종적인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손해를 입은 국민에 대한 적절한 배상은 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결국 국민이 피해자인데, 왜 공무원이 처음부터 부당한 목적을 갖고 위법한 법집행을 했다거나 직무수행에 관한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한 경우에만 국가배상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국가배상법은 국가를 면책시키기 위한 법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어야 한다.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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