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나는 신당…금태섭·양향자도 "도전", 이번엔 다를까

머니투데이 차현아 기자, 박상곤 기자, 김지영 기자, 오문영 기자 2023.06.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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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중도 정당의 꿈(종합)

편집자주 총선을 앞두고 양향자 의원, 금태섭 전 의원이 각각 신당을 띄운다. 모두 '제3지대'에 해당하는 중도정당을 지향한다. 좌우 정치양극화와 거대양당의 권력투쟁에 지친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든다는 복안이다. 모두가 염원하지만 정작 성공하긴 어려운 중도정당. 과연 이번엔 다를까.

금태섭·양향자에 류호정까지?...그들은 왜 '신당'에 도전하는가
양향자 의원 /사진=권혜민양향자 의원 /사진=권혜민


"우리는 제3지대, 진보와 보수와 같은 기존 정치 용어를 안 쓰려고 한다. 우리를 기존의 틀이 아닌 백지 상태에서 봐달라."

26일 '한국의 희망'이라는 신당 창당을 위한 발기인 대회를 앞둔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최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이 같이 말했다.



양 의원은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상무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반도체 전문가로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에 영입됐지만 지금은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결국 창당이란 길을 택했다. 그 이유를 묻자 양 의원은 "양대 진영에 갇힌 절망적 정치를 타파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양 의원은 정치도 기술 기반 플랫폼으로 혁신할 수 있다고 봤다. 양 의원의 신당이 '세계 최초 블록체인 정당'을 표방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돈 봉투 같은 것이 날아다니지 않으려면 (정치도) 투명한 플랫폼으로 다 바꿔야 한다"며 "나쁜 정치에서 좋은 정치로, 특권 정치에서 과학 정치로, 진영 정치에서 생활 정치로 건너가야 한다. 익숙했던 기존 정치의 모든 것과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에 신당 창당 바람이 불고 있다. 거대 양당의 대결로 점철된 정치권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면서 중도 무당층만 30%에 육박한다. 이 표심을 끌어안기 위해 창당을 추진 또는 검토 중인 그룹만 정치권에 약 10곳이 있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류호정·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약 10개 그룹, 창당 목표로 '꿈틀'

'억' 소리 나는 신당…금태섭·양향자도 "도전", 이번엔 다를까

금태섭 전 의원은 오는 9월 쯤 창당해 내년 총선 때 수도권에서 30석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금 전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과의 통화에서 "유권자들이 기존 정치에 대해 극도의 염증을 느끼고 있다. 지난 대선이 과거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비호감 선거였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 이유"라며 "상식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지금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은 유권자들 사이에 신당 때문에 표가 분산돼 상대편 정당이 이기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별로 없다"며 "2012년 이후 유권자들이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를 번갈아 가면서 표를 줬지만 아무런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신당 창당에 실패해왔던)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금 전 의원은 다음 달 4일 광주 지역간담회를 시작으로 각 지역을 돌며 당 비전과 정책을 가다듬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장혜영·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조성주 전 정의당 정책위부의장이 이끄는 '세 번째 권력' 역시 신당 창당 가능성이 제기되는 그룹이다. 세 번째 권력은 출범 선언문에서 양당 밖에 있는 제3시민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의당 지도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이 현재 정의당이 추진 중인 혁신 재창당 논의 과정에서 이탈해 아예 새로운 정당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결은 다르지만 손혜원 전 민주당 의원도 김남국 무소속 의원과 호남 기반의 신당 창당을 시사한 바 있다. 일각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신당을 창당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어느 진영이든 총선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무소속 출마 대신 창당을 선택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촛불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 출신 인사나 전·현직 국회의원, 특정 협회 간부, 원외 정치 모임 등이 활발히 세력화를 꾀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치권 내에 신당 창당이라는 흐름 정도는 형성됐고, 다들 어딘가에서 삼삼오오 개별적으로 모여있는 단계"라며 "양당의 신뢰가 계속 깎여가면 어느 시점을 계기로 이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합쳐져 힘이 붙을 수 있다"고 했다.

◇"신당, 현행 소선거구제에선 성공 어려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당사 브리핑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당대당 통합 제안 거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 대표는 "새로운 당을 창당할 때 세웠던 양당 구도 타파라는 명분을 잊지 않고 어려울 줄 알지만 선거에 임하겠다"며 "국회의원을 한번 더 하는 것보다는 한국 정치가 바꿔야 한다는데 당의 의견을 합쳤다"고 밝혔다. 2016.3.6/뉴스1 <저작권자 (C)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당사 브리핑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당대당 통합 제안 거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 대표는 "새로운 당을 창당할 때 세웠던 양당 구도 타파라는 명분을 잊지 않고 어려울 줄 알지만 선거에 임하겠다"며 "국회의원을 한번 더 하는 것보다는 한국 정치가 바꿔야 한다는데 당의 의견을 합쳤다"고 밝혔다. 2016.3.6/뉴스1 <저작권자 (C)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러나 신당들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정치 세력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있지만 이를 실현할 인물과 비전이 없다면 표가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국민의당 열풍'을 이끈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달리 현재 창당을 선언한 인물들의 지역 기반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신당의 성공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한 지역구에서 1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다. 유권자들의 '사표 방지 심리'를 자극해 거대 양당에 표가 몰리게 만드는 제도다.

21대 총선 직전인 2019년 국회는 소수정당을 우대한다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들었지만 위성정당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당선자 수를 제외한 뒤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지 못해도 일정 기준만 넘기면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어 소수정당에 유리한 방식이다. 준연동형은 47석의 비례대표 전체가 아닌 30석에만 이를 적용한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비례성을 높이겠다며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도 두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든 뒤 흡수통합하는 꼼수를 부렸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여야가 이도저도 합의를 못할 것 같으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이전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데, 병립형은 준연동형보다 기존 정당에 더 유리한 제도"라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대 정당에 대한 국민 불만은 굉장히 크지만 현실적으로 (창당을 준비하는 이들이) 김종필 총재와 안철수 의원, 정주영 회장 정도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1등을 뽑는 현재 소선거구제 기반의 선거제 아래에선 제3당이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공짜 창당은 없다"...정당 하나 만들려면 얼마 들까?
'억' 소리 나는 신당…금태섭·양향자도 "도전", 이번엔 다를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선 신당 창당 바람이 불고 있다. 거물급 정치인부터 2030세대 정치 신인까지 대안정치를 표방하며 제3지대로 몰려들고 있다. 다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새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지역 별로 수천 명의 당원을 모아야 하는 등 각종 문턱을 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게는 수십 억원의 비용, 막대한 시간과 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창당에 뛰어든 이들 중 실제 창당까지 성공하는 이들 절반에도 못 미치는 건 그래서다.

신당 창당의 첫 단계는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 설립이다. 이를 위해선 중앙당 발기인대회부터 열어야 한다. 200명 이상이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해 취지, 명칭 등을 정하고 대표자 등을 선임해야 한다. 이후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한 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결성 신고를 하면 첫 단계는 끝난다.

두 번째 단계는 시·도당 창당이다. 현행법상 최소 5개 시·도당 창당이라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각 시·도당의 법정 당원수는 1000명 이상이어야 한다. 각 시·도당은 100명 이상이 발기인 대회를 개최해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한 뒤 관할 시·도 선관위에 등록하면 된다.

지역별로 100명 이상을 모으는 게 이름이 낯선 신생 정당 입장에선 가장 까다로운 과정으로 꼽힌다. 한 정당 관계자는 "이름도 모르는 정당에 가입해달라고 하면 뭐 팔러 온 사람이나, 이상한 사기꾼처럼 취급받기 십상"이라며 "1만 명 정도 만나면 100명 정도 모이는 수준"이라고 했다.

창당 마지막 단계는 중앙당 창당 등록이다. 새 정당의 중앙당은 창당대회를 개최해야 하는데, 대회 5일 전까지 일간지에 집회 개최를 광고로 홍보해야 한다. 창당대회에서는 정당의 정식 명칭과 강령·당헌·당규를 만들고 대표자 등을 선임해야 한다.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신생 정당은 중앙선관위에 정식 정당으로서 등록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창당에 성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총선 과정에서 창당을 준비하던 그룹은 100여 개에 달했지만 실제 창당에 성공한 경우는 40여 곳에 불과했다.

창당에 총 비용은 얼마나 들까.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창당 경험이 있는 정치인, 정당인들을 취재한 결과 창당에 가장 적게 든 경우는 1억원 미만이었다. 물론 현장을 뛰어다니며 당을 홍보하고 당원을 모으기 위한 유무형의 노력을 종합하면 사실상 그 이상에 달한다는 게 창당 경험자들의 목소리다.

창당에 드는 비용은 주로 △사무실 임대료 △ 행정·홍보 등 운영비 △인건비 등으로 구성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정당은 최소 5개의 시·도당을 가져야하고 시도당에는 실제 사무실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임대료 역시 창당 비용으로 적지 않게 들어간다. 창당인이 현역 의원이라면 후원금 일부를 창당 준비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정치 신인이라면 후원금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이 밖에 창당 대회를 열기 전 해야 하는 일간지 광고 역시 수백 만원 가량이 든다.

든든한 후원자가 없는 경우 창당 비용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갹출해 마련한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시대전환은 조정훈 대표를 포함한 5~6명이 약 4개월 정도 걸려 창당했는데 모두 사비로 충당했다. 당시 서울 중앙당사 사무실 임대료 월 200만원과 7~8명에 달하는 행정·회계 직원 1인당 월급 약 200만원, 공직선거법 등에 따라 창당대회 전 창당 소식을 알리는 일간지 광고 비용 등을 모두 개인이 부담했다. 시대전환 관계자는 "시도당 당원을 모으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행사를 다녔는데 여기에 든 교통비와 숙식 비용 등은 각자 그때그때 냈다. 정확히 얼마가 들었는지도 추산이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같은 기간 창당한 기본소득당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기본소득당 관계자는 "창당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10명 가량이었는데, 창당을 위해 각자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과 실업급여, 대출까지 동원했다"고 했다. 다만 기본소득당의 경우 오프라인 행사와 광고를 최소화하고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한 타깃 광고에 집중했다. 기본소득이라는 정책 의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주로 2030세대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다만 "광고비로만 매달 1000만원이 들어갔다"며 "노출수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어 광고효과를 계속 보면서 광고 집행 여부를 결정했다"고 했다.

만약 오프라인 행사에 집중한다면 비용은 크게 늘어난다. 바른미래당 창당에 참여했던 한 정당인은 "초기에 정당 CI(로고) 디자인과 홍보에만 5000만원 정도, 발기인 대회 등 현장 행사를 위한 대관료, 행사 홍보용 문자 발송에만 수천만원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는 신당 창당 과정에서 현직 의원 영입을 꾀하는 이유기도 하다. 현역 의원의 경우 지역 내 시도당 사무실은 물론 보좌진 등 정치활동에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역 내 유력 인사의 데이터베이스(DB) 등까지 확보하고 있어 창당에 필요한 당원을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직 국회의원과 유력 정치인 등 '거물급' 인사들이 추진한 신당의 경우 창당 비용은 수억 원대다. 일례로 유승민 전 의원이 바른미래당에서 분당한 현직 의원들과 만들었던 '새로운보수당'은 최소 2억1500만 원에서 최대 4억500만 원까지 창당 비용을 책정한 바 있다.

1997년 이인제 전 의원을 중심으로 만든 국민신당 역시 창당에만 23억8200여만원(현 당사 임차료 2억7600만원, 새 당사 임대료 6억 8600만원, 중앙당 창당대회와 신문광고 등 9억 8000만원 등)이 들었다. 2002년 정몽준 전 의원이 창당한 국민통합21은 창당준비비로 16억 2100만원을 썼다고 공개했다. 2003년 창당한 열린우리당도 창당준위원회 발족부터 새 당사 개소식까지 모두 13억원(사무실 임대 보증금으로 6억3000만원, 사무실 운영비 2억 6000만원 등)을 사용했다.

스타급 인물없이 정책과 소신만으로도 당을 만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권에서 사회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러 정치 주체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정치권 내 논의도 풍성해질 수 있어서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기본소득당의 경우 온라인 중심 정당 가입으로 창당 비용이 적게 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금액도 사실 누구나 창당을 결심하기에 적지 않은 비용"이라며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당 창당을 위한 보조금이나 국민 누구나 희망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후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치후원바우처' 등 다양한 제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억' 소리 나는 신당…금태섭·양향자도 "도전", 이번엔 다를까
"정주영·문국현 신당을 기억하시나요"...'제3지대' 잔혹사
대한민국 정당 역사에서 제3지대 정당은 총선과 대선을 가리지 않고 등장해왔지만 매번 거대 양당에 흡수되거나 소멸을 반복했다./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대한민국 정당 역사에서 제3지대 정당은 총선과 대선을 가리지 않고 등장해왔지만 매번 거대 양당에 흡수되거나 소멸을 반복했다./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대한민국 정당 역사에서 제3지대 신당은 때로 돌풍을 일으키며 거대 정당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중심으로 탄생했던 국민의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도 신당은 두 차례 이상의 총선을 이어가지 못하고 기성 정당에 흡수되거나 해산되는 운명을 맞았다.

◇정주영에서 안철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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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정치인 가운데 제3지대, 중도를 표방했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안철수 의원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김한길 의원 등이 중심이 돼 2016년 창당한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38석(지역구 25석, 비례대표 13석)을 차지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2017년 안 의원이 대선에서 패배한 후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합당했다. 이후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한 안 의원은 국민의당을 재창당했지만 2020년 21대 총선에서 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고, 2022년 20대 대선에서 안 의원이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하면서 국민의당은 국민의힘에 흡수됐다.

국민의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3지대 신당은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1997년 이인제 전 의원이 창당한 국민신당은 같은 해 대선에서 이 전 의원이 3위로 낙선함과 동시에 붕괴했다. 2002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창당했던 국민통합21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쇠락하며 해산했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1992년 2월 통일국민당을 창당했다. 당시 통일국민당은 창당한 지 한 달 만에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31석의 의석을 확보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14대 대선에 출마한 정 회장은 김영삼·김대중 후보에 이은 3위에 그치며 낙선했다. 이후 대통령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정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자 통일국민당은 당사를 폐쇄하며 정치 활동을 접었다.

'기득권 정치 타파'를 외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가 창당한 창조한국당은 문 전 대표의 깨끗한 이미지에 힘입어 17대 대선에서 5.8%의 득표율로 4위를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3석으로 명맥을 유지하다 2009년 문 전 대표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며 해산했다.

◇유권자 사표 방지 심리, 중·대선거구제가 해법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4차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 심사를 위한 전원위원회에서 어린이들이 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23.4.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4차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 심사를 위한 전원위원회에서 어린이들이 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23.4.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3지대 신당 잔혹사가 이어지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유권자들의 사표 방지 심리를 들었다. 2명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지 않는 한 사라지기 어려운 문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다수의 유권자가 거대 양당을 싫어하지만, 선거가 다가오면 내 표의 영향력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에 투표할 땐 거대정당으로 간다"며 "국민들이 제3지대 신당에 기대거나 표를 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제3지대를 추진했던 사람들은 국민들보다 개인의 영달을 많이 추구했다"며 "선거가 끝나면 (당이) 그대로 가는 게 아니라 언제 누구랑 합당할지 어떻게 단일화를 할지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니 그다음에 어떤 제3당이 출현해도 신뢰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현행 선거제도가 변함없을 거란 전제 아래 전문가들은 제3지대 신당 성공을 위한 조건으로 '비전'과 '인물'을 제시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3지대라고 다 동일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다"며 "30% 가까이 있는 (무당층) 분들은 하나로 보면 제3지대 같지만, 그 안에 색깔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당층을) 조직화하고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그 색을 조율하며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며 "가치에 대한 공감과 그 가치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의 진정성이 뒷받침될 때 조직화해 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인지도·영향력 있는 사람이 없다면 누가 표를 주겠느냐"며 "인물 인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3지대 신당) 준비는 어렵다"고 말했다.

"진보도 보수도 아냐"...마크롱같은 '중도 대통령', 한국서 가능할까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야외정원에 마련된 승리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극우진영의 마린 르펜을 꺾고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 당선인은 당선 일성으로 강한 유럽연합 건설 입장을 재확인하고 프랑스가 테러와의 싸움의 최전선에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C) AFP=뉴스1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야외정원에 마련된 승리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극우진영의 마린 르펜을 꺾고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 당선인은 당선 일성으로 강한 유럽연합 건설 입장을 재확인하고 프랑스가 테러와의 싸움의 최전선에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C) AFP=뉴스1
2017년 5월7일은 세계 정치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프랑스 중도 신당 '라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된 날이어서다.

거대 양당이 아닌 제3지대 중도 정당은 대통령을 배출하기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속설이었다. 그 어려운 걸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마크롱이 해냈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이 있긴 했다. 극우 성향의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마린 르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중도 표심을 결집시켰다.

이때까지 비주류 정당이던 앙마르슈는 마크롱의 대통령 취임 이후 일약 집권여당으로 군림했다. 다음 총선에 앙마르슈는 하원 의석의 60% 이상을 휩쓸며 압승을 거뒀다. 프랑스에서 2000년대 이후 이어진 사회당과 대중운동연합의 거대 양당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제3지대' 중도 정당 출신의 대통령.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 성향의 정당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잡고, 이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나라를 이끄는 것이 과연 한국에선 가능할까.

'억' 소리 나는 신당…금태섭·양향자도 "도전", 이번엔 다를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거대양당 체제 아래에서 이게 가능하려면 중도 성향의 주요 정당이 출현해 다당제가 구축되고, 이 중도 정당 중심으로 대선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는 게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즉, 집권시 연립정부가 구성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선 연립정부 구성이 의회내각제 국가만큼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물론 불가능하진 않다. 과거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 대표적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머니투데이 the300(더300)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제라고 해서 또는 의원내각제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면서 "물론 의원내각제가 되고 (선거제도를) 비례로 하면 제3·4당이 더 많아지겠지만, 대통령제라고 다당제가 안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억' 소리 나는 신당…금태섭·양향자도 "도전", 이번엔 다를까
해외 사례를 보면 대통령제 아래에서도 다당제로 의회가 운영되고 연립정부가 구성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0년 발간한 '대통령제 정부의 초당적 내각 구성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인용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9년까지를 기준으로 전체 대통령제 국가 가운데 64.3%에서 대통령 소속 집권당이 의회 소수파였고, 이 가운데 56.6%가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허석재 입법조사관은 보고서에서 "행정부·내각의 구성 및 운영에 있어서 의회의 지지가 요구될수록 대통령은 집권당을 통해 의회에서 다수파를 구축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권력자원이 많고 권한 범위가 클수록 원내 정당으로서는 정부에 참여해 자원을 배분받고자 하고, 정치인은 각료로 경력을 쌓고자 할 유인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제3지대 정당의 성공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제3지대가 기반을 갖추기 어려운 최대 원인으로 현행 선거제도를 꼽았다. 한국은 전체 의석의 80% 이상을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뽑는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하나의 지역구에서 단 1인만이 공직을 차지할 수 있는 탓에 거대 양당의 형성을 유도한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A 아니면 B'라는 선택을 강요받는 셈이다.

대통령제 아래 다당제를 안정적으로 구축된 국가를 보면 대다수가 비례명부제를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남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칠레다. 칠레는 정당명부제를 쓰면서도 선거구당 2개 의석을 배정하는 2석비례제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특정 정당이 2개 의석을 모두 가져가려면 2등을 한 정당보다 2배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하는 셈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같은 소선거구 기반의 선거제도 아래에선 제3당이 버텨낼 재간이 없다"며 "비례적인 방식을 획기적으로 도입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 제도가 비례적으로 되면 제3지대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유권자에게) 생기고, 제3지대가 세력화하는 데 훨씬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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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대비 교섭단체 진입 장벽이 높다거나 정당 기율이 강한 점도 다당제가 형성되기 어려운 요건으로 언급된다.

한국은 전체 300석 중 20석, 6.6%가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이다. 반면 대표적 다당제 국가인 독일의 경우 하원에서 총의석수의 5% 이상이 되면 교섭단체를 구성한다. 현재 630석에선 32석부터다. 의석수로는 우리보다 기준이 높지만, 총원 대비 비율로는 낮다.

옆나라 일본은 교섭단체 대신 의원 2인이면 구성할 수 있는 '회파'가 있다. 위원회 위원 배정, 질의시간 등을 배분할 때 각 회파의 의원 숫자로 기준을 삼는다는 점에서 교섭단체와 개념이 유사하다. 캐나다 하원은 338석의 3.5%인 12석으로, 원내 5개 정당 중 3개가 교섭단체로 인정된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관련한 투표를 앞두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2023.4.2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관련한 투표를 앞두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2023.4.2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당의 기율이 높고 의원 자율성이 낮은 점도 정당 간 협력, 다당제 정착을 막는 요소로 거론된다. 소수정당 한 인사는 "높은 정당 기율은 양당제를 더 고착화한다"며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다른 정당에 비례대표를 주겠다는 생각은 해도 지역구 표를 주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의석을 확보해도 어느 정당의 2중대냐는 소리부터 나오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결선투표제와 같은 다당제를 유도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 결과 과반에 이르는 후보자가 없으면 투표 대상을 좁혀 다시 투표하는 방식을 말한다. 프랑스 의회·지방선거, 영국 런던시장 선거 등이 대표 사례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상원의원, 주지사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결선 투표제는 군소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사전에 당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어 표 결집을 용이하게 한다. 결선 선거를 앞두고 전개되는 거대정당과 군소정당의 협상 과정에서 군소정당 지지자들의 요구가 거대정당의 선거 공략에 반영될 여지도 생긴다. 허석재 입법조사관은 "결선투표제가 활용될 경우 당선가능성이 낮은 후보도 지지세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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