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위기의 한중관계와 중국의 가스라이팅

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3.06.21 02:05
글자크기
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간 전쟁은 계절요인으로 여름철에 많이 발발한다. 6·25전쟁이 그랬다. 올해로 정전 70주년이 된 6·25는 1941년 6월22일 독일의 소련 침공 연장선에 있다.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기 직전인 1939년 8월 스탈린과 맺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동서 양면전선 전쟁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히틀러의 가장 큰 패착이 되고 말았다.

최대 3000만명이라는 막대한 인명피해와 사회·경제적 손실에도 전승국이 된 소련의 스탈린은 김일성의 간청으로 군사장비를 제공하며 남한에 대한 무력침공을 허락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침공으로 인한 피해복구가 느렸을뿐더러 가공할 만한 원자폭탄의 위력을 드러낸 미군과 전장에서 직접 마주치는 것을 꺼렸기에 대규모 전투부대를 파병하지는 않았다.



대신 스탈린은 군사장비라는 당근 제공으로 마오쩌둥의 직접 개입을 부추겼다. 중국공산당(중공)으로서도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한 한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한 지역으로 진격하는 것이 못마땅하던 차였다. 중공은 이를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을 명분으로 그해 10월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 침공전쟁을 개시했다. 연인원 300만명이 동원된 중공군은 김일성을 패전의 문턱에서 구했고 1953년 정전협정으로 남북분단이 굳어진 덕에 그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23년 여름 현재, 과거에 비해 전면전의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남중국해에서 대만해협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전운이 감돈다는 우려가 크다. 역내 불안정의 핵심요인은 시진핑 시대 들어 강성 민족주의와 '결연한 국익수호 의지'로 무장한 중국이다. 이달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에서 중국이 미국의 양국 국방장관 회담 요청을 거절한 이유는 불문가지다. 올해 2월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침범 비행문제로 연기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번주 중국을 방문했지만 회담결과는 예상대로 신통치 않다.



중화주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의 눈에 한미동맹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국은 눈엣가시일 것이다. 역내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은 물론 여러 아시아 국가와 동시에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중국으로서는 "입 닥치고 있으라(불용치훼)"는 막말을 동원해서라도 상대의 기를 미리 꺾어놔야 한다. 어느 국가도 복수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야당 대표와 만남에서 "(미국에) 잘못된 베팅….(한국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말로 한중관계를 뒤흔든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무례한 입은 그래서 놀랍지 않다.

이 와중에도 중국을 방문한 일부 야당 의원의 주장대로 중국과 억지로 척을 져서도 안 되겠지만 노골적 내정간섭의 수위를 높이는 중국에 가스라이팅을 당해서도 안 된다. 정전 70주년, 수교 30주년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처한 한중관계 악화의 책임은 "항미원조는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망언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무시하는 시진핑 중국의 인식에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