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른동화' 논란 들여다보니.."각본 강탈"VS"계약 문제없어"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23.06.1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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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감독 측이 게재한 웹툰/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A 감독 측이 게재한 웹툰/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5월말 크랭크인 된 영화 '어른동화'에 대해 각본을 쓴 원작자가 촬영을 중단하라고 나서면서 논란이 불이 붙었다. 제작사(수작) '갑질'로 애초 약속했던 '입봉'을 하지 못했고 자신의 각본으로 본인 동의 없이 제작사 측의 일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는 게 원작자 측 주장이다.

16일 머니투데이 취재에 의하면 양측은 2년여간 분쟁이 심화되면서 이미 화해나 중재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제작사 측은 원작자 측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애초 계약대로 투자와 캐스팅을 마쳐 촬영에 들어갔고, 감독 권한은 원작자가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번 사건은 문제가 된 '어른동화' 뿐 아니라 같은 원작자가 집필한 별도 작품 '이미테이션(가제)'의 저작권과도 연계돼있어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양측 주장을 종합하면 A 감독은 2020년 10월 '어른동화'에 대한 '각본 및 감독 계약'을 영화사 수작과 맺었다. 그런데 1년여 뒤 제작이 늦어지면서 A 감독의 사정은 어려워졌다.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사업 당선으로 2억3000만원을 받았지만, 실제 제작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난해 영진위에 지원금을 반납했고, 생활고에 시달려 집이 가압류되는 등의 일을 겪었다.



A 감독은 2021년 10월 경 '어른동화'에 대한 불공정계약서 수정 및 해지를 내용증명으로 요구했으나 영화사 측은 감독을 할 의사가 있는지를 내용증명으로 되물었다. 이에 감독 측은 영화인신문고에 계약 불공정성을 따지고 판단하겠다고 답변했고, 이후로 양측 갈등은 고조됐다.

A 감독 측은 영화인신문고를 통해 아예 '어른동화'를 수작 측과 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의사표현을 해 사실상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사는 '어른동화' 이전에 감독이 집필해 먼저 함께 계약해뒀던 '이미테이션'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영화사 단독 명의로 저작권 등록을 했다.

'이미테이션'의 경우 '어른동화'보다 제작비가 3배 이상 들 것으로 예상돼 코로나 기간동안 제작이 미뤄졌던 상태라는게 A 감독측 설명이다. '어른동화' 관련 계약 이전에 먼저 '이미테이션'에 대한 '각본 및 감독 계약서'를 동일하게 작성했지만 이때만 해도 신뢰관계가 있어 감독도 저작권 등록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관계가 틀어지자 수작 측이 '이미테이션' 저작권을 등록한 것이다.


영화인신문고는 감독의 중재 요청에 분쟁중재회의를 열고 △'이미테이션' 저작권 등록의 수작 측 취하와 감독 명의 저작권 재등록 △'이미테이션' 새 계약 체결과 각본료 지급 그리고 새 계약 5년 계약기간 특정 △'이미테이션'에 대한 표준계약서에 준한 각본계약 2개월 이내 체결 △감독연출 포기에 따른 이익 추가 보장 △원작자의 '이미테이션'에 대한 단독 각본 크레딧 △'어른동화'에 대한 기존 계약 문서 해지 등이 담긴 중재결정을 양측에 통보했다. 문제가 된 2건의 각본 중 '이미테이션'에 대해선 재계약을 통해 계약관계를 명확히 한 뒤 적정 각본료를 감독 측에 지급하고 '어른동화'에 대해선 감독이 원하는 대로 계약을 해지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중재는 권고사항일 뿐 양측이 지키지 않아도 이를 집행할 강제력이나 법적 효력은 없다. 영화인신문고에서 '어른동화'에 대해선 계약 해지를 하란 중재를 했지만 제작사 측이 이에 따르지 않고 촬영을 강행해도 막기가 어려운 셈이다. 이미 영화사는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에 감독이 원치 않는 영화화를 막기 위해선 가처분신청 등 법에 호소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A 감독 측은 가처분 등의 절차는 시일이 오래 걸려 이미 촬영에 들어간 '어른동화'가 7월경 촬영이 종료되는 것을 막기는 현실적으론 어렵다고 보고 있다.

영화사 측이 제시한 수천만원의 각본료와 10%의 수익 지분에 대해서도 A 감독은 "영화계 매출과 수익 확정은 불투명해서 10% 수익 배분은 영화가 성공을 해 수익분기점을 넘더라도 영화사 측 정산에 따라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10% 수익을 챙겨준다는 것엔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영화와 드라마 각본작업 경험이 있는 한 전문가는 "창작자들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생각에 제작사가 제시한 계약 내용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계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미 계약한 내용을 뒤집는 건 거의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계약내용을 바로잡을 수 있는 법적 상식을 갖거나 사전에 전문가에 의뢰하는 절차를 거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영화계 뿐 아니라 출판이나 방송 드라마업계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면서 "창작자들이 권리를 지키려면 계약서에 함부로 서명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 소송을 많이 다루고 있는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도 "계약에 서명을 한 상태라 계약 내용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중재결정서도 지적한 것처럼 서명한 감독에게도 책임이 있고 계약금도 받은 상황이라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계약이 파기된다 하더라도 영화사 측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올 수 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수작 측은 "감독 측의 왜곡된 언론플레이로 피해를 입게 됐다"며 "소송을 비롯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란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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