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위안화를 쓸래?"… '킹달러'는 왜 흔들리나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23.06.2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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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화폐도 'G2' 시대 올까①
러-우크라이나 전쟁 후 고개 드는 탈달러화,
제재 반작용으로 "달러 의존 낮추자" 커져…
외환보유고 달러 비중 줄었지만 대체재 없어

편집자주 팬데믹 시기 강세를 띠던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는 중에,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탈'달러 움직임이 선명하다. 기축통화라는 달러는 과연 자리를 내줄까.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 파키스탄은 지난 4월 러시아의 저가 원유 1만톤을 위안화로 지불했다. 중국 시눅과 프랑스 토탈에너지는 지난 3월 최초로 액화천연가스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했다. 중국은 880억 달러 상당의 러시아산 석유, 석탄, 금속을 위안화로 사들였다. 인도도 아랍에미리트 화폐 디르함과 러시아 루블화로 석유를 구매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중국에 수출하는 원유 일부를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축통화로서 '킹달러'의 위상이 전 같지 않다. '석유는 반드시 달러로 사야 한다'는 페트로 달러 체제가 무너질 조짐이다. 페트로 달러 체제란 사우디와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석유거래를 달러로만 하는 대신 그 대가로 사우드 왕가가 미국으로부터 안보 우산을 제공받는 밀약이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이 협약으로 미국은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해왔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지난해 2월 국제 은행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킨 이후 오히려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탈달러화'(de-dollarisation)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이 줄고 국제 교역에서 달러를 이용한 결제도 감소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논의하는 나토 정상회의 중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를 G20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로이터=뉴스1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3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논의하는 나토 정상회의 중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를 G20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로이터=뉴스1
러시아 제재가 부른 '비동맹의 결집'…"달러 비중 낮추자"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공식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4분기에 20년 만에 최저치인 58%까지 떨어졌다. 20년 만에 최저치다. 유라이존 SLJ캐피털에 따르면 환율을 조정한 달러 비중은 47%로 더 떨어진다. 이 회사의 스티븐 젠은 로이터통신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6400억 달러에 달하는 금과 외환보유고의 절반을 동결한 데 따른 반응"이라고 밝혔다.



통상 중앙은행은 경제위기 시 환율을 지지할 필요가 있을 때를 대비해 비축자금을 달러로 보유한다. 통화가 달러보다 지나치게 약세를 보이면 미국 통화로 거래되는 석유 및 기타 상품이 비싸져 생활비가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촉진된다. 홍콩 달러에서 파나마 발보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통화가 이 같은 이유로 달러에 고정돼있다.

"대신 위안화를 쓸래?"… '킹달러'는 왜 흔들리나
하지만 국제 은행결제망에서 퇴출된 러시아의 사례는 미국의 비동맹국들에게 통화 다각화의 필요성을 새삼 상기시켰다. BNY멜론의 전략가 제프리 유는 러시아에 이어 각국은 "잘못된 편에 서게 되면(제재 대상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탈달러화는 중국에는 위안화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역외 외환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15년 전 거의 '제로'(0)에서 7%로 증가했다. 남미에서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달러 의존도를 줄이자고 제안하자 다른 국가도 호응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달러를 대체해 위안화 사용 방침을 천명했고 볼리비아와 우루과이도 합류하기로 했다.


"달러의 지위는 美국채 시장에서 나와"…대체재 없다
그러나 실제 탈달러화를 위해선 수출업체, 수입업체, 외환 거래업체, 채권 발행업체, 대출업체 등 거대한 네트워크가 잇따라 다른 통화를 사용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을 희박하게 본다.

"대신 위안화를 쓸래?"… '킹달러'는 왜 흔들리나
버클리대 정치경제학 교수인 배리 아이청그린은 로이터통신에서 달러의 기능 관련해 "모든 부분이 서로를 강화한다"며 "은행과 기업, 정부가 모두 동시에 행동을 바꾸도록 하는 메커니즘은 없다"고 말했다. BIS 데이터에 따르면 달러는 전 세계 외환 거래의 거의 90%를 차지하며, 2022년에는 약 6조6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모든 역외 부채의 절반가량이 달러화이고 무역의 절반이 달러로 청구된다.

또 은행예금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업들은 현금 대체 수단으로 국채를 사용하는데, 23조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시장은 안전한 자금의 피난처로 여겨져 달러 지위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가 간 통화 흐름을 추적하는 미국외교협회 연구원 브래드 세서는 "국채 시장의 깊이, 유동성, 안전성은 달러가 주요 기축통화인 큰 이유"라고 밝혔다.

미 국채를 대신할 만한 대안은 아직 없다. 독일의 채권 시장은 2조 달러 규모에 그친다. 기업들이 중국과 위안화로 거래할 수는 있어도 계좌개설의 어려움이나 규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거래 대금을 중국 국채로 재활용하긴 어렵다. 냇웨스트마켓의 신흥시장전략가 갤빈 치아는 이에 반해 "미 국채는 앱만 있으면 어디서든 거래할 수 있다"고 했다.

2020년 5월 서울 중구 외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안화를 확인하고 있다. 2020.5.28/뉴스1   2020년 5월 서울 중구 외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안화를 확인하고 있다. 2020.5.28/뉴스1
탈달러화 아닌 다극 체제로 자산 재편 가능성도
탈달러화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1년 달러-금 태환이 중단되면서 브레턴우즈 시스템이 막을 내리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조르주 퐁피두가 "탈달러화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달러 중심의 세계 질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국을 비롯해 달러 비중을 낮추려는 국가들도 탈달러화가 어렵단 사실을 모르지 않다.

브라질과 공동 통화 발행까지 준비한다는 아르헨티나에선 유력 대선후보가 "달러화를 국가통화로 채택하자"(하비에르 밀레이)고 제안하며 탈달러화 움직임을 무색하게 했다. 자국 통화(페소)를 없애는 대신 달러를 국가통화로 채택하는 방안을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

단 하나의 화폐가 달러의 후계자가 될 순 없더라도 대안이 많아지면 다극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없진 않다. 실제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다른 통화, 회사채, 부동산 같은 유형자산 등 다양한 자산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토스카펀드 홍콩의 상무이사 마크 팅커는 "이것이 바로 현재 진행 중인 과정"이라며 "(이런 맥락에서) 글로벌 시스템에서 달러의 사용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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