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 고양이' 찾는 이재용 재판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06.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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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思考) 실험 모습. 원래 이 실험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물리학의 불합리함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상자를 열기 전에는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 수 없는 중첩상태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지만, 양자중첩은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사진출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commons)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思考) 실험 모습. 원래 이 실험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물리학의 불합리함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상자를 열기 전에는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 수 없는 중첩상태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지만, 양자중첩은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사진출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commons)


지난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10시간 가까이 진행된 삼성바이오로직스 (819,000원 ▲1,000 +0.12%)의 회계부정 의혹 재판은 마치 양자역학에서 '슈뢰딩거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을 연상케했다. 그만큼 복잡난해하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그 내막을 잘 알면 또 그만큼 명징한 것이 없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물리학을 이해하는데 활용한 대표적인 사고(思考: 머리 속으로만 하는)실험이다. 밀폐된 상자 속 방사성 물질에서 방사선이 방출돼 센서에 감지되면 센서와 연결된 망치가 독이 든 유리병을 깨게 되고, 그로 인해 상자 속 고양이는 죽게 된다.

방사선 붕괴가 일어나는 양자 세계의 일이 현실의 고양이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이다. 1시간 안에 방사선이 방출될 확률이 50%일 때 1시간 후 고양이는 살아있을까 죽어있을까?



양자물리학의 결론은 이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죽어 있는' 중첩상태로, 상자의 뚜껑을 열었을 때 비로소 어느 하나의 상태(생사 50% 확률)로 확정된다는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생과 사'의 두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고 이를 관측함으로써 하나가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이날 96차 공판에서 양측의 공방은 양자물리학계에 큰획을 그은 1927년 10월 제 5차 솔베이 회의에서의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를 떠올리게 한다.

검찰 측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SB4) 제품의 성공 가능성을 임상 1상 단계에서 알 수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힘을 쏟았다. 바이오시밀러는 신약과 달리 임상 1상(기간 2013년 5월 ~ 8월)이 성공하면 임상 3상도 거의 성공 가능하기 때문에 1상이 끝난 2014년에 콜옵션 부채를 재무제표에 반영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어겼기 때문에 분식회계라는 것이다.


임상 1상의 결과로 3상의 성공이 이미 정해졌다는 주장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거부하고, 인과론을 중시했던 아인슈타인의 사고와 닮았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의 변호인측은 최종 임상 3상(2013년 6월 - 2015년 10월)의 결과가 나온 뒤인 2015년말 사업보고서에 콜옵션 부채를 반영한 게 맞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데이터가 비밀에 붙여지는 임상 3상의 맹검(盲檢)이 끝난 후 최종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성공여부를 알 수 없는 '성공과 실패'의 중첩상태라는 변호인 측 주장은 '불확정성'을 지지하는 보어를 닮았다.

현대 물리학계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보어가 옳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을 보는 눈은 누가 옳을까.

이날 변호인 측 증인인 서울대 임상약리학과 A교수는 임상 1상으로 바이오시밀러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고, 임상 3상의 맹검 결과의 뚜껑을 열어봐야 성공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임상 1상이 수십명의 '건강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임상 3상은 수백에서 수천명의 '다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다. 그 차이는 성패를 가를 정도로 크다. 임상 3상의 뚜껑을 열어 환자에게 바이오시밀러가 안전하다는 게 확인되지 않으면 개발은 실패다.

기업 경영활동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성공과 실패'를 알 수 없고, 두 상태가 공존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다. 특히 제약 바이오 사업은 상자 뚜껑을 열어 확인했을 때 '고양이'가 죽어있을 확률이 훨씬 높은 분야다.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충분한 증거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하도록 하는 게 형사사법 절차의 핵심이다. 방사성 물질의 붕괴 확률만을 근거로 고양이가 살아 있다거나 죽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말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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