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아이 "유서 썼어요"…밤새가며 살린 어른[인류애 충전소]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3.06.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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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SNS '자살 암시' 글 찾아 112 신고, 수천 명 살린 유규진씨(45)…"잠을 못 자요, 그래야 살릴 수 있으니까"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위로받기도 하지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꽤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이 SNS에 '자살 위험자'를 발견해 신고한 문자 화면. 새벽 내내 살리려 애쓴 결과, 다행히 구조할 수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이 SNS에 '자살 위험자'를 발견해 신고한 문자 화면. 새벽 내내 살리려 애쓴 결과, 다행히 구조할 수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유서는 이미 써두었어요."

야심한 새벽, SNS 메시지가 울렸다. 삶을 끝내려던 10대 학생의 말이었다. 정리는 이미 거의 다 했단다.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45)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어디 사세요?"



실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의 말이었다. 그러나 유 단장은 그리 묻지 않았다. 정보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아이는 사는 지역을 말했다. 죽으려는 이유도 알려줬다.

미소를 지어줄 수 있느냐는 말에, 애써 웃어보인 사람. 매일 삶을 끊으려는 이들을 발견하고 신고하는 일인데, 그 무게가 오죽할까. 쉽지 않은 일이고, 정말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꼭 알리고 싶었다.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의 모습./사진=남형도 기자미소를 지어줄 수 있느냐는 말에, 애써 웃어보인 사람. 매일 삶을 끊으려는 이들을 발견하고 신고하는 일인데, 그 무게가 오죽할까. 쉽지 않은 일이고, 정말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꼭 알리고 싶었다.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의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특정이 됐다. 유 단장은 112에 문자 신고를 했다. 그 역시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건만, 고단함도 잠도 잊었다. 대신 밤새 경찰과 공조하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유 단장이 대화하며 정보를 파악한 덕분에 구조가 수월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근본 이유가 있었기에, 그 문제 역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자살하려는 10대들이 SNS에 남긴 흔적. 죽을 거라는 '암시'. 그걸 샅샅이 찾고, 정말 위급한 순간이라 판단될 때만 '112 신고'를 한다. 그리 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신고 건수는 수만 여건, 구조한 이가 수천 명이 넘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진정 죽으려는 아이들, 어른들을 살리기 위해 순수하게 하는 일이란다.

2021년엔 수많은 생(生)을 구한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유 단장과 만나 이야길 들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그는 자주 문자를 보냈다. 주로 밤이었고, '자살 암시' SNS 글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이건 어떻게 보시나요?"

자살 시도 중이거나, 1주일 이내 위험한 것만 신고
보려고 하니 정말 많이 보였다. 털어 놓을 마땅한 곳 하나 없어, SNS에 기대어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사진=남형도 기자보려고 하니 정말 많이 보였다. 털어 놓을 마땅한 곳 하나 없어, SNS에 기대어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사진=남형도 기자
죽음을 내포한 글이, SNS에 그리 많은줄 처음 알았다. 어떤 건 댓글에, 어떤 건 피드에, 또 어떤 건 지식인에 있었다. 솔직히 다 위험해보였다. 당장이라도 신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 이 일을 하며, 유 단장은 진짜 자살 위험이 있는 글을 구별해내는 전문성을 키웠다. 10건을 신고하면 8건 이상을 구조하는 식이다. 어떻게 아는 걸까.


형도 : 죽고 싶단 내용은 다 있는 것 같은데, 뭐가 위급한 건진 판단이 잘 안 되는데요. 어떻게 신고하시는 건가요.

규진 : 이걸 한 번 보시겠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이달에 올라온 글이었다. 거기엔 이리 쓰여 있었다. '제 삶이 힘들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요. 그만 살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할 게 있을까요?'

112 신고 후에도, 아이가 살았는지 궁금해 경찰과 대화한 유규진 단장./사진=남형도 기자112 신고 후에도, 아이가 살았는지 궁금해 경찰과 대화한 유규진 단장./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위험해 보입니다. 어떨까요.

규진 : 네, 자살을 결심하고 주변 정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거예요. 뭐가 빠진 게 있는지요. 발견하자마자 신고했습니다.

형도 : 신고하시는 기준은 뭔가요.

규진 : 정말 긴급한 사안만 신고해요. 단순히 "죽고 싶다", "나 죽을래"라고 해서 대상자로 보지 않아요. △자살 예행 연습이나 계획하는 단서를 발견했을 때 △유서를 봤을 때 △자살 시도 중일 때 △혹은 1주일 이내 결행 가능성이 클 경우에 신고합니다. 청소년이 동반할 위험이 있을 때도요.

형도 : 생각보다 복잡한 거네요.

규진 : 그렇지요. 그래서 SNS는 모든 글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판단해야 해요. 청소년들은 충동적, 감정적으로 올리는 글도 꽤 많고요. 무작정 신고했다가는 정작 살릴 사람을 못 살리게 돼요.

새벽에 '마포대교'로 달려가, 직접 사람 살리기도
서울 마포대교에 적힌 자살예방 문구./사진=뉴스1서울 마포대교에 적힌 자살예방 문구./사진=뉴스1
형도 : 자살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특정해서 살릴 수 있는 걸까요.

규진 : 이야기하며 최대한 언니처럼,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요.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확보해두고요. 아이가 정말 자살하려는 시점이 되면, 그 때 경찰에 신고하는 거지요.

예를 들면, 어떤 아이가 이런 글을 올린 거다.

"나, 이제 내일이면 없어져."

그럼 유 단장이 말을 건다.

"내일 무슨 기념일이에요?"(유 단장)

"나 죽어요."(아이)

"죽어요? 방법은 생각해봤어요?"(유 단장)

서울 마포대교에 적힌 자살예방 문구./사진=뉴스1서울 마포대교에 적힌 자살예방 문구./사진=뉴스1
그때 아이가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했다. 자살 암시가 확실한 거였다. SNS 본사에서 아이 정보를 특정해 알려주고, 경찰이 출동해 구조했다. '없어진다'는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의 깊게 본 덕분이었다. 덕분에 아이는 살 기회가 생겼다.

형도 : 기억에 남는 분도 있으실 것 같아요.

규진 : 새벽 한 시쯤이었어요. 마포대교에서 죽는다는 정보가 들어왔지요. 느낌이 쎄한 거예요. 그런데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이름도 모르고, 성별도 모르고요. 집에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지요.

형도 : 아무 정보가 없는데…어떻게 하셨어요?

규진 : 택시타고 마포 대교로 갔죠.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차가 왔고요. 근데 누가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찬찬히 봤어요. 한 남자가 죽을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저 사람인 것 같다"고 경찰에 말했지요.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이 맞더라고요.

10대에게 "성매매 하자"는 문자 잘못 받고 '시작'…"자살 징후 알아채는 '셀프 감시' 교육 필요해"
유규진 SNS 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은, 실은 본업이 따로 있는 직장인이다. 사진을 조금 더 줄 수 있는냐고 요청했더니, 밤새 112 신고를 하고 아침에 셀카를 찍어서 보내주었다./사진=유규진 단장유규진 SNS 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은, 실은 본업이 따로 있는 직장인이다. 사진을 조금 더 줄 수 있는냐고 요청했더니, 밤새 112 신고를 하고 아침에 셀카를 찍어서 보내주었다./사진=유규진 단장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건 2000년이었다. 어느날, 유 단장에게 문자가 잘못 왔다. 거기엔 이리 쓰여 있었다. "8만원에 성매매할래요?" 번호는 잘못 보낸 거였지만, 그 아이가 성매매를 하는 건 진짜였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큰 관심이 없었단다. 유 단장은 스스로 청소년을 돕기로 맘 먹었다. 사이버 감시단 활동부터 SNS자살예방감시단까지, 그리 이어져 왔다.

그 혼자 감당하긴 힘든 일이다. 해결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와 대화하면서 정답이 뭘지, 어렴풋이 찾은듯 했다. 자살 암시처럼 보이는 글을 캡처해 유 단장에게 물었다.

형도 : 이런 글도 긴급한 걸까요. '자살 시도를 두 번 했다. 엄마가 못 나가게 한다.'
규진 : 못 나가게 한다는 건,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거든요. 신고 대상이 아니지요. 그런데 만약에 '자살 시도를 두 번 했는데, 엄마는 알지도 못해' 이러면 신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형도 : 결국엔 가까운 이들의 '관심'이 정말 중요한 거네요. 대표님 홀로 20년 넘게 수만 건을 신고했지만요.
규진 : 그래서 '셀프 감시'가 중요해요. 자살 고위험군 학부모 100명을 대상으로 한다면요. 자살 징후는 이거고, 행동 패턴은 이렇고, 자살 직전 패턴은 이렇고, 실제 사례 위주로 보여주는 거지요. 그럼 내 자녀를 정말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잖아요. '어, 내 딸 저런 패턴 보였는데.' 그럼 집중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요.
2019년 10월에 SNS에 남겨져 있던, 어떤 이의 유서.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은 "늦게 발견했다, 아마도 놓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래서 제가 잠을 못 잔다"고 했다./사진=유규진 단장2019년 10월에 SNS에 남겨져 있던, 어떤 이의 유서.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은 "늦게 발견했다, 아마도 놓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래서 제가 잠을 못 잔다"고 했다./사진=유규진 단장
형도 : 이건 정말 중요하게, 전 국민이 다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규진 : 한 명을 교육하면 여럿에게 전파할 수 있잖아요.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뿐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을 다 챙길 수 있어요.

형도 : 고맙습니다. 끝으로 여쭤보고 싶은 건…정말 힘든 일인데 어떤 마음으로 하고 계신 걸까요.
규진 : 놓치면 안타까우니까요. 한 명이라도요.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거잖아요. 죽으면 장례식 때 가족, 친구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하는 겁니다.
마음이 힘든 유가족들을 위해 제작된 '오늘의 마음'./일러스트=정옥경, 한국생명의전화 제공마음이 힘든 유가족들을 위해 제작된 '오늘의 마음'./일러스트=정옥경, 한국생명의전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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