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위스키와 우리 술

머니투데이 김성훈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 2023.06.1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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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충남대 교수김성훈 충남대 교수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나라의 술 소비 트렌드에도 큰 영향을 줬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식당에 모여 술 한잔하는 문화가 집에서 혼술하는 문화로 바뀌면서 위스키 등의 고도주 소비가 크게 늘었다. 관세청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위스키 수입량이 2019년 약 7000톤에서 2022년 1만3000톤으로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최근 국제 물류대란으로 국가간 교역이 어려웠던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위스키 사랑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알 수 있다.

위스키의 소비성향도 다양해졌다. 편의점이나 할인점의 수만 원대 저가 위스키부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위스키까지 상품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물론이고 소량의 위스키를 얼음과 탄산수 등에 타서 마시는 하이볼을 만들어 가볍게 즐기는 소비층도 늘고 있다. 특히 고깃집이나 일식집 등에서는 아예 하이볼을 주류메뉴의 하나로 소주와 맥주 등과 함께 판매하는데 젊은 여성층에게 인기가 높다.



위스키나 와인 등 외래주 시장이 이른바 폭풍성장하는 것을 보는 우리 술 생산자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2010년 무렵 막걸리 열풍이 불어 우리 술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고 일본 수출도 크게 늘었는데 지금은 과거의 영광이 돼버렸다. 물론 아직도 도심 번화가에 가면 막걸리 등의 우리 술전문점이 간간이 보이지만 산 아래 두붓집이나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이 붐비던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다른 식품도 그렇지만 술은 소비 트렌드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상품이다. 특히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고 때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소 과한 소비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 젊은 소비자들에게 술은 취하도록 마시는 '알코올'이기에 앞서 자신이 소장하고 남에게 자랑하고픈 '먹는 액세서리'로 소비된다. 대기업은 이러한 술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이용하거나 주도하는데 알코올에 물을 희석한 소주에 과일향이나 탄산을 첨가하고 깨끗하게 걸러내거나 산소를 추가하는 등 다양한 상품성을 부여해왔다. 나아가 희석식 소주의 도수를 1924년 35도에서 1965년 30도로 낮춘 이후 1970년대부터 한동안 25도를 유지하다 최근에는 15도 미만 소주를 출시하고 급기야 5도의 탄산소주까지 시장에 내놓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막걸리를 포함한 우리 술도 쉼 없는 변화를 꾀하고 있기는 하다. 밤막걸리, 땅콩막걸리 등 지역 특산물을 막걸리와 결합하는 시도는 꽤 오래됐고 청주부터 증류식 소주까지 다양한 도수의 전통주가 변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의 이름이 들어간 전통소주가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도 하지만 위스키만큼의 소비를 창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우리 술의 시장 잠재력은 작지 않다. 대기업의 희석식 소주나 맥주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와인이나 위스키에 못지않은 역사와 스토리, 맛을 지녔다. 그럼에도 매장이나 식당 진열대에서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모습을 보면 분명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 위스키의 소비폭발을 마냥 부러운 눈으로만 보고 있기에는 우리 술의 사정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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