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레이더망'에 걸린 中연구원…로봇기술 자료 1만건 빼돌렸다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2023.06.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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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2022년 12월 19일에 제주시에서 임무 수행 중이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사진=뉴시스국가정보원이 2022년 12월 19일에 제주시에서 임무 수행 중이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사진=뉴시스


정보당국이 경찰과 협력해 첨단 의료 로봇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중국인 연구원을 최근 붙잡아 검찰에 넘겼다. 당국은 2021년 초 이미 기술 유출 정황을 파악해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유출 업체와 상황을 공유하고 조사에 착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일 경찰과 의료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40대 중국인 A씨를 지난달 말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은 A씨가 서울 한 종합병원 산하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혈관중재시술 보조로봇 도면 등 자료 1만여건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혈관중재시술 로봇 시장 규모는 6000억원에 이른다.

정보 당국은 해당 연구원이 국내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년간 주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 출신의 A씨는 중국에서 의공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2005년 한국에 입국했다. 2015년부터는 박사후연구원 자격으로 종합병원 산하의 의료 로봇 개발 업체인 ㄱ기업에 취직했다.



ㄱ기업은 혈관중재시술로봇을 개발하고 있었다. 심혈관 중재시술은 난이도가 높아 담당 의료인의 숙련도가 중요한데 해당 기업이 개발 중인 로봇을 활용하면 정밀한 제어가 가능해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A씨는 전자회로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프로그래머로 해당 혈관중재시술로봇 개발 과제에 참여했지만 로봇의 설계 등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개발팀에 소속돼 초기 단계 로봇의 설계 도면 등에 접근권을 가지고 있었다.

2016년 ㄱ기업을 떠난 A씨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의료로봇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한동안 ㄱ기업 측에 연락이 없던 A씨는 2019년초에 '일손이 부족하다면 아르바이트생으로라도 돕고 싶다'며 다시 연락했다.


A씨는 2019년부터 약 1년간 ㄱ기업의 AI(인공지능) 개발 업무 등에 참여했다. 이후 코로나19(COVID-19)가 발발하면서 중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스파이/사진=이미지투데이산업스파이/사진=이미지투데이
ㄱ기업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보당국은 A씨가 국내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부터 관리를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2021년 초 기술 유출의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했다. A씨가 2020년 이후 ㄱ기업의 기술을 이용해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 프로젝트에 지원했고 지원금을 받아 창업을 준비 중인 사실도 확인했다.

천인계획은 2008년부터 중국 정부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학자 1000명을 지원한다는 목표로 진행한 프로젝트다. '해외 고등인재 초청 정책'이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설명과 달리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해당 프로젝트를 첨단 기술을 유출하기 위한 산업 스파이행위로 보고 있다.

정보당국은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협력해 A씨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정보당국과 경찰은 피해 기업과 관련 분야 전문가 등과 유출된 기술의 시장성을 평가하는 한편 추가 유출을 막고자 A씨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다.

지난 3월 한국에 입국한 A씨를 상대로 인천국제공항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휴대폰과 USB 등을 압수했다. 피해 기업에서 A씨가 사용한 컴퓨터 등을 포렌식해 유출 자료 등을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빼돌린 자료는 약 1만여건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출된 자료 중에는 ㄱ기업이 2015년쯤 설계한 초기 혈관중재시술로봇 모델 설계도면도 포함됐다. 해당 로봇은 기능 향상과 보완을 거듭해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승인을 받았다. 2015년 초기 모델의 설계도면엔 최신 버전의 핵심 기술은 담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최근까지도 또 다른 국내 로봇업체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ㄱ기업 관계자는 "1만여건 중에는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파일 등이 모두 포함된 수치"라며 " 혈관중재시술로봇의 2015년 초기 모델은 상용화해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가지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의료업계에서는 한국이 중국보다 혈관중재 등 의료로봇 기술에서 크게 앞선 상황에서 관련 기술 유출이 중국의 기술 발전에 유의미한 진전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편 A씨 사건은 국내에서 천인계획과 관련해 기술유출 사건으로 적발된 두 번째 사례다. 카이스트(KAIST) B교수가 자율주행차량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21년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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