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 달러 돈방석→빈털터리…잡스 꿈꾸던 사기꾼의 몰락[스토리후]

머니투데이 하수민 기자 2023.06.1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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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홈스는 2015년 포브스 선정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최연소, 자수성가한 여성 억만장자로 지명됐다. /사진=포브스지 캡처엘리자베스 홈스는 2015년 포브스 선정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최연소, 자수성가한 여성 억만장자로 지명됐다. /사진=포브스지 캡처


2015년 6월 15일 포브스지가 발표한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여성 부자 50'에서 테라노스 CEO 엘리자베스 홈즈가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불과 1년 뒤인 2016년 6월 1일 포브스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홈즈의 자산을 45억달러에서 0달러로 수정했다.

피 몇 방울만 직접 뽑으면 수백 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구인 일명 '에디슨 키트'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실리콘 밸리를 뜨겁게 달궜던 이 여성은 사기죄로 현재 텍사스주 휴스턴 인근 브라이언 연방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스탠퍼드 중퇴 후 회사 설립… '제2의 스티브 잡스' 칭호 얻어
테라노스는 피 한방울로 200여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키트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테라노스테라노스는 피 한방울로 200여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키트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테라노스
엘리자베스 홈즈는 피 몇 방울만 직접 뽑으면 수백 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구인 일명 '에디슨 키트'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2001년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해 화학공학을 공부하다 중국과 홍콩에서 SARS가 유행한 시기에 중국어를 하는 이점을 살려 싱가포르의 연구소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의학 진단 키트의 아이디어를 얻어 2004년 스탠퍼드를 중퇴하고 메디컬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이후 홈즈는 스탠퍼드 의대 학과장을 직접 설득해 회사 고문으로 영입하고 부모님에게는 학교를 자퇴하고 대학 학자금을 투자해달라고 말하는 당찬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피 한 방울로 250여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아름다운 외모의 어린 여성 천재, 미국의 살인적인 의료비 등은 스티브 잡스의 공백을 메울 새로운 스타를 찾던 실리콘밸리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곳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투자하겠다는 제안도 물밀듯이 쏟아졌다. 검은 목폴라 티를 입고, 명문대를 뛰쳐나온 스토리에 환호한 사람들은 홈즈를 '여자 스티브 잡스'라고 불렀다.

언론계 큰손 루퍼트 머독의 전폭적인 투자도 받았다. 미국 시장 점유율 2위인 약국 체인 '월그린스'와 캘리포니아주 대표 유통업체인 '세이프웨이'가 매장 내에 테라노스 질병 테스트 센터를 열기도 했다.

이같은 성장세를 보인 한 때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90억 달러(약 10조 원)까지 뛰었다. 덕분에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억만장자 반열에 오르며 포브스, 포츈 매거진 등의 표지모델을 장식했다.

WSJ 탐사보도가 밝혀낸 사기극… "처음부터 만능 진단 키트는 없었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실리콘밸리의 슈퍼스타였다. 각계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주요 행사에 빠지지 않고 초대를 받았다./사진=AFP엘리자베스 홈즈는 실리콘밸리의 슈퍼스타였다. 각계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주요 행사에 빠지지 않고 초대를 받았다./사진=AFP
하지만, 테라노스와 홈즈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기자 존 캐리루는 테라노스의 기술이 모호한 데다 원리도 고등학교 과학 수업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 의심을 품고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 결과 테라노스가 에디슨으로 진단할 수 있다고 제시한 250가지의 혈액검사 항목 중 실제로 에디슨이 진단할 수 있는 것은 10여 개 항목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 항목은 대기업들이 출시한 별도의 기기로 검사를 시행해 진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에 테라노스는 규제의 빈틈을 교묘하게 노려 FDA의 검사도 거치지 않은 채 에디슨을 시장에 공개했으며 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실험 결과 조작으로 덮고 넘어갔다. 처음부터 만능 진단 키트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폭로 보도 직후, 홈즈는 "지금 진단하지 못하는 항목들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도 조만간 확보할 것이니 문제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같은 반응은 그동안 테라노스가 내세워 온 기술력이 허위에 불과함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고, 홈즈와 테라노스에 대한 신뢰는 산산이 무너졌다.

2016년 테라노스는 주식 시장에서 퇴출됐으며, 에디슨 키트를 비치했던 월그린 등의 대형 마트들은 테라노스와의 계약을 중단했다. 연방 검찰은 본격적인 기업 조사에 착수했다.

사기죄로 결국 교도소 수감 …'잡스 되기' 꿈은 결국 못 이뤘다
2018년 6월 15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투자자들은 지난 2018년 홈즈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SEC는 테라노스가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과대포장하고 매출을 속였다고 봤다. 이에 50만달러 벌금을 부과했고 10년간 기업 임원으로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긴 재판 끝에 2022년 홈즈는 3건의 사기와 1건의 사기 공모 혐의로 1심에서 11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임신 등의 이유로 수감이 미뤄졌다가 지난달 30일 텍사스주 휴스턴 인근 브라이언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다.

또 지난 5월 16일.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지방법원은 피해자들에게 공동으로 4억5000만달러(약 6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가운데 1억2500만달러(약 1600억원)는 루퍼트 머독에게, 4000만달러(약 530억원)는 미국 약국 체인 월그린에 지급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한편 미 경제매체 CNBC가 단독 입수한 홈즈의 수첩에는 2015년 4월 2일 '스티브 잡스 되기(Becoming Steve Jobs)'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홈즈는 잡스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줄곧 말해 왔고, 사무실에 잡스 사진을 걸어놨을 정도로 잡스에 집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잡스의 식단과 생활방식까지 따라 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를 꿈꿨던 젊은 여성 CEO는 실리콘 밸리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으로 남게 됐다.

[캘리포니아(미국)=AP/뉴시스]엘리자베스 홈즈(가운데) 테라노스 창업자가 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산호세 지방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2021.01.04 [캘리포니아(미국)=AP/뉴시스]엘리자베스 홈즈(가운데) 테라노스 창업자가 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산호세 지방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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