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럴'이 되기 보다는 '리버럴'해지기[PADO]

머니투데이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2023.06.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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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미국에서 영어 '리버럴'(liberal)은 명사로 쓰는 경우 '진보주의자' '민주당원'을 의미하고, 형용사로 쓰는 경우 '진보적' '민주당쪽에 속한'이라는 의미 또는 '자유주의적' '리버럴한'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자유주의적이거나 관대하거나 '리버럴하다'거나 하는 의미를 갖는 것은 형용사로 쓸 때 뿐이고, 명사로 쓸 때는 십중팔구 진보주의자, 민주당원을 의미합니다. 영국에서는 용례가 미국과 달라서, '리버럴'이 진보주의나 큰 정부를 원하거나 복지국가 확대를 원하는 것과는 좀체 연결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하나인 마이클 월저(Michael Walzer)는 진영논리에 빠져 다양한 이견에 관대하지 않은 미국 정치에 대해 '자신의 마지막일지 모를' 이 책에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합니다. 무슨 주의자가 되기 이전에 일단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리버럴한' 태도를 가질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자신은 그런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해 평생 싸워왔다는 것이 월저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정치평론지인 내셔널리뷰(2023년 6월 12일자)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월저의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한 투쟁' 서평을 실었는데, PADO가 발췌 요약으로 소개합니다. 이 서평을 읽어보면 당장 책을 주문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 같습니다. 한국도 진영화가 심해지고 있어서 월저의 지적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서평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이클 월저의 2002년 강의 모습. /사진제공=Wikimedia Commons마이클 월저의 2002년 강의 모습. /사진제공=Wikimedia Commons


'리버럴'과 '보수적'이라는 말보다 혼란스러운 말은 없다. 사람들은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가 어떤 뜻으로 그 단어를 사용하는지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1932년의 미 대통령선거를 기억할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당)와 그의 캠프는 자신들을 "리버럴"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상대편인 후버(공화당)와 그의 캠프는 아연실색하며 외쳤다. "무슨 소리, 우리가 리버럴이지!"



하비 맨스필드 같은 보수주의 지식인들은 미국 보수주의는 리버럴한 전통, 즉 미합중국 건국의 원칙과 이상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다른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건국을 엄청난 실수였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보수주의라는 단어를 만나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도대체 무엇을 보수(保守: 보호하고 지킨다)하려는 것인가?" 예전 1980년대에 우리 레이건주의자들은 "주류 언론"에게 엄청 화가 나 있었는데, 그들이 계속해서 소련의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을 "보수주의자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린 이렇게 말했다. "봤지? 주류 언론에게 나쁜 놈은 미국사람이든 소련사람이든, 반공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항상 '보수주의자'인거야."



인정하긴 싫은데, 주류언론이 옳게 본 것이 하나 있었다. 소련 강경파들이 고르바초프 개혁에 맞서 소련의 구체제를 지키려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였던 것은 맞다.

오늘날 공화당쪽 거물들은 자신들을 확고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정치가나 언론인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전노장 칼럼니스트인 조지 F 윌은 달랐다. 그가 공화당을 떠났을 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공화당에 합류했던 것도 공화당을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나는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처칠은 매우 흥미로운 케이스다. 그는 영국 보수당의 기념비 같은 존재인데, 그는 원래 20년간(1904~1924) 자유당(리버럴 파티, Liberal Party) 소속이었다. 폴 존슨은 자신의 처칠 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처칠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리버럴'이었습니다. 물론 전통주의자였고, 보수주의자이기도 했죠."


1962년에 영국의 국회의원 한 사람이 존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당시 80대 후반인 처칠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처칠 노인은 그를 노려보더니 "귀하는 누구신가"라고 물었다. "저는 허드스필드 지역구 의원 빌 말라류라고 합니다, 총리님"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러자, 처칠은 "무슨 당인가"라고 물었고, 그는 "노동당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군. 난 리버럴일세. 항상 리버럴이었지."

월저 교수는 우리 시대의 최고 정치사상가이자 정치저술가 중 하나다. 1935년생인 그는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원 명예교수다. 그는 오랫동안 디센트 매거진 편집에 관여했다. 그는 디센트 매거진을 창립한 어빙 하위(Irving Howe)를 자신의 "멘토"라고 부른다.

2002년에 월저는 디센트 매거진에 큰 파장을 불러온 글 한 편을 기고했다. "품격 있는 좌파는 가능한가"가 그 제목이었다. 이 글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관한 것이었고, 좌파들이 베트남전 이후 미국 외교정책을 비판해온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바보 같은 것이었고, 과했고, 전반적으로 부정확했다"라고 월저는 말했다.

월저의 새 책도 제목에 "품격"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한 투쟁." 더 흥미로운 것은 제목보다 부제인데,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서의 '리버럴'"이 그것이다.

/사진제공=Yale University Press/사진제공=Yale University Press
이 책은 150쪽 밖에 안되는 얇은 책이다. 대화체이고, 가벼운 문체지만, 내용은 매우 무겁다. 이 책은 정치의 기본에 대한, 즉 정치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쩌면 단순한 문제들에 대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내용이 매우 정교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지성적이다. 하지만, 이 책이 말을 거는 대상은 평범한 일반독자들이다. (내가 보기에, 저자가 그것을 처음부터 의도한 것 같진 않고,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월저의 이 책을 읽다 보면 조지 윌이 2019년에 출간한 '보수주의 감수성'(Conservative Sensibility)을 떠올리게 된다. 윌의 책은 64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두 책이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보수주의 감수성'은 일종의 경전, '믿습니다' 류의 책이다. 윌은 자신의 책을 "최후 변론"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지만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이후에 보인 왕성한 활동을 보면 잘 한 결정이다.)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한 투쟁' 서문에서 월저는 "이 책이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평생 공부해온 것들, 그리고 현재 믿는 바를 깔끔하게 핵심만 정리했다.

이 책은 총 9장이다. 제1장의 제목은 "왜 형용사인가"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누가 리버럴하고 누가 리버럴하지 못한가"이다. 그 사이에 있는 7개 장은 각각 리버럴한 민주주의자, 리버럴한 사회주의자, 리버럴한 내셔널리스트 및 국제주의자, 리버럴한 공동체주의자, 리버럴한 페미니스트, 리버럴한 교수 및 지식인, 리버럴한 유태인을 다룬다.

그래서 형용사 "리버럴"은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건가? 이 형용사는 근본적으로 "다원화(多元化)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월저의 생각이다. 형용사 "리버럴"은 차이를 허용하고,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 권리를 보장해준다. 월저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주의주장이 무엇이든 리버럴해야 한다고 믿는다. 명사로 사용해 '나는 리버럴이야'라고 하는 것보다 형용사로 사용해 '나는 리버럴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잠깐만! 월저는 형용사 "리버럴한"과 "품격 있는"을 같은 것으로 보는건가? 내가 보기엔 그렇다. 보수주의자들은 물론 이 말에 깜짝 놀랄 것이다. 적어도 처음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와 함께 생각을 해나가면서 그들은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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