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비 맨스필드 같은 보수주의 지식인들은 미국 보수주의는 리버럴한 전통, 즉 미합중국 건국의 원칙과 이상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다른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건국을 엄청난 실수였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인정하긴 싫은데, 주류언론이 옳게 본 것이 하나 있었다. 소련 강경파들이 고르바초프 개혁에 맞서 소련의 구체제를 지키려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였던 것은 맞다.
오늘날 공화당쪽 거물들은 자신들을 확고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정치가나 언론인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전노장 칼럼니스트인 조지 F 윌은 달랐다. 그가 공화당을 떠났을 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공화당에 합류했던 것도 공화당을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나는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처칠은 매우 흥미로운 케이스다. 그는 영국 보수당의 기념비 같은 존재인데, 그는 원래 20년간(1904~1924) 자유당(리버럴 파티, Liberal Party) 소속이었다. 폴 존슨은 자신의 처칠 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처칠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리버럴'이었습니다. 물론 전통주의자였고, 보수주의자이기도 했죠."
1962년에 영국의 국회의원 한 사람이 존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당시 80대 후반인 처칠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처칠 노인은 그를 노려보더니 "귀하는 누구신가"라고 물었다. "저는 허드스필드 지역구 의원 빌 말라류라고 합니다, 총리님"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러자, 처칠은 "무슨 당인가"라고 물었고, 그는 "노동당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군. 난 리버럴일세. 항상 리버럴이었지."
월저 교수는 우리 시대의 최고 정치사상가이자 정치저술가 중 하나다. 1935년생인 그는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원 명예교수다. 그는 오랫동안 디센트 매거진 편집에 관여했다. 그는 디센트 매거진을 창립한 어빙 하위(Irving Howe)를 자신의 "멘토"라고 부른다.
2002년에 월저는 디센트 매거진에 큰 파장을 불러온 글 한 편을 기고했다. "품격 있는 좌파는 가능한가"가 그 제목이었다. 이 글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관한 것이었고, 좌파들이 베트남전 이후 미국 외교정책을 비판해온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바보 같은 것이었고, 과했고, 전반적으로 부정확했다"라고 월저는 말했다.
월저의 새 책도 제목에 "품격"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한 투쟁." 더 흥미로운 것은 제목보다 부제인데,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서의 '리버럴'"이 그것이다.

월저의 이 책을 읽다 보면 조지 윌이 2019년에 출간한 '보수주의 감수성'(Conservative Sensibility)을 떠올리게 된다. 윌의 책은 64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두 책이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보수주의 감수성'은 일종의 경전, '믿습니다' 류의 책이다. 윌은 자신의 책을 "최후 변론"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지만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이후에 보인 왕성한 활동을 보면 잘 한 결정이다.)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한 투쟁' 서문에서 월저는 "이 책이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평생 공부해온 것들, 그리고 현재 믿는 바를 깔끔하게 핵심만 정리했다.
이 책은 총 9장이다. 제1장의 제목은 "왜 형용사인가"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누가 리버럴하고 누가 리버럴하지 못한가"이다. 그 사이에 있는 7개 장은 각각 리버럴한 민주주의자, 리버럴한 사회주의자, 리버럴한 내셔널리스트 및 국제주의자, 리버럴한 공동체주의자, 리버럴한 페미니스트, 리버럴한 교수 및 지식인, 리버럴한 유태인을 다룬다.
그래서 형용사 "리버럴"은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건가? 이 형용사는 근본적으로 "다원화(多元化)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월저의 생각이다. 형용사 "리버럴"은 차이를 허용하고,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 권리를 보장해준다. 월저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주의주장이 무엇이든 리버럴해야 한다고 믿는다. 명사로 사용해 '나는 리버럴이야'라고 하는 것보다 형용사로 사용해 '나는 리버럴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잠깐만! 월저는 형용사 "리버럴한"과 "품격 있는"을 같은 것으로 보는건가? 내가 보기엔 그렇다. 보수주의자들은 물론 이 말에 깜짝 놀랄 것이다. 적어도 처음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와 함께 생각을 해나가면서 그들은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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