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제치고…반도체 랠리 선봉장 선 日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3.06.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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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갈등 반사익·호실적 강세, 관련 ETF 올 46% 급상승
잃어버린 30년 회복 日 증시 활황…외인자금 순유입 전환
소부장기업 경쟁력 주목·엔화 반등 가능성 등 전망 긍정적

韓·美 제치고…반도체 랠리 선봉장 선 日


최근 글로벌 반도체 랠리의 선봉은 한국도, 미국도 아닌 일본이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이 재조명받으며 한국과 미국 기업보다 주가가 더 많이 올랐다. 미·중 지정학적 이슈와 일본 증시 호황, 엔화 반등 기대감 등으로 일본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분석이다.



8일 일본 도쿄 증시에서 '글로벌엑스(X) 재패니즈 세미컨덕터' ETF(상장지수펀드)는 2977엔에 거래를 마치며 올해 들어서만 46% 상승했다. 일본의 대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30개 종목을 담은 상품으로 주요 종목들의 주가가 대폭 오르면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해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수익률은 한국과 미국을 앞섰다. 한국의 'KODEX 반도체' ETF는 올해 약 39% 올랐고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아이셰어즈 세미컨덕터'도 38% 상승했다.

일본은 한국, 미국, 대만 등과 함께 '칩4'로 묶이는 전통의 반도체 강국이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 반도체는 '한 때 좋았지만 지금은 한물간'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대만에 밀리고 시스템 반도체와 설계(팹리스)는 미국을 따라잡지 못했다. 소부장에선 강자지만 후방산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지난해부터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가치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칩4 동맹 안에서도 한국이나 대만보다 중국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고 소부장 각 분야 글로벌 1~2위를 다투는 경쟁력을 보유해 몸값은 더 높아졌다.

실적도 뒷받침했다. 반도체 업황 침체로 실적이 급감한 한국, 대만과 달리 일본 기업은 고성장을 이어갔다. 일본 반도체 ETF에서 비중이 가장 큰 어드밴테스트는 지난해(2022년4월~2023년3월) 매출액이 5602억엔으로 전년 대비 34.4% 늘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46.2%, 49.4% 각각 증가했다.

올해 1분기만 봐도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95% 감소하고 SK하이닉스는 적자전환했지만 어드밴테스트의 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14.4% 증가했다. 어드밴테스트는 글로벌 1위 반도체 테스트 장비 업체로 시장 점유율은 2020년 43%에서 지난해 57%로 높아졌다. 주가도 올 들어 103.4% 상승했다. 글로벌 1위 차량용 반도체 회사 르네사스는 주가는 올해 들어 2배 이상 올랐다. 다른 일본 소부장 업체들의 올해 주가 상승률 역시 △스크린 홀딩스 76.1% △디스코 61.6% △신에츠화학 39.7% △호야 39.6% △도쿄 일렉트론 45.2% 등으로 대부분 높다.


일본 증시가 잃어버린 30년을 회복해 저평가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기업 실적 개선과 주주환원 강화 기대감 등으로 지난 4월부터 일본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은 순유출에서 순유입으로 전환했다. 윤재홍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일본 증시는 해외 자금 유입과 기업 이익 개선 기대감이 커지는데 최근 일본 투자를 늘리겠다는 워런 버핏의 발언으로 더 조명받고 있다"며 "특히 소부장 기업들의 경쟁력이 주목받는다"고 말했다.

저평가된 엔화가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현재 원/엔 환율은 1엔당 9.32원으로 최근 10년 평균(10.3엔) 대비 10% 저평가 상태다. 일본 주식은 엔화로 투자하는 만큼 엔화가 반등하면 그만큼 환차익을 노릴 수 있다. 글로벌엑스 재팬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엔화 가치는 현 수준에서 하락보다 상승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 금리 추가상승 여력 제한은 엔화 가치 상승에 강력한 엔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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