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수익률은 한국과 미국 반도체 기업보다도 앞섰다. 한국의 대표 반도체 ETF인 'KODEX 반도체 (33,400원 ▼180 -0.54%)'는 올해 약 39% 올랐고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아이셰어즈 세미컨덕터'(티커 : SOXX)도 38% 상승했다. AI(인공지능) 열풍과 반도체 업황 반등 기대감에 한·미·일 반도체 기업 모두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 기업들의 성과가 가장 두드러졌다.
지난해부터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가치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칩4 동맹 안에서도 한국이나 대만보다 중국 시장의 영향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소부장 각 분야에서 글로벌 1~2위를 다투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몸값은 더 높아졌다.
실적도 뒷받침했다. 반도체 업황 침체로 실적이 급감한 한국, 대만과는 달리 일본 소부장 기업은 고성장을 이어갔다.
일본 반도체 ETF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어드밴테스트는 지난해(2022년4월~2023년3월) 매출액이 5602억엔으로 전년 대비 34.4% 늘었고 영업이익은 1677억엔, 당기순이익은 1304억엔으로 전년 대비 각각 46.2%, 49.4%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30%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만 놓고 봐도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95% 감소하고 SK하이닉스는 적자전환했지만 어드밴테스트의 이익은 전년 대비 14.4% 증가했다. 어드밴테스트는 글로벌 1위 반도체 테스트 장비 업체로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사업 인수로 시장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은 2020년 43%에서 지난해에는 57%로 더 높아졌다. 주가 역시 올해 들어서만 8480엔에서 1만7250엔으로 103.4% 상승했다.
글로벌 1위 차량용 반도체 회사 르네사스는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대비 3.7% 증가한 3597억엔, 영업이익은 10.8% 감소한 1248억엔으로 선방했다. 30%대의 높은 영업이익률은 여전했다. 업황이 침체 국면을 벗어나고 있고 자동차 반도체 산업은 고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는 올해 들어서 2배 이상 올랐다.
다른 일본 소부장 업체들의 올해 주가 상승률 역시 △스크린 홀딩스 76.1% △디스코 61.6% △신에츠화학 39.7% △호야 39.6% △도쿄 일렉트론 45.2% 등으로 대부분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일본 증시가 잃어버린 30년을 회복하며 저평가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기업들의 실적 개선과 주주환원 강화 기대감 등으로 지난 4월부터 일본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은 순유출에서 순유입으로 전환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TOPIX 1000 지수 기준 지난해 주주환원(배당금+자사주 매입) 규모는 24조1000억엔으로 최근 10년 간 2배 이상 늘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3개 분기만에 플러스로 전환했고 개인소비도 증가하는 등 경기도 살아나는 추세다.
윤재홍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일본 증시는 해외 자금 유입과 기업 이익 개선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 최근 일본 투자를 늘리겠다는 워런 버핏의 발언으로 인해 더 조명받고 있다"며 "특히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경쟁력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저평가된 엔화가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현재 원/엔 환율은 1엔당 9.32원으로 최근 10년 평균(10.3엔) 대비 10% 가량 저평가 상태다. 일본 주식은 엔화로 투자하는만큼 엔화가 반등하면 그만큼 환차익을 노릴 수 있다.
글로벌엑스 재팬은 최근 일본시장전망 보고서를 통해 "엔화 가치는 현 수준에서 하락보다 상승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 금리의 추가상승 여력 제한은 엔화 가치 상승에 강력한 엔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