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제주식당' 사장님이 중국인?…'짝퉁 한식당', 한류에 찬물

머니투데이 파리(프랑스)=정혁수 기자 2023.06.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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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한식열풍이 불고 있다. 파리 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소비자들이 한국농수산가공식품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정혁수파리에 한식열풍이 불고 있다. 파리 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소비자들이 한국농수산가공식품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정혁수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는 요즘 K팝·K드라마 등 한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한류스타의 헤어스타일이 좋아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찾지만 '한 달 전 예약'은 기본이다. 파마머리에 150~200유로(20~28만원선)를 내야 하지만 늘 예약이 넘친다. 이처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한류 열풍은 K-푸드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져 파리시내 한식당 수는 최근 몇 년새 급증하고 있다.

한식을 직접 조리해 먹는 수업도 인기여서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개설한 한식수업강좌에는 10명 모집에 수 백여명이 몰려 치열한 경쟁을 보이기도 한다. 현지에서는 한국식품이 건강하고 신선한 메뉴로 인식되고 있으며 특히 비빔밥과 김치에 대한 인지도가 높다. 또 불고기, 만두, 한국식 바비큐(BBQ)와 치킨, 김밥 등이 대표적인 한식메뉴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파리에 불어닥친 한류열풍을 반영하듯 한식당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한식당 경영에 나선 중국인들의 수가 적지 않다. 지난 달 23일 파리에서 만난 한식당·한식유통업계 관계자들은 "한류열풍으로 모처럼 한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짝퉁 한식당'이 늘고있어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및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파리 시내에 위치한 한 한국식자재 유통업체에는 요즘 K-푸드를 찾는 소비자들이 잇따르면서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정혁수파리 시내에 위치한 한 한국식자재 유통업체에는 요즘 K-푸드를 찾는 소비자들이 잇따르면서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정혁수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125개에 불과했던 파리의 한식당은 지난 해 말 220여 곳으로 크게 늘어났다. 여기에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이 비즈니스차원에서 한식당 창업 또는 인수에 나서면서 전체 한식당은 300여곳이 넘는다고 한다. 파리에서 일식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일식 창업 또는 인수에 나섰던 10년전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얼마전 지인 소개로 한 중국인 사업가를 만난적이 있어요. 대학가 근처에서 제가 운영하는 한국식 카페(plus82)가 요즘 한류 탓에 인기가 높은데 이 가게를 사고 싶다는 거예요. 시세의 2배를 쳐 주겠다고 하더군요.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정이 들어버린고객들이 생각나 팔지 않기로 했어요. 주변 지인들 얘기를 들어봐도 요즘 이런 사업제의가 부쩍 많아졌다고 해요"(양민애 '파리다방' 대표)



노틀담 근처에 위치한 '빅뱅 바베큐' 식당(파리 생제르망데프레 6구 중심가 소재), 뤽상부르그 공원 부근인 '제주식당', 관광객이 많이 찾는 프렝탕 및 갤러리라파예트 근처에 있는 '강남처럼' 등 간판만 봐서는 모두 한국식당으로 보이는 이들 식당은 모두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다.
파리 현지에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많은 한식당에서는 고추장 등 한국 고유의 장류와 파리요리를 접목한 퓨전한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정혁수파리 현지에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많은 한식당에서는 고추장 등 한국 고유의 장류와 파리요리를 접목한 퓨전한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정혁수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파리 현지 한식당에서는 고추장 등 한국 고유의 장류와 프랑스 요리를 접목한 퓨전한식 메뉴를 선보이고있다. 사진은 한식당 '서울마마'에서 개발한 달걀 마요네즈 (Œuf mayonnaise)라는 전식 메뉴다. 샐러드와 돼지고기, 고추장 소스를 섞어만든 이 메뉴는 'EGG GOCHUJANG'로 명명됐다./사진=정혁수'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파리 현지 한식당에서는 고추장 등 한국 고유의 장류와 프랑스 요리를 접목한 퓨전한식 메뉴를 선보이고있다. 사진은 한식당 '서울마마'에서 개발한 달걀 마요네즈 (Œuf mayonnaise)라는 전식 메뉴다. 샐러드와 돼지고기, 고추장 소스를 섞어만든 이 메뉴는 'EGG GOCHUJANG'로 명명됐다./사진=정혁수
파리생활 4년째인 김정기씨는 "가게 인테리어도 그럴싸 하고 구글평점도 나쁘지 않았는 데 맛과 품질에 있어 우리가 알고있는 한식과는 많이 달랐다"며 "한국사람이야 이렇게 한 번 경험하면 '이거 짝퉁이구나' '여기 아니네' 판단할 수 있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게 한식이구나'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어 걱정이 됐다"고 했다.

또 "식당 입장에서는 '한식의 현지화'라고 주장하는 업주도 있지만 한국음식의 맛을 '알고' 현지화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며 "한식이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음식을 파는 곳이 많은 데 '진짜 한식당'과 '짝퉁 한식당'을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파리시내 최고 백화점으로 통하는 봉마쉐 백화점 식품매장에는 한국농수산가공식품만을 전시하는 전용 매대가 설치돼 소비자들의 물품구매를 돕고 있다./사진=정혁수파리시내 최고 백화점으로 통하는 봉마쉐 백화점 식품매장에는 한국농수산가공식품만을 전시하는 전용 매대가 설치돼 소비자들의 물품구매를 돕고 있다./사진=정혁수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고 한식문화 확산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식당 한 대표는 "제대로 된 한식을 제공하기 위해 국산 식재료 및 장류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과 수고가 적지 않다"며 "식재료 공급과 통관절차 등이 간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각국 한식당협의체나 한식문화원 등이 협력해 국산식재료를 많이 쓰는 식당이나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있는 한식당을 선발하고 정부가 이를 인증하고 지원함으로써 '짝퉁식당'과 차별화 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며 "한국음식 및 문화에 대한 홍보자료는 물론 숟갈·젓갈 등 한식 식기자재 지원, 한식교육프로그램 등과 같은 것들은 한식 저변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농식품부는 한류를 대변하는 한식을 적극 홍보하고, 해외 우수 한식당을 발굴하기 위해 올해 처음 뉴욕·파리·도쿄에서 '해외 우수 한식당' 8곳을 선정했다. 뉴욕에서는 △정식△아토믹스△윤 해운대 갈비, 파리에서는 △순 그릴 마레△종로 삼계탕△이도, 도쿄에서는 △윤가△하수오가 각각 뽑혔다.

양주필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창의적인 노력으로 세계적 미식 유행을 이끄는 해외 우수 한식당들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앞으로도 한식업계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해외 우수 한식당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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