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약 지으려고요?"…15분만에 의료용 마약 처방받았다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정세진 기자, 김지은 기자 2023.06.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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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가까운 (마)약 ①마약 대체재 '식욕억제제'

편집자주 살을 빠지게 해 준다는 약이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온다. 오남용이 심해지면 정신 착란 등을 유발해 각종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약에 중독되면 점점 더 강한 마약을 찾게 될 가능성도 높다. 마약류로 분류돼 있지만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처방받은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접수 후 의료용 마약류 처방전이 나오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사진=머니투데이 취재진머니투데이 취재진이 처방받은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접수 후 의료용 마약류 처방전이 나오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사진=머니투데이 취재진


서울 종로구에 있는 A 의원. '비만에 대한 걱정! 원장 선생님과 상담하세요'라고 쓰인 대형 입간판을 지나 입구에 들어서자 접수대에 의료진이 보였다. 처음 방문했다고 하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를 적어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등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접수 후 1분 만에 진료실로 이동했다.

의사는 키와 몸무게를 비롯해 약물 다이어트를 한 적 있는지, 식탐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다. 그는 "2주 동안 보조제와 함께 먹어보고 다음에 식욕억제제만 가져갈 수 있다"며 2주 치 약을 처방했다. 처방전에는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과 함께 총 4개의 약이 기재됐다.



같은 날 서울 구로구의 B 의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은 "다이어트약 지으러 오셨냐"고 묻더니 A4 한 장 분량의 사전 문진표를 내밀었다. 키와 몸무게, 다이어트 약물 복용 경험, 현재 체중과 목표 체중, 식욕 성향, 수면장애 여부 등을 작성해 제출하자 직원이 상담 방으로 안내했다. 상담방에서는 2주 치나 4주 치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복용 방법을 안내했다.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자 의사가 다시 한번 문진표 내용을 확인했다. 의사는 문진표와 구두 설명에 따라 약을 처방했다. 이번에는 '펜홀드정'이 처방됐다.



머니투데이 기자들은 지난 2일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얼마나 쉽게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이어트 성지'로 불리는 서울 소재 의원들을 방문했다. 디에타민은 알약 모양이 나비처럼 생겨 일명 '나비약'으로 불린다. 예쁜 모양과 달리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펜홀드정은 펜디메트라진 계열로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서울 구로구의 B의원에서 처방받은 식욕억제제 펜홀드정. 펜홀드정은 펜디메트라진 계열로 펜터민 계열과 마찬가지로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취재진서울 구로구의 B의원에서 처방받은 식욕억제제 펜홀드정. 펜홀드정은 펜디메트라진 계열로 펜터민 계열과 마찬가지로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취재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기준에 따르면 식욕억제제 사용 대상은 외인성 비만 환자들이다. △적절한 체중감량 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초기 체질량지수(BMI) 30kg/㎡ 이상 △당뇨 등 다른 위험인자가 있는 BMI 27kg/㎡ 이상 환자의 경우 체중감량 요법의 단기간 보조요법으로 식욕억제제가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취재진이 방문한 병원 중 체질량 지수와 키·몸무게를 측정하는 곳은 없었다. 까다로운 절차 없이 처방받기까지 15분이면 족했다.
문제는 이 같은 식욕억제제가 다이어트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욕억제제는 마약의 대체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등의 성분이 포함된 식욕억제제를 과다 복용할 경우 환각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따라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투약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대리 구매 역시 불법이지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나비약'을 검색하면 "#디에타민 #나비약 #펜터민 #식욕억제제 댈구(대리구매)해요."라는 식의 글이 다수 확인된다. "'댈구'해 달라"는 말은 자신 대신 약을 구해다 주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10대 청소년들 사이 이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아 투약하거나 SNS를 통해 판매하는 사례는 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노원경찰서는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후 온라인에서 판매한 35명을 체포했다. 이중 절반이 넘는 19명이 10대 청소년이었다. 지난해 6월에도 경남 지역에서 나비약을 사고판 10·20대 59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마약류 처방과 제조가 꼭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기는 뇌 발달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시기"라며 "청소년기 마약류를 투약하게 되면 충동성이 올라가고 중독이 되기도 쉽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용 마약류의 경우 정말 약이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보수적으로 처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도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의료용 마약류를 사고파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지능적으로나 사회 환경적, 문화적으로 의료용 마약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게 우려되는 지점"이라며 "한 사람이 여러 병원을 돌며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약 처방이나 제조 시 환자의 투약 이력을 확인하는 시스템 시행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단속하고자 지난해 11월과 지난달 식욕억제제 분야 점검을 실시했다. 또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처방 정보를 분석해 추적 관찰을 통해 처방 개선 여부를 관리할 예정이다.

지난달 25일에는 의사가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할 때 환자의 처방 투약 정보를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식·의약 분야 6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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