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2배 속도에 탄성…텍사스 놀라게 한 SK 기술보니

머니투데이 플레이노=박준식 특파원 2023.06.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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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시그넷은 지난해 10월 이사회를 통해 초기 1500만 달러(213억)를 투자해 텍사스 플라노시에 미국 생산기지를 만들기로 해 7개월 만인 지난 5일 개소식을 열었다. 회사 측은 앞으로 3700만 달러까지(500억 규모)투자를 확대해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사진= 박준식 기자 SK시그넷은 지난해 10월 이사회를 통해 초기 1500만 달러(213억)를 투자해 텍사스 플라노시에 미국 생산기지를 만들기로 해 7개월 만인 지난 5일 개소식을 열었다. 회사 측은 앞으로 3700만 달러까지(500억 규모)투자를 확대해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사진= 박준식 기자


5일(현지시간) 미국 남부 텍사스주 댈러스 위성 산업도시 플레이노(Plano). 산업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제공한 텍사스가 전기차 충전산업 클러스터로 육성하는 이 지역 집값은 최근 3년새 두 배로 뛰었다.



미국 정부가 전국적인 충전소 인프라 구축을 위해 약 80억 달러(10조4000억원)의 보조금을 풀기로 하자 기술력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모조리 몰려든 탓이다. 테슬라가 텍사스에 자리를 잡은 이후 전기차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충전소 제조업 클러스터가 텍사스 플레이노에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 기업 가운데 이 시장을 가장 먼저 눈여겨보고 진출한 기업은 SK시그넷이다. SK는 1998년 대우중공업 출신 황호철 대표가 창업한 EV시그넷의 과반인 55% 지분을 2021년 4월 사모펀드(PEF)로부터 2930억원에 사들여 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기존 석유 자원을 차량에 분배하는 주유소 사업을 SK네트웍스와 SK이노베이션을 통해 영위했던 그룹이 이제는 그를 대부분 접고 전기차 충전업을 제대로 벌이기 위해서다. SK는 기존 산업 내의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M&A(인수·합병)로 줄였고 오히려 초급속 충전 분야에서는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세계 1위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SK는 또 한번의 결단을 내렸다. 미국 정부가 보조금 지급의 전제조건으로 충전기의 내구성 철강재를 자국 업체만으로 한정하자 생산지를 다시 텍사스로 확장한 것이다. 약 1500만 달러를 투자해 1년 여 만에 SK시그넷은 한국 생산기지 수준의 제조업 기지를 플레이노시에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대만 델타와 경쟁…LG와 토요타도 나섰다
SK시그넷 곽기홍 미주생산법인 공장장이 오퍼레이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준식 기자 SK시그넷 곽기홍 미주생산법인 공장장이 오퍼레이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준식 기자
플레이노시에는 대만의 글로벌 파워서플라이 제조사인 델타가 버티고 있다. 여기에 SK시그넷이 1년 만에 연 1만대 생산능력 수준의 충전기 제조업 기지를 완성하면서 경쟁은 본격화할 전망이다. 게다가 플레이노에는 한국 LG그룹이 제조기지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돈줄이 보이는 충전 인프라시장에 격전을 예고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완성차그룹 일본 토요타도 플레이노 충전 클러스터 입성을 예비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SK시그넷은 이런 상황에서 올 7월부터 시간당 200KW급 초급속 시장에 내놓을 400KW 신제품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하기로 했다. 전세계적으로 400KW급 제품을 내놓은 곳은 아직까지 유럽 지멘스를 제외하고는 없는 수준이다. 미국시장에서는 SK시그넷이 최초로 이를 상용화해 하이앤드 마켓을 선점할 전략인 것이다. 올해 7월 미국 출시, 내년에는 유럽과 국내에서도 선보인다.


전기차 제조사인 테슬라는 '수퍼차저'라는 브랜드로 충전업을 병행하지만 아직까지 최대 출력이 150KW에 머물고 있다. 테슬라 모델S나 Y 등은 이 용량으로 충전을 하면 80% 이상 완충에 30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SK시그넷이 만든 400KW급 충전기를 활용하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차라면 절반 이하의 시간에 완충이 가능한 셈이다.

고속도로망과 우체국, 아마존 뚫는다
노진서 SK시그넷 텍사스공장 HR담당 팀장은 "미국 내 현지 채용인원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최근 가동 반 년 만에 임직원들의 제조기술 수준이 자리 잡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박준식 기자 노진서 SK시그넷 텍사스공장 HR담당 팀장은 "미국 내 현지 채용인원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최근 가동 반 년 만에 임직원들의 제조기술 수준이 자리 잡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박준식 기자
테슬라가 150KW급 충전소로 미국 내에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50%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테슬라의 과점사업을 경계하면서 공정경쟁을 요구하자 이들은 최근에 포드 전기차에 '수퍼차저'를 열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여기에다 10조원 이상의 충전소 인프라 보조금을 푸는 전제조건으로 충전기 시장의 과점도 철폐할 전망이다.

SK시그넷은 현재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A)라는 충전소 운영 사업자와 협업하고 있다. EA는 폭스바겐그룹이 지난 디젤게이트로 지게 된 20억 달러의 미국내 배상금을 청정 충전소 사업체 EA로 만들어 미국 정부와 협업하게 된 사업자다. EA는 4년 전까지는 SK시그넷 조달 비율을 25%로 한정했지만 제품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불량이 없고 안정성, 호환성이 뛰어나자 최근 수급 비율을 75%까지 올렸다.

SK시그넷은 납품처를 EA에 국한하지 않고 고소도로 사업자와 미국 포스트오피스(우체국) 등 공공기관 차량망, 아마존 등 기존 대형 수요자들로 늘릴 계획이다. 이미 400KW 신제품 'V2'의 선주문이 파일럿 형태로 이들에 의해 수백만불가량 이뤄진 상태다. 아직까지 세단형 전기차는 230KW 이상의 충전기를 수용하기 어렵지만 최근 완성차 제조사들이 소비자 수요에 맞춰 배터리 용량을 급속히 늘리고 있어 V2는 시장 선점효과를 노리고 있다. 여기에 대용량 배터리 충전을 요하는 상용트럭이나 버스, 드론택시(UAM) 충전에는 대용량 충전기가 필수적이다.

신정호 SK시그넷 대표는 "올해 매출은 3200억원, 2025년까지 매출 1조원 돌파를 확실하게 예상한다"며 "현재 32억 달러 규모인 초급속 충전시장이 2025년 70억 달러 수준으로 커지는데 이 가운데 최소 10억 달러 이상을 차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600억원의 매출이 3년 만에 6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테슬라 2배 충전속도…텍사스 주지사도 감탄
SK시그넷은 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플라노시 생산기지 개소식을 열고 전기차 충전기 신제품 V2의 시연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 SK그룹SK시그넷은 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플라노시 생산기지 개소식을 열고 전기차 충전기 신제품 V2의 시연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 SK그룹
이날 준공식에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주(State, 알래스카 제외)의 사실상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레그 에벗 주지사가 직접 축전을 보냈다. 에벗 주지사를 포함해 이날 행사에 직접 참석한 존 먼스 플레이노 시장은 'V2' 출전 시연회를 보면서 그 속도와 기술력, 내구성에 감탄했다. 제조업 귀환을 위해 적잖은 인센티브를 걸었는데 1년도 채 못되는 기간에 자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지를 만들어 초급속 제품을 상용화한 것에 놀란 것이다.

V2로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기준으로 충전시 15분이면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가격도 60% 충전에 약 12달러로 통상요금의 반값에 공급이 가능하다. 갈길이 바쁘고 도로망이 초장거리인 미국 고속도로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특히 V2는 이날 아이오닉5와 기아 EV6를 동시에 충전해 각 차량당 최대 200k이상 출력을 직접 증명해냈다. 또 V2의 파워캐비넷은 1기당 최대 600kW까지 출력이 가능해 충전기 디스펜서 2대로 4대까지 동시에 초급속 충전이 가능하다. 충전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만한 대안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텍사스 주정부는 플레이노시를 통해 이미 SK시그넷에 100만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와 인력채용 및 안전, 시험 인허가 과정에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아드리아나 크루즈 텍사스 경제개발국장은 "이 놀라운 새 생산기지의 개소를 반긴다"며 "4600만 달러의 자본으로 235개 일자리를 창출한 SK시그넷이 텍사스주는 물론 미국 전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충전기 등급은
SK시그넷이 개발한 V2 신제품 파워캐비넷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박준식 기자 SK시그넷이 개발한 V2 신제품 파워캐비넷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박준식 기자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서 통상 가정용 충전기는 7~11KW급이 이른바 완속으로 분류한다. 이 다음이 20~40KW급으로 이를 중속으로 나눈다면, 50~100KW급은 급속으로 볼 수 있다. 테슬라는 수퍼차저란 이름으로 150KW급을 활용하지만 완충에는 30분 이상이 걸린다. 장거리 여행에서 기존 화석연료와 큰 차이가 없으려면 완충시간을 '커피 한잔 마실' 10분 내로 줄여야 하는데 이 수준이 '초급속' 시장이라고 할 수 있고 200KW부터 이를 지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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