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할수록 더 궁금해지는 '핸섬한 악당' , 이준혁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06.0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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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3''서도 역대급 악역으로 존재감 뿜뿜

'범죄도시3',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범죄도시3',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왜, 경찰은 죽이면 안 돼?”



영화 ‘범죄도시3’ 초반부, 경찰을 때려 죽인 뒤 주성철(이준혁)의 대사다. 캐릭터의 무자비한 행동이나 문장의 함의보다, 귀에 꽂히는 이준혁의 목소리가 낯설어 놀랐다. 그간 이준혁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다. 캐릭터에 따라 목소리도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톤을 켜켜이 쌓아 올린 듯한 단단한 그 목소리는 급조하여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라 불리는 마석도(마동석) 형사의 활약이 가장 중요하다. 마석도의 강력한 주먹 한 방으로 악인들이 나가 떨어지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유쾌, 상쾌, 통쾌함을 일으키는데, 그렇기에 마석도에 맞서는 빌런의 존재는 마석도만큼이나 중요하다. 마석도가 때려잡아야 할 빌런이 극악무도할수록, 강력할수록 관객들의 카타르시스가 커지기 때문이다. ‘범죄도시3’의 3대 빌런 주성철을 맡은 이준혁의 고민 또한 컸을 수밖에 없다.



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사진제공=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이준혁은 주성철을 맡아 외형적 변화부터 꾀했다. 거구의 마석도와 위화감 없이 맞붙으려면 증량은 필수. 이준혁은 무려 20kg을 증량해 몸집을 키우고, 여러 차례 태닝을 감행하며 하얗던 피부를 검게 태웠다. 언론 시사회 때 기자회견장에 ‘로코 재질’의 얼굴로 들어서는 이준혁을 보고 어마어마한 괴리감을 느꼈을 정도로, 주성철은 이준혁의 연기 커리어 중 외모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역할이다. 단순히 목소리 톤을 굵게 하고 낮추는 정도가 아닌, 정장을 입고 본업과 마약 사건의 배후를 오가는 주성철의 인생이 집약된 목소리를 위해 보이스 트레이닝도 받았다. 처음에는 ‘벌크업’된 몸에 놀라겠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매료되는 건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이준혁은 외적인 변화가 아니어도 항상 다면적인 캐릭터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확신의 미모를 지녔지만, 그래서 캐릭터를 설명할 때 언제나 ‘잘생긴’이라는 수식어는 들어가지만, 미모를 활용하는 작품은 드물었다. 선역도 많았지만 대중의 찬사를 받았던 역할이 대부분 악역에 속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꽃개(꽃 같은 개XX)’라는 별명이 붙었던 ‘적도의 남자’의 이장일은 그 날카로운 미모가 도리어 캐릭터의 비열함을 돋보이게 만들었고,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의 박무신 중위도 변명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악인이었다. 새하얀 해군 제복을 입고 눈부신 외모를 과시했던 ‘60일, 지정생존자’의 오영석도 비뚤어진 신념에 찬 악인 계열.


'비밀의 숲' 시즌1 서동재를 연기 중인 이준혁. 사진제공=tvN'비밀의 숲' 시즌1 서동재를 연기 중인 이준혁. 사진제공=tvN
시즌1에선 ‘느그동재’로 불리다 시즌2에서 ‘우리동재’로 변화하는 ‘비밀의 숲’ 시리즈의 서동재 역은 이준혁이 그간 쌓아온 다면적 캐릭터의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델 뺨치는 미남이지만 가진 것 없는 배경과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으로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비리검사 서동재를, 이준혁은 얄미울 만큼 능글능글하게 소화해냈다. 어떻게든 윗선에 비벼보려 애쓰며 ‘짠내’를 유발하면서도 약자에게는 과감하게 야비하게 굴며 욕을 유발하는 서동재가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 시즌2에서 납치되며 사라졌을 때 그의 생존을 간절히 바라고, 그의 귀환에 환호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서동재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동재뿐 아니라 박무신이나 오영석 등 이준혁이 연기했던 캐릭터들도 모두 그 내밀한 심리와 전사(前史)가 궁금해지는, 스핀오프의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다. ‘범죄도시3’의 주성철도 그렇다. 다소 거친 피부와 정돈되지 않은 헤어스타일이긴 하지만 주성철은 1편의 장첸이나 2편의 강해상과 달리 단정히 슈트와 구두를 갖춰 입은 인물이다. 사람을 내리치며 하얀 슈트에 피가 튀고, 구둣발로 사람의 얼굴을 즈려 밟는 모습을 보면 이 인물은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건가 궁금해진다. 이미 대본에 쓰인 인물 자체가 다면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궁금증을 보는 이에게 강렬하게 투입시키는 건 온전히 배우의 몫이다. 이준혁은 전작들에서도, ‘범죄도시3’에서도 그 몫을 충실히 감당해낸다.

사진제공=에이스팩토리사진제공=에이스팩토리
이준혁은 올해 디즈니+로 공개 예정인 웹툰 원작 드라마 ‘비질란테’의 조강옥 역할로 대중에게 찾아올 예정이다. 김규삼 작가의 원작이 많은 사랑을 받은 데다, 조강옥은 전투력과 통찰력에 광기까지 갖춘 압도적 존재감의 인물인 만큼 서동재, 오영석, 주성철을 넘어서는 또 다른 놀라움을 안길 것으로 기대된다. ‘좋거나 나쁜 동재’에 대한 기대감이야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그 미모를 책임지고 알뜰하게 써먹어줄 작품에서 그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특별출연한 ‘어사와 조이’의 세자로 등장한 모습에 ‘심장폭행’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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