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래, 고쳐서, 공유하며…순환경제가 플라스틱을 쓰는 법

머니투데이 헬싱키(핀란드)=김훈남 기자 2023.06.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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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플라스틱으로 '돌리는' 경제<2회>: 순환경제 세계는 지금①

편집자주 신의 선물에서 인류 최악의 발명품으로 전락한 플라스틱. 우리나라의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2021년 기준 492만톤으로 추정된다. 매일 1만톤 이상 나오는 폐플라스틱은 재활용률은 50% 수준에 그친다. 정부와 산업계는 이같은 폐플라스틱의 환경위협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탈(脫) 플라스틱과 순환경제 조성'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품생산에서 소비, 폐기,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분야 순환경제 조성을 위한 노력을 점검하고 2027년 83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선점을 넘어 대한민국 수출 체력 강화에 이르는 길을 찾아본다.

지난달 30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순환경제포럼(WCEF) 2023'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김훈남지난달 30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순환경제포럼(WCEF) 2023'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김훈남


플라스틱은 만들어 쓰기 쉽다. 하지만 사용 후 재활용이 어렵다. 매립하면 분해까지 수백년이 걸린다. 때문에 순환경제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도전과제 역시 플라스틱이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현지시간)까지 나흘 일정으로 열린 '세계순환경제포럼(WCEF) 2023'에선 플라스틱을 포함한 순환경제 조성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제안이 쏟아졌다.



핀란드 의회의 혁신펀드 겸 싱크탱크 '시트라(Sitra)'가 2017년 첫 행사를 연 이후 올해 7회째를 맞은 WCEF는 순환경제 분야 세계 최대 포럼 중 하나다.

플라스틱 순환경제는 첫 제품을 만들 때부터…
더 오래, 고쳐서, 공유하며…순환경제가 플라스틱을 쓰는 법


국내에서도 정원관리·생활용품으로 유명한 핀란드 '피스카스'(Fiskars) 그룹의 카티 이하마키(Kati Ihamaki) 지속가능부문 부사장은 행사 첫날 '순환성과 장수성을 위한 디자인'을 주제로 그룹의 플라스틱 순환경제 조성을 위한 제품·사업 디자인 개선 노력을 설명했다.

이하마키 부사장은 "핀란드의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전략의 일부로 삼고 있다"며 "피스카스는 2030년까지 매출 대부분을 순환형 제품과 서비스에서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회사의 순환성·지속성 강화를 위해 "우선 탄소발자국이 적은 플라스틱과 철강 등 소재를 사용하고 부품은 분리 가능하되 같은 세대 제품이라면 부품별 호환이 가능하도록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정원용 가위를 예로 들면 가윗날이나 스프링 같은 부품을 동일한 규격으로 유지하면서 사용 중 제품이 손상되더라도 간단한 교환과 정비를 통해 보다 오래 사용하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끼리 제품을 공유하고 중고제품을 회사가 사들여 다시 파는 서비스까지 나선다고 했다. 보다 많은 제품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게 기존 '선형경제 모델'의 기업 활동이었다면 순환경제에서의 기업은 '오래 쓰는 제품을 다시 쓰고 나눠 쓰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게 발표의 요지다.

이하마키 부사장은 "소비자를 순환경제를 향한 여정에 동참시키고 협력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순환경제 목표 달성을 위해선 소매점과 중고거래상 등 공급업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토비아스 니엘슨(Tobias Nielsen) 유럽환경청(European Environment Agency, EEA) 소속 전문가는 포럼 둘째날(5월31일) '플라스틱의 순환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경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니엘슨 역시 이하마키 부사장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업스트림'(후방산업) 단계, 특히 디자인 단계에서의 환경성 강화를 주문했다.

니엘슨은 "업스트림(제품을 만드는)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이 부분이 (순환경제 조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기 때문"라며 "제품의 디자인은 수명 주기의 80%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불필요한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플라스틱 제품을 버리지 않고 수리할 수 있도록 재설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니엘슨은 "데이터를 통해 업스트림 활동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모니터링해야 한다"며 "EEA는 순환성 지표 스탬프를 설계해 얼마나 많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쓰는지, 재활용이 가능한지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센티브·투자·규제…순환경제를 더 잘돌아가게

 안드레아 리브라니(Andrea Liverani) 세계은행 환경·자원·블루이코노미 부문 수석연구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순환경제 포럼에서 순환경제 조성을 위한 투자와 정책 지원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훈남 안드레아 리브라니(Andrea Liverani) 세계은행 환경·자원·블루이코노미 부문 수석연구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순환경제 포럼에서 순환경제 조성을 위한 투자와 정책 지원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훈남
올해 WCEF행사에선 순환경제 조성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의 필요성도 수차례 강조됐다. 순환경제에서는 제품을 대량으로 싸게 만들어 소비한 뒤 버리는 기존의 선형경제 체제보다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선형경제와 순환경제의 비용 차이를 메울 만한 자본의 투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인센티브와 정책 지원이 동반해야 순환경제로의 성공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게 참가자들의 조언이다.

안드레아 리브라니(Andrea Liverani) 세계은행 환경·자원·블루이코노미 부문 수석연구원은 "우리의 선형경제는 수세기에 걸쳐 재정지원을 포함한 정책적 인센티브를 받아왔다"며 "매년 전세계 GDP(국내총생산)의 2%에 해당하는 1조8000억달러의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브라니 수석은 이어 "장기적으로 선형경제를 대체하기 위해선 게임의 규칙이 바뀌어야 한다"며 "노동에 대한 세금을 소재에 대한 세금으로 전환해 (재생·친환경) 소재 생산을 유도하고 연구와 혁신을 위한 자금조달, 적절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통한 자금 조달을 통해 올바른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스톤 (Steven Stone) UN(국제연합) 환경프로그램 부국장은 "매년 (주요국) 정부는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돈(보조금)을 지출하고 있다"며 "공공재정은 시장의 게임 규칙을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익을 창출하는 큰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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