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박사가 주차단속, 유학 다녀와도 '무직'…中서 무슨 일[김지산의 '군맹무中']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3.06.03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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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사이 석박사 2배 이상, 돌아오는 유학생 60만명…여름 1150만 대졸자까지 '바늘구멍'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구인 및 구직 행사장 /사진=바이두구인 및 구직 행사장 /사진=바이두


지난해 이맘때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한 뉴스가 주목받았다. 베이징시 상업과 외교 중심지 차오양구가 시행한 공무원 채용 합격자 명단에 석·박사 출신이 95%를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더 놀라운 건 말단 청관(도시관리)직 명단에 베이징대 박사가 포함된 것이었다. 팔뚝에 완장을 차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주차 단속을 하는 하급 중의 하급 관리직에 중국 제일 대학 베이징대 박사가 지원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중국 외교관 양성 요람인 외교대학과 중국 사회과학대학 석사, 영국 맨체스터 대학 석사가 차오양구 외곽 청관에 배정받았다.

이 뉴스는 중국 내 학력 인플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1인당 평균 소득이 1만달러 중반인 중국에서 박사 또는 유학파 출신은 특히나 상당한 권력 내지 재력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최근 보도에서 이 현상을 짚었다. 잉그리드 셰라는 호주 최고 대학 퀸즐랜드 졸업생이다. 중국 하이난대학을 졸업한 뒤 '스펙' 관리를 위해 호주로 떠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는 영어 교사 자리를 찾아 윈난성 쿤밍으로 떠났다. 그녀는 그러나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비슷한 스펙의 경쟁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중국 교육부 통계를 보면 올해 해외로 나갔거나 예정인 유학생 수는 54만5000명 정도다. 중국의 연간 대학 졸업생을 1000만명으로 본다면 5.4%에 해당한다. 이 정도는 약과다. 2019년에는 70만3000명이었다. 코로나19가 없었고 미·중 관계도 지금보다는 괜찮았던 시기다.

올해 중국으로 돌아올 걸로 예상되는 유학생은 60만명이 넘는다. 7~8월 졸업 예정인 대학생이 1158만명이다. 역대 최대 인원이다. 신규 대졸자에 기존 취준생, 돌아올 유학생까지, 구직자가 1700만명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16~24세 청년 실업률이 20.4%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일자리를 달라'고 호소하는 대졸자/사진=바이두'일자리를 달라'고 호소하는 대졸자/사진=바이두
일자리는 제한된 상황에서 길거리에 깔린 고학력자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교육 통계를 보면 2013년 배출된 박사가 5만3139명, 석사는 46만487명이었다. 올해 학위 취득자는 10년 만에 박사 2.18배, 석사 2.15배다. 베이징대 같은 곳은 2020년 이후 대학원생 수가 학부생 수를 넘어섰다.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1월 열린 '제7회 푸단 수석 경제학자 토론회'에서 류위안춘 상하이 재경대학 총장은 "중국에 40만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있는데, 그들은 월 3000위안(약 55만원)을 받으며 거지처럼 연구한다"며 "이들에게 월 1만위안(약 185만원) 수입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열띤 논쟁을 유발했다. 박사 과정 학생들은 열광했지만 대중은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 발상이라며 통렬히 비난했다.

중국 정부는 딜레마에 놓였다. 국가 발전, 특히 미·중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고급 인력 양성이 절실하지만 일자리 창출은 의욕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껏 해도 기업에 대졸자를 고용하면 보조금을 준다거나 국유기업에 100만명 인턴을 모집하라고 명령하는 정도다.

오히려 고학력자들의 주요 일자리 중 하나였던 과외 시장을 2021년 무너뜨렸다. 영리 목적의 개인 교습을 금지하는 통에 1500억달러(약 200조원)대 사교육 시장과 수만 명의 일자리를 공중분해 했다.

과도한 사교육에 부모들의 등골이 휘고 결국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 절벽에 부딪혔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조치였다. 그러나 출산율은 아직 개선되지 않고 실업률은 치솟고 있다.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부상한 이때 공공 일자리를 늘리기도 쉽지 않다.

개혁개방 이후 성장의 달콤한 과실만 맛보던 중국은 지금 같은 동시다발적 문제를 접하고 해결해본 적이 없다. 시진핑 3기 성공 여부는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푸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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