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나 아파…쉰다" 외국인 근로자 땡땡이에 한숨만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3.06.0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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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중앙회 '외국인 사업장 변경…' 토론회
기업 68% 요구받아…3회 이상 옮긴 근로자 6%
"정당한 이유없이 태업 땐 출국 등 제도보완 필요"

중소기업중앙회는 1일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 변경,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열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사업장 변경을 요구받았던 이동수 동진테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6개월 이상 숙련된 직원에게 일을 시켜야 해 캄보디아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고, 근로자를 빨리 입국시키기 위해 입국 비용까지 치렀는데 사업장 변경을 요구받았다. 이 대표는 캄보디아 근로자 한명이 다치지 않았는데 숙소에서 꾀병을 부리다 변경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근로자가 '사장님, 도장 찍어주세요' 하면 찍어줘야 한다"고 했다. /사진=김성진 기자.중소기업중앙회는 1일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 변경,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열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사업장 변경을 요구받았던 이동수 동진테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6개월 이상 숙련된 직원에게 일을 시켜야 해 캄보디아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고, 근로자를 빨리 입국시키기 위해 입국 비용까지 치렀는데 사업장 변경을 요구받았다. 이 대표는 캄보디아 근로자 한명이 다치지 않았는데 숙소에서 꾀병을 부리다 변경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근로자가 '사장님, 도장 찍어주세요' 하면 찍어줘야 한다"고 했다. /사진=김성진 기자.


"사장나임(님), 기계 붙들고 쓰러졌대요"

5년 전 캄보디아 출신 직원에게 이 말을 들을 때 이모 대표(당시 60)는 창고에서 제품 검사를 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경기도 모처에서 근로자 5인 미만 조그만 플라스틱 성형 회사를 하고 있다. 캄보디아인 직원 A씨는 사출기에 기대앉아 있었다. 외상은 없었다. 이 대표는 "차로 가자", "병원에 가자" 했다. A씨는 "싫다"고 했다. 집에 가 쉬겠느냐 묻자 "그러겠다"고 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쉬었다. 이 대표는 A씨와 같은 기숙사를 쓰는 캄보디아인 동료에게 "A씨가 밥은 먹었느냐", "몸은 괜찮느냐" 물었다. 동료는 한국에서 오래 일했다. 그는 "A씨 친형이 한국의 어느 공장에서 일하는데 거기 가려고 (꾀병) 저러는 거예요"라 했다.



A씨가 한국에 온 지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만 생각하면 A씨는 쓰러지기 전 태업도 했다. 보통 직원은 하루 8시간 일하고 플라스틱 조각 500개쯤 성형한다. A씨는 300개쯤 했다.

도저히 속도가 안 나자 A씨에게 '제품 검수'를 시켰다. 아이들 장난감에 쓰일 플라스틱인데 절단부에 까끌까끌한 부분이 있으면 안 되니 칼로 긁어내는 작업이다. 한 박스에 플라스틱 수백개가 들었는데 A씨는 몇개만 하고 박스를 닫았다. 여주, 이천 완구 공장에 납품했더니 전부 반품 처리됐다. 얼마 안 있어 A씨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사업자 변경서'에 도장을 찍어달라 했다.



외국인 근로자는 보통 'E-9' 비전문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이들은 일할 기업과 사전에 '매칭'돼 입국한다.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신 통계인 2020년 기준 외국인 근로자 35.1%가 사업자 변경을 해봤다. 22.2%는 1회, 6.7%는 2회, 6.1%는 3회 이상 옮겼다.

고용노동부는 예외적으로 '사업자 변경'을 허용한다. 휴업, 폐업,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등으로 부득이 출근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때 사업장이 변경된다. 여기에 추가 예외 사항으로 사용자가 '근로계약 해지'에 동의하면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중앙회)가 지난달 9~15일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했던 중소기업 500개 사를 조사하니 68%가 "사업장 변경을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한 기업자들에게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요구한 사유를 물으니 "친구 등과 함께 근무하고 싶어서"(38.5%)가 가장 많았다. "낮은 임금"(27.9%), 작업 환경 열악(14.4%)보다 높았다. 응답 기업 33.3%는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요구를 거절하고 태업, 27.1%는 꾀병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무단결근을 경험했다는 기업도 25%였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에는 브로커가 끼어들기도 한다. 이들은 외국인들에게 처우가 좋은 중소기업을 추천하고, 사업자 변경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코치한다. 브로커들은 외국인들에게 꾀병, 태업을 부추긴다. 보통 외국인이 입국하고 두 달쯤 지나 외국인등록증이 나왔을 때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 외국인등록증이 나오면 관광 등 외부 활동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중소기업 사장들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이들 사이에는 한국은 일하지 않아도 급여가 나오니 외국인 등록증이 나오면 '태업하고 편하게 일하면서 돈은 벌 수 있다'는 얘기가 돈다고 한다.



중앙회가 1일 개최한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 변경,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선 사업장 변경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최원충 성원A.C공업 대표는 "사전에 계약하고 온 기업이 맘에 안 들면 본국으로 출국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 지적했다. 중소기업 68.4%는 외국인이 E-9 비자로 입국하면 3년 이상 근무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1.2%는 사업장 변경을 전면 금지해달라고 요구했다. 75.2%는 "사업장 미변경 근로자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명로 중앙회 인력지원본부장은 "외국인이 입국하기 전 서류, 면접 단계에 공개되는 정보를 늘리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태업하면 출국하는 제도 등을 정부, 국회에 건의할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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