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살인'으로 끝난 돌봄…비극 2년, '영 케어러' 한숨은 그대로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기성훈 기자 2023.06.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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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사각지대 갇힌 영 케어러 (종합)

편집자주 2021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대구 청년 간병인 사건'은 '영케어러' 문제를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과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입시·취업 접고 종일 '병수발'…'청년간병인 비극' 2년, 바뀐게 없다
'간병 살인'으로 끝난 돌봄…비극 2년, '영 케어러' 한숨은 그대로


서울 구로구에서 아버지, 아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26살 김현주씨. 김씨의 하루는 취업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거나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대부분의 일과가 6년 전 뇌출혈 진단 이후 거동이 어려워진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2017년 어머니가 쓰려졌을 당시 김씨는 재수생이었다. 그는 "실용음악 쪽으로 진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음악 하는 게 돈이 만만찮다 보니 입시를 잠깐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운을 뗐다. 물론 그 '잠깐'이 '6년'이 될 줄은 몰랐다. 이어 "솔직히 그때는 이렇게까지 오래 돌봄을 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어머니의 상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예전처럼 회복할 수도 없게 되면서 작업치료 쪽으로 전공 등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가 함께 지내고 있긴 하지만, 월 100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병원비와 약값 등을 부담하느라 식당일에 집중하다 보니 돌봄은 오롯이 김씨의 몫이 돼버렸다. 그는 "어머니를 계속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에 많이 부친다"며 "올 초엔 그동안 어머니의 거동 등을 돕느라 허리와 손목 등에 무리가 간 게 터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빠듯한 경제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병원비 300만원을 더 지출해야 했던 것.

사실 지난해 대학 졸업 후엔 잠시 희망을 갖기도 했다. 취업을 준비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어머니의 '간병인'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이 어머니가 추가로 암 판정을 받았고, 결국 김씨는 취업마저 미루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힘들지만, 시간이 없어 제 미래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가장 절망스럽다"며 "언제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할지 기한이 없다는 점도 막막한 부분"이라고 하소연했다. 다시 음악에 대한 꿈이 드문드문 생각날 때도 있지만, 지금 김씨의 상황에선 언감생심이다.



2021년 대구의 20대 청년이 홀로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다 돌봄을 포기해 죽음에 이르게 한 '대구 청년 간병인 비극' 사건 이후 김씨와 같은 '영 케어러(가족돌봄청년·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급증했다. 올해 정부와 서울시 등은 관련 실태조사를 발표했지만, 김씨의 삶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는 "영 케어러가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니 종합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러기엔 여전히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지원이 늦어질수록 돌봄에서 오는 부담은 늘어나기 때문에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에 마련된 장기 요양 제도 등 요양 보호 체계를 활용해 영 케어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영 케어러가 가장 걱정하는 건 본인이 취업 준비를 하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지킬 사람이 없다는 부분인데, 요양보호사 등이 이런 지점에 대해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밥 차리고, 할머니 돌보는 중학생…어린 '영 케어러' 여전히 사각지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돌봄 선생님이 가져다준 반찬이 다 떨어지면 냉동식품으로만 밥을 먹어야 해요. 동생이 말 안 듣는 게 힘이 들고, 학교에 가다 가스나 전기를 깜빡한 적도 많아요."


경기도 포천시에서 초등학교 5학년 남동생, 할머니와 살고 있는 유모양(14). 중학교에 입학한 지 반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지만, 유양의 목소리엔 걱정이 가득했다. 부모님의 방임(아동학대)으로 친인척위탁을 통해 할머니 손에 자란 유양은 지난 3월 할머니가 일을 하다 크게 다친 뒤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지금은 복지센터와 연결이 돼 담당자가 찾아와 먹을 것을 주고 집안일을 돕고 있지만,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도움을 구할 곳은 없었다. 유양은 "가족 중엔 저희를 도와주려 하는 분들이 없었고, 저희끼리 있다는 것조차 모르셨다"며 "밥과 청소, 빨래는 모두 저의 몫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할머니가 다치기 전만 해도 챙김을 받았던 유양에게 '영 케어러(가족돌봄청년·청소년)'로서의 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게 없는 상황이다. 그는 "최근 할머니가 퇴원해 집에 오셨지만, 아직 많이 아프시고 움직이기도 어려워하신다"며 "예전엔 학교가 끝나면 지역아동센터에 가 친구들을 만났는데 요즘은 할머니를 대신해 저녁을 차려야 해서 집에 곧장 온다"고 털어놨다.

중1과 초5, 아직 부모님의 손길이 절실한 나이라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유양의 담당 복지사는 "최근 아이들의 속옷이 2~3장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기초적인 위생부터 걱정된다"고 말했다.

◇'생계 지원' 필요 1위..대부분 복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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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구 청년 간병인 사건'은 유양처럼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영 케어러'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당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었던 상황이라 정부와 서울시 등은 관련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최근 이를 발표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첫 발을 떼긴 했지만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조사에서 모두 만 13세 미만의 어린 영 케어러들은 빠진 상황인데다, 현장에선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지원책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돌봄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영 케어러의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이들을 도울 시스템 마련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지난 4월 복지부와 서울시가 발표한 조사에서 모두 영 케어러들은 '생계지원'이 가장 절실하다고 응답했다. 수치로는 각각 75.6%, 61.8%였다. 이어 2위는 복지부 조사에선 의료, 서울시는 돌봄 지원이었다. 선호하는 순위는 조금씩 달랐을지 몰라도 영 케어러 모두 최소 2개 이상의 지원을 바라고 있었다. 7년째 영 케어러 생활 중인 김현주씨(26)는 "한 부분이 해결된다고 돌봄을 벗어날 수 있진 않다"며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도 시간이 없을 수 있고, 정보가 부족해 지원액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조사에 응한 영 케어러들의 평균 돌봄 기간은 46.1개월로 3년 이상의 장기간 돌봄을 제공하고 있었다. 한 번 영 케어러 생활을 시작하면 돌봄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영 케어러의 주당 평균 돌봄 시간도 21.6시간으로 희망 돌봄 시간인 14.3시간보다 7.3시간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세 미만 초등생 제외..사각지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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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 케어러들은 일반 청년보다 삶의 만족도가 낮고, 우울감이 높으며, 미래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 조사에서 영 케어러가 삶에 불만족(32.5%)한다는 응답은 만족한다(28.2%)보다 4% 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조사에서 영 케어러가 삶에 불만족한다는 응답은 22.2%로 일반청년(10%)의 2배 이상이었다.

이번 조사로 영 케어러들이 처한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됐지만,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선 만 13세 미만 초등학생부터 조사 대상에 빠졌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진 않을 수 있지만, 국가가 나서서 발굴해야 할 필요가 가장 큰 집단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해 최근 1년 이내 재단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이들 중 만 7~24세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6%가 영 케어러였으며, 그중 23%가 초등학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59%)은 한부모 세대였으며, 학습 및 진로진학, 경제활동과 더불어 돌봄 역할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도 조사됐다.

박정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옹호본부장은 "13세 이하 가족돌봄아동 사례는 계속 발견되고 있다"며 "정부의 실태조사가 가족돌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대상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향후 필요한 제도와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증거 기반이 되는 과업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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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법안 3건 계류.."장기요양보험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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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관련 정책과 시스템 마련 등이 더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구 청년 간병인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이제 겨우 실태 파악을 마쳤다는 점에서다. 그나마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선 2021년부터 선제적으로 지원책을 마련한 서울 서대문구가 있다. '돌봄SOS센터'를 운영해 영 케어러들에게 맞춤형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필요 시 가사·간병 방문서비스 등도 지원 중이다.

현재 국회에도 영 케어러 지원 및 관련 기구 설치 등의 근거가 담긴 법안 3건이 발의된 상태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지난 3월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을 대표 발의한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건이 공론화됐을 당시 대선 후보들도 국가의 간병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아직도 전국에 정확히 몇 명의 영 케어러가 존재하는지 규모 파악조차 안 되는 등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라도 하루빨리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복지 시스템을 활용해 영 케어러를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 회장)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기존의 돌봄서비스 체계를 개선해 간병 지원 등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동시에 청년이란 특성에 맞춰 취업, 학업 등의 부분에 대한 지원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보가 없어 지원받지 못하는 아동·청년들이 없도록 포털이나 상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보조금 주고 지원 센터 운영..해외선 '영 케어러' 이렇게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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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양 부담을 떠안은 '영 케어러(가족돌봄청년·청소년)'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과 호주, 일본 등의 국가는 영 케어러가 또래 집단과 같은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을 사회 안전망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부양 부담 때문에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1일 서울시 복지재단 등에 따르면 영국의 '아동 및 가족법'은 장애, 신체·정신질환, 약물 등 문제를 가진 가족·친척을 돌보는 18세 이하 청소년을 영 케어러로 분류한다. 18~24세의 후기청소년은 영 어덜트 케어러(Young Adult Carer)로 세분화한다.

영국은 아동복지법 내 영 케어러의 정의·권리·지원·발굴 방안 등을 규정하고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우선 영 케어러 보조금을 연간 약 308파운드(약 50만원) 지급한다. 부양 부담으로 영 케어러가 자신만을 위해 쓸 돈이 없다는 목소리에 보조금으로 개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게 가장 큰 장점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지원기관 케어러스 트러스트(Carers Trust)는 영 케어러 교육훈련프로그램 운영, 긴급지원 등을 담당하고 온라인 플랫폼 칠드런스 소사이어티(The Children's Society)는 거주지 내 지원기관 안내 및 영 케어러 인식 제고 역할을 수행한다.

호주는 장애와 신체·정신질환, 약물 등 문제의 가족·친척·지인을 돌보는 25세 이하를 영 케어러로 정의한다. 2010년 '케어러 인정법'(Carer Recognition Act 2010)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학비 보조금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영 케어러 1명 당 연간 3000호주 달러(약 258만원)를 준다. 보조금을 받는 영 케어러 중 55%가 보조금을 받은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거나 시간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영 케어러는 사회적 유대감 증진, 일상적인 스트레스의 감소 등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다. 정부는 아울러 영 케어러 대상으로 자조모임과 자기주도 코칭, 긴급 휴식, 돌봄 상식 등의 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간병 살인'으로 끝난 돌봄…비극 2년, '영 케어러' 한숨은 그대로
25세 이하를 영 케어러로 정한 아일랜드는 지원기관(Family Carers Ireland Center)과 온라인 플랫폼(Family Carers Ireland)을 통해 지원한다. 지원기관에선 간병인 지원매니저가 영 케어러 개별 면담 및 상담·가정방문·간병 등의 서비스를 안내한다. 10~24세의 영 케어러들이 도서구입·온라인 강의 등을 이용할 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카드도 발급해준다.

스웨덴은 18세 미만을 영 케어러로 보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부모나 가족 전체를 지원한다. 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부모가 있는 아동에게는 여름 캠프와 같은 휴식을 제공한다. 지난해 영 케어러들을 위한 '영 케어러 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일본이 적극적이다. 2021년 영 케어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국단위 실태조사에 실시한 일본은 18세 이하 영 케어러를 대상으로 조기 발견을 통한 상담과 가사 육아 지원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 중에선 사이타마현이 2020년 3월 전국 최초로 영 케어러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18세 미만을 영 케어러로 명시하고 '적절한 교육 기회를 확보하고 심신의 건강한 성장 및 발달 또는 자립을 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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