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60% 돈 벌어 이자도 못 냈다…대기업도 '한계기업' 속출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3.05.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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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60% 돈 벌어 이자도 못 냈다…대기업도 '한계기업' 속출


올해 1분기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금리 인상과 함께 업황 침체로 인한 이익 감소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한계기업이 속출했다.

올해도 고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자금난은 한층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적이 전년 대비 비교분석이 가능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278개사 중 이자보상배율 1미만인 한계기업은 518개사로 전체의 40.5%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32개사(33.8%, 이하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한계기업 수가 20% 가량 증가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금리 인상에 취약한 중소기업에서 한계기업이 크게 늘었다. 상장사협 분류 기준 중소기업 453개사 중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곳은 지난해 1분기 227개사(50.1%)에서 올해 1분기 271개사(59.8%)로 증가했다. 중소기업 60%가 자금난을 겪는 한계기업인 셈이다.

대기업도 상황은 비슷했다. 올해 1분기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 대기업은 32곳으로 전체의 21.3%를 차지했다. 지난해 23곳(15.3%)보다 늘었다. SK스퀘어 (77,800원 ▼7,700 -9.01%), SK아이이테크놀로지 (61,700원 ▼2,500 -3.89%), LG디스플레이 (10,280원 ▲40 +0.39%), 현대미포조선 (70,600원 ▼3,000 -4.08%), 효성화학 (56,400원 ▼1,000 -1.74%) 등 영업손실을 기록한 기업도 있지만 흑자를 낸 기업 중에서도 이마트 (63,000원 0.00%), 효성 (58,400원 ▲100 +0.17%), 한진칼 (57,400원 ▼1,000 -1.71%), 롯데쇼핑 (68,200원 ▲1,400 +2.10%) 등은 이자비용이 영업이익보다 더 높았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재무 안정성을 살펴보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경영 악화로 이익이 줄거나 재무구조 악화로 이자비용이 상승하면 이자보상배율은 떨어진다. 번 돈보다 이자가 더 많이 나가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가능성에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이자보상배율 1미만인 기업은 한계기업으로 부른다.


올해 1분기 상장사들의 재무상태가 악화한 가장 큰 원인은 금리 상승이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강력한 긴축 정책이 지난해부터 이어지면서 기준금리와 함께 시중금리 역시 급격히 상승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21년7월 0.5%에서 올해 1월 3.5%로 1년6개월 동안 3%포인트 올랐다.

회사채 금리는 지난 30일 기준 더블A 마이너스(AA-)가 4.359%로 지난해 초 2.46%보다 1.9%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신용등급 트리플B 마이너스(BBB-) 이하 채권 금리는 지난해 초 8.316%에서 지난 30일 10.751%로 올랐다.

금리 인상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만 끝나지 않았다. 경기가 위축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각종 비용이 늘면서 이익은 급감했다. 올해 1분기 상장사의 총 이자비용은 9조5931억원으로 전년 대비 82.2% 늘어난 반면 영업이익은 21조6438억원으로 56.1% 감소했다. 전체 이자보상배율 역시 지난해 1분기 9.38배에서 올해 2.26배로 뚝 떨어졌다.

번 돈으로 이자 갚기 어렵다면 갖고 있는 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 지표도 지난해보다 악화했다. 유동자산(1년 이내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을 유동부채(1년 이내 갚아야 하는 부채)로 나눈 값인 유동비율은 올해 1분기 상장사 평균 132.5%로 지난해 1분기 141.5%보다 낮아졌다.

문제는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긴축을 야기했던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최근 4%대로 진정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인플레이션 완화 속도가 갈수록 느려지면서 미국이 6월에도 금리를 인상할 확률은 더 높아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회견에서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발언했다.

특히 최근 우량채로만 자금이 쏠리는 채권시장 양극화로 인해 중소기업은 금리가 더 비싼 금융권 대출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상장 대기업 중 회사채 조달 실적이 있는 기업 비중은 2021년 54.3%에서 지난해 49.6%로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은 18.9%에서 9.4%로 떨어지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 기업들은 CP(기업어음)나 전자단기사채로 돈을 빌리거나 금융권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행히 최근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금리 상승에 따른 기업 신용위험 우려는 완화하고 있다"며 "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고 자금시장을 둘러싼 위험요인이 남아있어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급격히 개선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가장 큰 불안요인은 미국과 유럽의 은행 위기와 같은 금융 불안정성 확산"이라며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인한 고금리가 지속될 위험도 있어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구조조정의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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