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민의 생명과 바꾼 간호법 외통수

머니투데이 김명룡 바이오부장 2023.06.0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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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 정권 심판 투쟁"(간호법 재의요구권 발동시)
"의사협회 등 의료연대 투쟁"(간호법 수용시)

어떤 경우의 수에도 누군가의 강력한 반대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지난 4월27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뜨거운 감자인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킬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간호법 제정을 요구하는 간호사 직역과 이를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의료단체로 구성된 '13보건복지의료연대' 중 한 곳에선 무조건 극단적인 대응이 나왔을 것이다.



이 뜨거운 감자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넘겨졌다.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에 따라 두 진영의 대응이 정해지는 상황이 됐다. 윤 대통령으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진위 논란이 있었지만, 그가 대통령 후보시절 간호법 제정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어떤 결정도 부담스러운 '외통수'에 걸렸단 분석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고심 끝에 지난 16일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온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야당 입장에선 묘수라고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당은 정략적인 이익을 위해 각 직역단체의 최소한의 조율도 이뤄지지 않은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간호법은 어떻게 유례없는 의료 갈등의 뇌관이 됐을까. 이번에 폐기된 간호법이 발의된 건 2021년이다. 지난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재표결에서 부결되기까지 2년 동안 이 법안은 의료계 직역 간 사상 유례없는 갈등과 분열을 남겼다. 50만명이라는 간호사단체, 400만명이라는 보건의료연대 등 모두 450만이 넘는 이들이 각자의 이익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동안 이들의 이견의 폭을 줄여주는 역할을 누구도 하지 못했다.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이들은 모두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료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원팀'이다. 어느 직역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전체 의료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 각 직역의 권익과 이해가 얽혀 있는 문제를 중재하지 못한 채 법안을 통과시킨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미다.

중재는 서로 의견이 상충하는 이들의 공동의 합의안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협상분야 전문가 개빈 케니디의 저서 '협상가능'을 보면 '양쪽 당사자에게 가장 이로운 결론을 도출하려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나온다. 양쪽이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고집한다면, 해결책 없이 힘겨루기만 계속된다는 것이다.


협력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정치권이다. 하지만 여야는 어떠한 중재안도 내놓지 못했다. 각 단체 장들은 각각 '무기한 단식'에 나서며 강하게 부딪혔다. 중재 없이 최고조로 치닫는 양측 갈등은 시급히 추진돼야 할 의료개혁 작업에도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는 의료 수요자인 국민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관련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복지부는 양측의 의견을 듣고 조율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이다. 법안과 관련된 단체들을 모아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해야 했지만 실패했다.

간호법은 상처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민주당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간호사들은 정치적 결집력이 강해 대선보다 투표율이 낮은 총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나와서다. 간호법은 반대하는 의료연대가 숫자는 많지만 결집력이 약해, 간호사들의 마음을 얻은 것이 더 유리하다는 해석도 곁들여진다.

실제로 간호사들은 간호법을 저지해온 국민의힘 의원들을 총선에서 낙선시켜 간호법 재정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해선 '낙선 운동'도 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1인 1정당 가입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 명확화, 처우 개선은 의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총선에서 더 많을 표를 얻기 위한 전략 정도로 이용돼선 안된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그들의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며 미소를 짓겠으나 위험한 도박일 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 얄팍한 술수로만 보인다.
[광화문]국민의 생명과 바꾼 간호법 외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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