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취업 접고 종일 '병수발'…'청년간병인 비극' 2년, 바뀐게 없다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기성훈 기자 2023.06.01 05:30
글자크기

[MT리포트] 사각지대 갇힌 영 케어러①

편집자주 2021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대구 청년 간병인 사건'은 '영케어러' 문제를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과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입시·취업 접고 종일 '병수발'…'청년간병인 비극' 2년, 바뀐게 없다


서울 구로구에서 아버지, 아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26살 김현주씨. 김씨의 하루는 취업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거나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대부분의 일과가 6년 전 뇌출혈 진단 이후 거동이 어려워진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2017년 어머니가 쓰려졌을 당시 김씨는 재수생이었다. 그는 "실용음악 쪽으로 진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음악 하는 게 돈이 만만찮다 보니 입시를 잠깐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운을 뗐다. 물론 그 '잠깐'이 '6년'이 될 줄은 몰랐다. 이어 "솔직히 그때는 이렇게까지 오래 돌봄을 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어머니의 상태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예전처럼 회복할 수도 없게 되면서 작업치료 쪽으로 전공 등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가 함께 지내고 있긴 하지만, 월 100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병원비와 약값 등을 부담하느라 식당일에 집중하다 보니 돌봄은 오롯이 김씨의 몫이 돼버렸다. 그는 "어머니를 계속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에 많이 부친다"며 "올 초엔 그동안 어머니의 거동 등을 돕느라 허리와 손목 등에 무리가 간 게 터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빠듯한 경제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병원비 300만원을 더 지출해야 했던 것.

사실 지난해 대학 졸업 후엔 잠시 희망을 갖기도 했다. 취업을 준비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어머니의 '간병인'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이 어머니가 추가로 암 판정을 받았고, 결국 김씨는 취업마저 미루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힘들지만, 시간이 없어 제 미래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가장 절망스럽다"며 "언제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할지 기한이 없다는 점도 막막한 부분"이라고 하소연했다. 다시 음악에 대한 꿈이 드문드문 생각날 때도 있지만, 지금 김씨의 상황에선 언감생심이다.



2021년 대구의 20대 청년이 홀로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다 돌봄을 포기해 죽음에 이르게 한 '대구 청년 간병인 비극' 사건 이후 김씨와 같은 '영 케어러(가족돌봄청년·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급증했다. 올해 정부와 서울시 등은 관련 실태조사를 발표했지만, 김씨의 삶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는 "영 케어러가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니 종합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러기엔 여전히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지원이 늦어질수록 돌봄에서 오는 부담은 늘어나기 때문에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에 마련된 장기 요양 제도 등 요양 보호 체계를 활용해 영 케어러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영 케어러가 가장 걱정하는 건 본인이 취업 준비를 하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지킬 사람이 없다는 부분인데, 요양보호사 등이 이런 지점에 대해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