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는 잊고 나무는 기억한다 [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3.05.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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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초등학생 아들 담임교사의 전화를 받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들이 동급생한테 맞았다는 것이다. A씨는 이어진 담임교사의 말에는 "뭐, 뭐라구요?"라고 말을 더듬으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때린 아이가 여학생이라는 것이다. (아들은 당연히 남자인데다 태권도 2품이고 여학생은 태권도 밤띠라고 했다.)



그 여학생이 피구를 하면서 아들만 골라 공으로 맞히고 평소에 손바닥으로 아들의 윗등짝을 때렸다고 한다. 아들은 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이를 알리는 걸 택했다. 담임교사는 여학생과 그 부모의 말을 들어본 뒤 A씨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열기를 바라시나요?" 담임교사는 물었다.



A씨는 "그런 걸 가지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교사들의 고충이 십분 이해됐다. 예전 같으면 둘을 불러 놓고 얘기를 들어본 뒤 벌을 주거나 한 뒤 화해를 시켰으면 될 일도 이젠 정식으로 문제 삼을 것인지 학부모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벼룩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아이 수십 명을 매일 한나절 넘게 모아놓고 있는데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랴.

하지만 교사의 이런 대처의 효과는 확실했다. 더 이상 여학생의 행위는 반복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행위가 '학폭'으로 취급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에게 재량권이 없어 지나치게 사소한 행위까지 처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친구의 마스크를 잡아당겼다가 학폭위에 제소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남학생이 현장학습을 가는 버스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다가 뒤에 앉은 여학생의 허벅지에 접촉했다는 이유로 학폭위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소해 보이는 일도 피해자의 감정을 존중하고 그 부모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물리적·심리적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범위)는 처한 위치에 따라, 주체에 따라 다르다. 절제가 어려운 것은 그런 이유다.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잊지 못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알려주듯 피해자의 상처는 가해자의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 교사의 적절한 조치는 학생들의 감수성을 키운다. 자신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죽음이라는 비극까지 낳는 학폭의 상당수도 이런 교사의 조치가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11일 학폭을 호소하는 글을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충남 천안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이 된 학생은 장기간 동급생한테서 욕설을 듣고 비하, 모욕을 당해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 학교에도 이런 사실을 알리고 학폭위를 열어달라고 부탁했지만 학교는 제대로 된 상담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게 유족 측의 얘기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경찰 조사가 불가피해졌다. 형사처벌까지 열려있다. 학교가 제대로 처신했다면 피해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가해자 역시 자신의 행위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바로잡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든 학폭에 교사가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 상호간, 또는 부모들간 갈등을 줄이고, 학생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위치인 건 분명하다.

교원지위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는 교원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높은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교원이 그 권위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가가 특별법으로 이처럼 교사를 예우하는 것은, 지금이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때가 아니라 하더라도 교사가 그만큼 학생의 정신적, 육체적 안전에 막중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도끼는 잊고 나무는 기억한다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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