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작업자 휴대전화로 위험 확인…"규제 아닌 규율 더 효과적"

머니투데이 울산=조규희 기자 2023.05.3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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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직원이 26일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고용노동부 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직원이 26일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고용노동부


'자기 규율' 기반의 위험성 평가 도입을 두고 우려가 적잖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직접 작업 현장의 위험을 평가하고 중대재해와 사건·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현장에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150만평 부지에서 하루 3만명의 근로자가 작업을 수행하는 울산 HD현대중공업은 본사뿐 아니라 하청업체의 작업 위험을 줄이고자 위험성 평가를 도입, 실시 중이다.

현장을 찾은 지난 26일에도 위험성 평가는 당일 작업 시작부터 적용됐다. 하청업체인 금영산업 소속 근로자 10여명은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 Tool Box Meeting)'를 통해 △근로자의 건강 상태 △그날 수행해야 할 업무 △업무 진척도 등을 확인했다. 작업반장의 일방적·형식적 확인이 아니었다. 근로자도 업무 환경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상호 보완적 형태로 진행됐다.



특히 근로자는 본인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위험성평가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각각의 문항에 답하는 방식으로 작업 위험에 대한 '인지'를 넓혔다.

문항을 살펴보니 '떨어짐' 사고와 관련 △안전벨트훅 체결 위치 △작업대/사다리 설치상태 △생명줄 설치 유무 상태 △핸드레일/개구부 덮개 설치 상태 등에 대해 모든 작업자가 개별적으로 해당 사항에 대해 확인하도록 돼 있었다. 확인 후 작업이 시작됐다.

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근로자가 26일 휴대전화에 설치된 프로그램에서 위험사항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조규희 기자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근로자가 26일 휴대전화에 설치된 프로그램에서 위험사항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조규희 기자
이런 위험성평가 문항은 '작업 표준'과 연계된다. HD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 △엔진기계 △특수선 등 사업 단위별로 'Hi-STANDARD'라는 작업 표준을 정해놓았다. 각각의 작업 표준에서 세부적으로 단위 작업들을 쪼개 안전 사항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작업 정리' 부분에서 근로자의 업무는 △작업 완료 후 청소 △분진 청소 및 화학물 지정된 장소 폐기 등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는 '걸림과 넘어짐'과 '화재' 등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이같은 예측가능한 사고를 위험성 강도로 다시 구분하고 △작업 전 △중간 △마무리 등 작업 단계별로 근로자에게 인지시킨다.

HD현대중공업은 이과정을 거쳐 6325개의 작업 표준에 대해 동일한 수의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적용하고 있다. 공정별, 구간별 근로자의 업무 형태에 따른 작업 표준을 보유한 업체라면 이를 기반으로 위험성평가를 손쉽게 도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위험성평가는 기존 처벌·감독 방식에서 노사가 함께 작업 위험을 파악하고 사고를 줄이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라며 "단순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라니라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현장에서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의 안전 관련 1년 예산은 3000억원 규모다. 국내 최대 기업에 걸맞게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통역원까지 구비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다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사업체는 일정 부분 정부 지원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현장에서 "협력업체, 중소기업, 제조·건설 하청업체 등이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위험성평가 체계 방식이 알기 쉽게 바뀌었고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으며 정부도 여러 지원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울산 HD현대중공업을 찾아 위험성평가 실시와 안전 교육에 대해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고용노동부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울산 HD현대중공업을 찾아 위험성평가 실시와 안전 교육에 대해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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