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신약인 '엔허투'는 현재까지 해당 암에서 11개의 임상시험이 진행(4월 기준, 진행 중 포함)됐다. 초기·전이성 유방암을 가리지 않고 기존 치료보다 훨씬 개선된 성적을 내며 유방암의 새로운 '무기'로 조명받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엔허투의 유방암 임상 3상 결과가 발표될 때는 그 우수성에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다.
박연희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엔허투 등 유방암 치료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삼성서울병원
블록버스터 의약품에 암세포 죽이는 '폭탄' 붙여다행히 유방암은 타깃(표적) 치료가 일반화됐다. 에스트로젠과 프로게스테론(호르몬) 수용체가 있느냐(양성) 없느냐(음성), 사람상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2(HER2)가 있느냐 없느냐에 맞춰 표적 치료 항암제를 처방한다. 이 중에서도 표적 치료 결과가 특히 좋은 타입은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는 HER2 양성 유방암이다. 표적 치료 항암제(허셉틴, 퍼제타)와 일반적인 세포 독성 항암제(카보플라틴, 도세탁셀)를 함께 사용하는 'TCHP 요법'은 수술 전 선행항암요법으로 뛰어난 치료 결과를 보이며 HER2 양성 유방암의 표준 치료로 수년간 활용돼왔다.
하지만 이 역시 대상 환자가 비교적 제한적이고 특히, 함께 쓰는 세포 독성 항암제의 독성이 만만치 않아 기저질환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환자는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4기 암 환자의 경우 표준치료의 한계점은 더욱 명확하다. 박 교수가 임상시험에 매진하는 배경이다. 박 교수는 "난치성 유방암에서 정답(항암제)이 없을 땐 임상시험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때 이 약을 쓰지 못해서 죽었다는 생각은 나도, 환자에게도 들고 싶게 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사실 이전에도 ADC를 활용한 유방암 치료제 '케싸일라'가 있었다. 현재 TCHP 요법이 듣지 않는 환자의 수술 후 보조요법에 표준 치료로 쓰인다. 케싸일라도 허셉틴에 세포 독성물질을 붙인 형태지만, 엔허투의 치료 효과가 훨씬 준수하다. 이 둘을 직접 비교한 임상 결과 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은 엔허투가 28.8개월로 케싸일라(6.8개월)보다 22개월 길었다. 케싸일라를 썼지만,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 엔허투를 쓸 때도 거의 모든 사례에서 치료 반응이 나타난다. 항체는 같지만 서로 다른 약물(페이로드)과 연결체(링커) 기술이 모든 것을 바꾼다. 유전공학의 승리다. 박 교수는 "엔허투는 임상적 가치가 커 2차 치료부터 4기 유방암의 1차 치료, 수술 전(선행), 수술 후 재발, 뇌전이 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며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우리 병원에도 선행에서 수술 후 재발까지 임상 연구로 참여한 환자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항암 신약 '코리안 패싱' 마음 아파, 정부 역할 중요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임상시험 강국이다. 상급종합병원에 암 환자가 몰리다 보니 대상자 모집이 쉽고 진행 비용이 덜 든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을 선호하는 이유다. 삼성서울병원은 박연희 교수 등 명의 반열에 오른 의료진의 '맨파워'에 힘입어 전국 유방암 환자의 1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그가 수행 중인 유방암 임상시험은 엔허투를 포함해 70~80개에 달한다. 임상을 의뢰한 글로벌 제약사에서 "총알처럼 날아다니며 일하느냐"고 물었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산다.
박연희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사진=삼성서울병원
한국 의료진은 신약을 쥔 글로벌 제약사에게 경제적인 이점과 높은 의료 수준 등을 앞세워 임상시험 '수주'에 나선다. 박 교수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제약사와 '갑'과 '을'을 넘나드는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그는 환자를 우선 생각한다고 했다. 글로벌 제약사에게 치료 기회를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 그 임상이 한국 환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설계하려 머리를 싸맨다. 박 교수는 "짧지만, 의미 있는 삶의 연장을 위해 수많은 환자가 나를 찾는데 이들이 손해를 보는 건 참을 수 없다. 그건 한국 의사로서 나의 자존심"이라며 "어렵게 만든 신약 도입의 기회를 경제적인 이유로 글로벌 제약사가 포기하는 '코리안 패싱'이 가능한 한 일어나지 않게, 한국 정부라는 '보험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