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에 대한 집착, 범행으로

이동식은 산 닭을 잡는 사진으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참신하다는 극찬과 함께 각종 대회에서 10여 차례 입상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에도 가입했으며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동식은 평소 알고 지낸 여성 A씨에게 접근, 자신의 모델이 돼 달라고 했다. "출세를 시켜주겠다"며 꾀어내 누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둘은 1982년 12월 14일 오전 11시 서울 호암산에서 만났다. 이동식은 A씨가 추위에 떨자 감기약이라며 사이안화칼륨(청산가리)을 건넸다. 약을 먹은 A씨는 그대로 쓰러져 발작했고, 이동식은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촬영을 시작했다.
"안 죽였다"던 이동식…'사진'에 발목 잡혔다

이동식은 사진에 대해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고, 나는 숨진 A씨를 찍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진은 이동식을 살인범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사후엔 보통 살갗의 솜털이 눕는다. 그런데 사망한 A씨 피부의 솜털은 서 있다가 시간이 지나며 누운 게 사진에 남았다. A씨가 촬영 당시 살아있었다는 것.
이동식은 결국 범행을 인정하면서 "A씨가 불륜 사실을 알린다고 해서 살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동식이 사진을 촬영할 목적으로 범행했다고 보고 살인 및 시체 유기 등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동식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 상고를 거듭했지만 모두 기각당해 1984년 2월 16일 형이 확정됐다.
이동식은 전처를 살해한 의혹도 받았다. 당시 전처는 10년째 행방이 묘연했는데, 전처의 가족은 이동식이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했다. 다만 수사기관은 전처의 실종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종결했다.
당시 수사반장 서기만씨는 훗날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동식이 내게 실토한 (살인) 피해자가 22명이었고 거기에는 이동식의 전처도 포함됐다"며 "'더 나라 망신시킬 수 없다'며 사건을 빨리 종결하라는 상부의 명이 떨어져 수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