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효율 끝판왕' 백정현, '원태인에 일침' 박진만 감독은 이런 투수를 원했다

스타뉴스 잠실=안호근 기자 2023.05.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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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정현이 25일 두산전 이닝을 마무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삼성 백정현이 25일 두산전 이닝을 마무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9구로 KKK를 하는 것보다 3구로 세 타자를 잡는 게 훨씬 효율적이죠."



속구 최고 시속은 141㎞. 그러나 속도는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는 절대 요건은 아니었다. 백정현(36·삼성 라이온즈)은 박진만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투수의 표본이 무엇인지 몸소 증명해냈다.

백정현은 2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방문경기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동안 87구만을 던지며 5피안타 2사사구 3탈삼진 2실점 호투를 펼쳤다.



이날 백정현에게 유일한 아쉬움은 핵심 타자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 속 충분한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해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지난 1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원태인은 6이닝 1실점 호투했으나 6경기 연속 홈런을 얻어맞았다. 다음날 만난 박진만 감독은 피홈런보다는 이 같은 영향 때문인지 초반 스스로 피해가며 투구수가 많아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온 힘을 다해 투구를 하고 있는 백정현. /사진=삼성 라이온즈온 힘을 다해 투구를 하고 있는 백정현. /사진=삼성 라이온즈
박 감독은 "자신 있는 공을 던지면서도 타자가 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구가 돼야 한다"며 "스트라이크와 볼의 차이가 많다보니 초반에 공 개수가 많다"고 말했다. 맞춰 잡는 피칭에 대한 강조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국가대표 투수에게 아쉬운 점은 36세 베테랑이 가진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올 시즌 반등세를 탄 백정현은 이날 박진만 감독이 강조했던 '이상적 투구'의 표본을 보여줬다.

이날 백정현의 속구 최고 시속은 141㎞, 평균은 138㎞에 불과했다. 160㎞ 불 같은 공을 뿌리는 투수들이 등장하는 KBO리그에 백정현의 구속은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렇기에 올 시즌 부활이 더욱 시사점을 던져준다.

'빠르지 않은 빠른 공'에도 백정현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 공을 절반 가까운 47구나 뿌렸다. 스트라이크 비율은 무려 74.5%(35/47). 잘 제구된 공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산 타자들은 작정한 듯 초구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는 백정현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한 듯 했다.

삼성 백정현. /사진=삼성 라이온즈삼성 백정현. /사진=삼성 라이온즈
다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두산 타자들은 백정현의 초구를 9차례나 공략했는데 이 중 안타로 연결된 건 단 2번이었다.

탈삼진도 단 3개뿐이었다. 원래도 많은 삼진을 잡아내는 유형은 아니었지만 굳이 삼진을 잡아내기 위해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스트라이크 존 주변으로 공을 던지면 두산 타자들의 방망이가 절로 나왔다. 쉽게 쉽게 이닝을 마쳤다.

체인지업은 25구, 커브와 슬라이더는 각각 15구와 14구를 던졌다. 낮게 떨어지는 공으로 삼진 3개(체인지업 2개, 슬라이더 1개)를 잡아냈다. 보더 라인을 넘나드는 칼날 제구력을 뽐냈고 두산 타자들로선 스트라이크와 비슷하게 들어오면 방망이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2021년 14승 5패 ERA 2.63으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통해 4년 38억 원에 삼성에 잔류했지만 지난해 4승 13패 ERA 5.27로 부침을 겪으며 마음고생을 했던 백정현. 아픈 만큼 성장한 것일까. 올 시즌 8경기에서 3승 3패 ERA 2.80으로 완연한 반등세를 그리고 있다. 특히 지난달 30일 KT 위즈전부터 4경기 성적은 2승 ERA 1.04로 압도적이다.

누구보다 과묵한 선수지만 백마디의 말보다 더 힘 있는 솔선수범 투구로 젊은 투수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투수 파트에 대해선 늘 "투수 출신이 아니라"며 말을 아끼는 박 감독이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투수의 길을 걷고 있는 백정현이 누구보다 든든할 수밖에 없다.

백정현(왼쪽)이 이닝 종료 후 좋은 수비를 보인 구자욱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백정현(왼쪽)이 이닝 종료 후 좋은 수비를 보인 구자욱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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