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한 번, 7년째 수혈" 고약한 질병 고통 줄여줄 약 나왔는데...

머니투데이 이창섭 기자 2023.05.2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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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희귀질환 극복의 날' 특집…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조명
반복적 수혈 필요한 질병, 환자들 '부작용' 노출 심각
수혈 의존 줄일 신약 출시… "건보 적용 시급"

"한 달 한 번, 7년째 수혈" 고약한 질병 고통 줄여줄 약 나왔는데...


#7년째 적혈구 수혈을 받는 A씨는 수혈 부작용으로 '철 과잉증'이 생겼다. 심부전과 간부전이 동반돼 이를 치료하는 약도 별도로 먹는 중이다.



#70대 고령 환자 B씨는 수혈받은 지 채 3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혈색소 수치가 바닥을 쳤다.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수혈을 받는다.

#C씨는 혈색소 수치가 7~8g/㎗ 수준으로 떨어져도 버틴다. 빈혈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호흡 곤란까지 오지만 수혈로 인한 부작용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매해 5월 23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다. 극복이란 말이 무색하게 지금도 국내 6000명 환자가 악성 희귀혈액질환으로 고통받는다. 한 달에 한 번 강제되는 수혈. 수년째 반복되는 수혈이 유발하는 부작용과 경제·시간적 손실. 급성골수성백혈병 발병 위험은 덤이다.

악명 높은 이 질환의 이름은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최근 환자의 수혈 빈도를 크게 줄이는 신약이 국내에 도입됐다. 건강보험 미적용으로 사용하는 환자는 많지 않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 극복을 위해서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Myelodysplastic Syndrome·MDS)은 골수 조혈모세포에서 발생하는 악성 혈액질환이다. 조혈모세포에서 성숙한 혈액 세포를 만들지 못해 적혈구 수치가 감소한다. MDS 환자 4명 중 1명은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 2019년 기준 국내에 6010명 환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적혈구 감소는 빈혈을 유발한다. MDS 환자의 89%가 빈혈을 겪는다. 빈혈은 피로감, 호흡곤란, 운동 능력 저하를 유발해 환자의 건강을 위협한다. 철분제나 조혈제 등 일반적인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가 30%나 된다. 나머지 환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효가 떨어진다. 결국 대부분 잦은 수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MDS 환자는 최소 3~4주에 한 번 수혈을 받아야 한다. 증상이 심하거나 적혈구 소모가 빠르다면 이 간격은 2주, 심지어 1주까지 줄어든다. 수혈할 때마다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환자에게는 시간·경제적 부담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수혈 부작용이다. 적혈구 수혈팩 1개에는 200~250㎎ 철분이 들어있다. 장기간 수혈을 받으면 체내에 철분이 축적돼 철 과잉증이 발생한다. 이는 간 기능 장애, 간경화, 당뇨, 심부전 등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철 과잉증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수혈에 의존하는 MDS 환자는 비의존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37.6%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MDS 환자가 수혈받지 않고 참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성인의 혈색소(헤모글로빈) 기준은 12~13g/㎗이다. 이 수치 이하로 내려가면 현기증, 피로감, 두통, 호흡 곤란 등 빈혈 증상이 나타난다. 박정숙 한국혈액암협회 사무국장은 "보통 MDS 환우분들이 혈색소 수치가 7~8g/㎗로 내려갈 때까지 버틴다"며 "수치가 5.7인 환자는 코피로 응급실 가서 수혈받기도 했다. 6.1인 고령 환자는 힘이 없어서 외출 자체를 못 한다"고 설명했다.
"한 달 한 번, 7년째 수혈" 고약한 질병 고통 줄여줄 약 나왔는데...
잦은 수혈은 환자 건강뿐만 아니라 혈액 수급 관점에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다행히 MDS 환자의 수혈 의존을 줄일 신약이 지난해 국내에서 허가를 받아 지난달 17일 판매되기 시작했다. '레블로질'(성분명: 루스파터셉트)이다.

임상 결과, 레블로질 투약군은 24주 시점에서 8주 이상 수혈 비의존 달성 비율이 위약군 대비 약 3배 높았다. 쉽게 말해 매달 적혈구 수혈이 필요했던 환자 3명 중 1명이 레블로질을 투약받자 6개월 중 최소 2달 이상 적혈구 수혈 없이 지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레블로질은 비싼 약가로 환자 접근성이 떨어진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급여 가격은 1회 투여에 약 73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재 환자 단체에서 약가 환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출시 후 혜택을 본 사람은 아직 한 명밖에 없다.

박 국장은 "혈소판 수치 7에서 수혈로 버티던 환자가 레블로질 임상에 참여했다. 투약 후 9~10을 유지하면서 너무 좋다고 후기를 올렸다"며 "레블로질이 출시하자마자 투약하신 이유도 과거의 수혈에 대한 너무 힘든 기억 때문에,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이지현 동아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적혈구 성숙제제(레블로질)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수혈 간격을 3배 이상 늘려줌으로써 수혈 의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며 "특히 고령층이 많은 MDS 환자는 수혈 이외 다른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없는 것도 매우 어려운 점이다. 빠른 보험 급여 적용으로 적혈구 성숙제제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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