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몇 년 뒤 IT 버블이 터진 후에는 벤처투자가 크게 위축됐고 어쩔 수 없이 유료화 사업모델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대표적인 예로 인터넷 채팅에서 나온 디지털 콘텐츠판매모델이었다. PC통신에서 많이 하던 채팅을 네오위즈 세이클럽에서는 웹 기반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동시접속자 수가 2만~3만명이 될 정도로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었는데 그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아바타다. 네오위즈를 공동창업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아이템을 만들어 판매한 것에 대해 "채팅방 아바타에 멋진 옷을 입히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사야 했다. 회사 내에서도 단순한 그래픽 쪼가리에 누가 돈을 내느냐며 전반적으로 부정적이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많은 우려와 달리 아바타는 출시 한 달 만에 실적을 내고 그해 13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 아바타 모델은 마이크로소프트의 MSN 인스턴트 메신저에도 도입될 정도로 국내에서 시작된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사례다.
창업연구의 대가인 로리 맥도널드와 캐슬린 아이젠하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과정은 어린아이가 다른 아이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평행놀이(Parallel Play)와 유사하다고 한다. 실패한 스타트업은 유사 스타트업을 경쟁사로 인식하고 이들과 차별화한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성공한 스타트업은 다른 스타트업이 잘하는 분야를 모방하고 배우는데 주력한다. 모방은 매우 효율적인데 비즈니스모델 설계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아끼면서 제품과 시장 가능성 검증에 주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최근 스타트업에서 검증된 비즈니스모델로는 정기구독, 그룹결제, 부분유료화, 기부 및 후원, 쿠폰 및 기프티콘 등이 있다. 정기구독은 이용자 행동패턴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넷플릭스나 뉴욕타임스가 좋은 예다. 그룹결제는 디자이너그룹을 대상으로 이미지데이터와 툴을 제공하는 어도비나 셔터스톡의 예를 들 수 있다. 부분유료화 성공사례로는 게임아이템 판매에서 영감을 얻어 웹툰을 유료화한 네이버, 카카오 등이 있다. 기부 및 후원으로는 팬덤을 이용한 아프리카TV·트위치 사례를, 쿠폰 및 기프티콘으로는 카카오 선물하기 사례를 들 수 있다.
장병규 의장은 "당시 우리는 절체절명 순간에 별짓을 다 한 것"이라고 했다. 창업자들은 뜻밖의 영역에서 유료화 사업모델 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경제상황도 어렵고 챗GPT 등과 같은 생성형 AI의 위협도 큰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이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찾는 혁신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