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찾아온 김동률의 위로, '황금가면'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3.05.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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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뮤직팜사진제공=뮤직팜


4년 만이다. 물론 김동률도 팬데믹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끝나긴 할까라는 불안과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자문 사이에서 그는 인생관과 음악관에 대한 "전면적 궤도 수정"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리스너로 돌아가는 것과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는 시간이 포함됐다. 하여 댄스 음악부터 클래식까지 가리지 않고 들었고 유학 시절 대위법 숙제를 하다 만든, 클래식을 전공하지 못한 사람이 "지적 허영심을 충족한 곡"이라 자평한 12년 전 'Prayer' 이후 다시 한 번 클래식을 전공하지 못한 한(?)을 피아노 레슨으로 풀었다.

그런 뒤 이제 곡을 만들어볼까 하고 써서 들고온 노래는 팬들의 허를 찔렀다. 그것은 기다려온 사람들은 기대했을, 만드는 사람도 그 기대를 예상했을 후회와 그리움의 발라드가 아니었다. 모두가 힘들게 거친 시기를 거쳐온 만큼 김동률은 오랜만의 싱글을 스스로도 위로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를 주는 음악으로 틀을 잡았다. 그 틀은 곧 구체화 됐으니, 바로 30대 중반 이상 모든 직장인들이 감추고 살았거나 잊고 살았을 꿈과 열정, 동심이다. 사람들에겐 이준익의 '즐거운 인생', 롤러코스터의 '힘을 내요, 미스터 김', 미스터 칠드런의 '쿠루미(くるみ)' 같은 작품들을 통해 제법 익숙할 주제다.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이 그은 출발선에 선 펑키 슬랩(slap) 베이스. 점멸하는 혼(horn)과 변화무쌍한 템포, 장르(뮤지컬)의 핵심을 건드리는 백보컬, 곡이 지닌 감성 또는 감정의 포인트가 되는 코러스. 자체 홍보 자료에선 '퍼즐'과 '그럴 수밖에'를 말했지만 나는 '황금가면'을 듣고 반사적으로 '여행'을 떠올렸다. 김동률의 시작이었던 전람회 데뷔작에서 그 유명한 '기억의 습작' 다음에 있던 노래다. '꿈속에서' 대신 대학가요제에 들고 나가려 했다던 그 곡에서 앳된 김동률은 해리 코닉 주니어와 "생브라스"를 얘기하며 서동욱과 끊임없이 깔깔거리는데, '황금가면'에는 그때 편곡 논의 중에 말한 피아노와 브라스가 뼈대로 심어져 있다.

사진제공=뮤직팜사진제공=뮤직팜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김동률이 설정한 가상의 영웅 '황금가면'은 김종래 만화가의 60년대 동명 히어로물과는(어쩌면 영감은 받았을 수 있을지언정)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그것은 한국과 일본의 합작 애니메이션 '황금박쥐'와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가면라이더'를 더한 것에 더 가깝다. 이는 칸 국제 광고제 3관왕을 자랑하는 CF 감독 존박이 연출한 뮤직비디오와 연결하면 더 분명해진다. 존박은 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답게 군더더기를 싹 걷어낸 압축적 영상 언어로 '어릴 적 승리와 정의를 위해 적을 무찌르던 동심은 온데간데없고 세상이 정해준 역할에 적당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직장인의 자괴감'을 표현한 김동률의 노랫말 내용을 거의 그대로(심지어 템포까지) 옮겨냈다.

그 4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현실에 갇힌 직장인을 연기한 배우 조우진은 '내부자들'이나 '국가 부도의 날'에서 보여준 냉혈한보단 '발신제한'에서 보여준 인간미에 더 가까운 연기로 뮤직비디오를 단숨에 지배한다. 특히 두 번째 코러스에서 가수와 배우가 하나 되는 장면과 절도있는 몸짓에 서사를 담은 브로드웨이 풍 군무를 통해 하이라이트로 치닫는 후반부는 영상의 백미다. 조우진은 그렇게 단조로운 일상의 일탈을 꿈꾼 '쉘 위 댄스'의 스기야마처럼, 교탁 위에 올라가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을 가르쳐준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처럼, 출근길 러시아워를 역행해 내달린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 배리쉬처럼 눈물의 의지로 "서쪽 하늘 끝에서 번쩍이는 섬광"에 당당히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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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자기 곡들로 뮤지컬을 만들어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뮤지컬은 가사가 버라이어티한 아바(Abba) 정도가 돼야 만들 수 있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자신의 노래들은 대부분 이별 노래여서 뮤지컬을 만든다면 극 전체가 이별만 하다 끝날 거라는 농담반진담반 얘기였다. 하지만 그는 뮤지컬을 위한 창작곡을 써볼 생각이 없진 않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 가능성을 열어두었는데, 결국 '황금가면'은 막연했던 창작자의 결심이 구체적인 결실이 된 멋진 사례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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