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청구서 날아왔다"…증자로 'CB 상환' 나서는 바이오

머니투데이 박미리 기자 2023.05.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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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년 제약바이오 CB 발행 3조원 넘어
조기상환청구권 행사 시기, 올해부터 본격 도래
"갈수록 부담 ↑, 선제적으로 자금조달 나서야"

최근 유상증자를 단행하거나 전환사채(CB)를 발행해 2~3년 전 발행한 CB 상환자금을 마련하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CB 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금조달이 본격화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올해 사채권자가 만기 전 현금으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CB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 시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는데, 아직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주가는 2~3년 전 CB 발행 당시 수준을 회복하지 못해서다.

"2~3년 전 청구서 날아왔다"…증자로 'CB 상환' 나서는 바이오


전환가보다 낮은 현 주가
22일 유전자 분석 기반 진단업체 클리노믹스 (1,799원 ▼37 -2.02%)는 446억원 규모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청약 예정일은 오는 8월 1~2일, 납입 예정일은 8월 10일이다. 조달하는 자금 3분의2는 CB 조기상환(300억원) 용도로 분류됐다. 이어 △자회사 설비투자 및 GMP 시설 확충 18억원 △국내외 암 조기진단 사업 운영 90억원 △건강기능식품 관련 운영 및 신상품 개발 12억원 △기타 26억원 등 순으로 쓰겠단 계획이다.



이번에 상환하기로 한 CB는 2021년 7월 발행한 CB다. 당시 클리노믹스는 헝가리·유럽·미국 등 해외시장 확장, 암 조기진단·질병예측 서비스 임상비용 확보를 목적으로 300억원 규모 CB를 발행했다. 만기는 5년, 조기상환은 2023년 7월7일부터 가능하다. 표면·만기이자율이 모두 0%인 만큼 시세 차익을 기대한 투자였던 것으로 해석되나, 현재 클리노믹스 주가(8810원)가 전환가격(1만912원)을 밑돌면서 조기상환 가능성이 높아졌다. 클리노믹스도 증권신고서에서 "현재 당사 주식 시가가 전환가격을 하회해 전환사채 미상환 총액 300억원에 대한 조기상환 청구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원리금상환불이행위험이 낮은 금융상품에 예치해 보관했다가 각각 집행일정에 맞춰 사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만약 전환권이 행사되면 자금은 연구개발 및 기타 운영경비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임플란트 기업 엘앤케이바이오 (8,750원 ▲20 +0.23%)도 최근 366억원 규모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 결정 소식을 전했다. 엘앤케이바이오도 이번에 조달하는 자금 중 150억원은 2021년 발행한 CB 상환에 쓰기로 했다. 이 회사도 당시 CB 표면·만기이자율은 0%였다. 만기는 5년, 조기상환 청구는 오는 7월16일부터 가능하다. 전통 제약사인 유유제약 (4,635원 ▼60 -1.28%)도 최근 245억원 규모 CB 발행을 결정했다. 이중 178억원은 2021년 발행한 CB 조기상환에 쓰기로 했다. 지난달 254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분자진단 전문기업 젠큐릭스 (3,005원 ▼5 -0.17%)는 이중 60억원을 CB 조기상환 자금 목적으로 떼놨다.



헬스케어 지수, 2년여 전 반토막
업계에선 올해 비슷한 사례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2020~2021년 주식시장에서 CB 발행으로 총 3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금리는 대체로 1~2% 수준 아니면 무이자였다. 대개 CB 조기상환 청구는 발행일로부터 2~3년 후 가능하다. 즉 올해가 2020~2021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발행한 3조원 규모 CB가 본격적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 시작하는 해란 얘기다.

특히 현재 대부분의 상장 제약바이오사 주가는 2020~2021년 수준에 못 미친다. 당시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책정한 CB 전환가액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2020년 말 4704.97에 달했던 KRX 300 헬스케어 지수는 2021년 말 3167.56, 2022년 말 2298.81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 소폭 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2421.38(지난 19일 기준)에 불과하다. 사채권자로선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조기상환 청구가 가능한 시기가 오면 주식으로 바꾸기 보다 현금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부터 바이넥스(사채 취득금액 50억원), 아이큐어(96억), 엔지켐생명과학(30억), 휴온스(29억원), 셀리버리(총 55억원·3차례), EDGC(5억원), 지노믹트리(204억원), 신라젠(11억원) 등에서 사채권자의 조기상환 청구로 CB 현금상환이 이뤄졌다.

더구나 바이오사 경우엔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회사가 아직 많다. CB 조기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에 또다시 손을 벌릴 수 있다. 김현욱 현앤파트너스 대표는 "CB 조기상환 청구는 CB 발행 후 2~3년간 기업가치 제고가 안 이뤄졌거나 CB 발행시 본질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았단 의미"라며 "현 상황은 회사 자체 문제도 있지만 시장이 좋을 때 영끌해서 집을 샀더니 고점에 물린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2020~2021년 CB를 발행한 기업들에 눈 먼 돈을 바탕으로 과한 가치로 CB를 발행한 데 대한 청구서가 날아왔다고 본다"며 "하반기로 갈수록 자금조달 부담은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유상증자여도 할 수 있다면 선제적으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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