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하벡 독일 경제기후부 장관(사진 왼쪽)과 라스 아가드 덴마크 기후에너지부 장관이 3월 24일 덴마크-독일 수소 협력 콘퍼런스에 참석한 모습/로이터 = 뉴스1
유럽에서 진행 중인 에너지 관련 논의의 한 축은 재생에너지를 수소 생산으로 연결하기 위한 물리적·제도적 기반을 신속히 만들자는 것이다. 그린수소(물을 재생에너지 전기로 분해해 얻은 수소)로 대표되는 청정수소는 수송과 제조업 탈(脫)탄소화에 필수다. 유럽이 청정연료 부문 경쟁력을 선점하려는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EU의 에너지 정책이 이전과 다른 대목은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가 역내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강력한 동력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에너지 안보 제고를, 기업들은 가격이 치솟은 천연가스의 대안을 바란다. 기후변화 대응 보다 시급하고 직접적인 동력이다.
유럽 입장에서 고무적인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재생에너지 공급이 실제로 더 빨라졌다는 점이다. 영국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EU 전력원 중 풍력·태양광 비중은 2010년(5%), 2018년(15%)에서 지난해 22%로 늘어나며 가스(20%)·석탄(16%)을 처음 넘어섰다. 지난해 가스 값 급등으로 재생에너지의 상대 가격이 더 저렴해진 영향이 컸다. 2010년대까지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재생에너지가 현재는 시장에 의해 늘어나는 추세의 단면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과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재생에너지는 최근 몇년새 에너지 기업에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사업이 됐다.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는 사업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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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중심 전력 공급이 현실화하고 있는 유럽에서 그린수소 생산은 전력망(그리드)의 안정성을 높일 방안으로 부상했다. 전력망 용량 보다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해 남는 에너지를 수소로 저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수소를 만들면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도 극복할 수 있다.
2030년까지 100% 무탄소 전력을 달성할 계획인 덴마크는 2030년께 에너지섬을 지어 풍력발전으로 전력망 용량 보다 많은 전력을 만든 후 수소를 생산해 이 수소를 수출할 계획이다. 에너지섬의 핵심 투자사인 CIP의 톨슨 스멧 부회장은 지난달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시스템을 갖출 경우 "풍력 에너지가 간헐성을 갖는 전력원이 아니라 기저부하 전력(하루 24시간 사용하는 전력)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전력망에도 안정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런 동력 속에 유럽 국가간 협력도 늘어나고 있다. 독일과 덴마크가 그린수소 파이프라인 공동 건설 계획을 지난 3월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두 국가는 덴마크 서부에서 독일 북부로 이어지는 육상 수소 파이프라인을 지어 늦어도 2028년 전 이 파이프라인을 통한 첫 수소 거래를 달성할 계획이다.
로이터=뉴스1
그러나 지난해 도입된 미국 IRA가 그린수소 상용화 전망에 결정적 변곡점을 만들었다. IRA는 청정수소 생산 1kg당 최대 3달러의 보조금을 2032년까지 준다. 특히 IRA가 재생에너지 전기(kWh당 2.6센트) 및 청정수소 생산에 함께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청정수소 중 그린수소에 가장 많은 투자가 몰릴 가능성이 있다. 재생에너지 개발 기업이 그린수소 생산과 사업을 연계할 유인을 높여서다. 세계은행은 "IRA 조항은 여러 면에서 그린수소 생산업체에 관대하다"며 "재생에너지 전기로 만든 그린수소 생산업체는 두 가지 세액공제를 모두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주요국 정부 지원 속에 그린수소 시장은 급성장이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킷에 따르면 전세계 그린수소 시장은 2022년 6억7600만 달러에서 2027년 73억1400만 달러(약9조6000억원)로 61%의 연평균 성장률이 전망된다. 특히 리서치앤드마킷은 "모빌리티가 그린수소의 가장 중요한 최종 사용 산업"이라며 "수소는 화석 연료보다 단위당 에너지가 3배나 높기 때문에 기차, 비행기, 트럭, 버스, 심지어 해상 운송에도 이상적"이라 했다.
현 시점에서 예상하는 것 보다 그린수소 생산이 더 빨리 늘어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용이 이미 상당히 하락한 유럽에서는 수전해와 저장 기술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느냐가 관건이다. 2020년대에는 주로 육상풍력과 태양광 발전 기반 그린수소 생산이 이뤄질 걸로 예상되나 2030년대엔 그린수소 단가를 더 낮출 수 있는 해상풍력 기반 그린수소 생산설비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덴마크 주요 에너지 업계 단체들이 통합해 설립된 그린파워덴마크의 얀 힐레버그 부대표는 지난달 27일 머니투에이와의 인터뷰에서 "덴마크는 올해 소규모의 그린수소 생산을 시작해 2030년까지 4~6기가와트(GW)의 재생에너지 기반 수전해 시설을 만들 계획인데, 이 목표는 최소이고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앞으로 2~3년간 시장의 수요와 기술의 변화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실제 생산규모가 달라질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