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국내 메모리 업계는 느긋한 분위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입장 표명이 어렵다"고 밝혔지만, 국내 기업과 경쟁 기업의 격차가 이미 어느 정도 벌어졌다고 본다. 첫 번째 차별점은 기술력이다. 국내 주요 기업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낸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낸드는 쌓는 단 수가 높아질수록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데,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은 200단 이상의 낸드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 번째 차별점으로는 양사의 실적 부진 장기화로 실제 생산 능력이 떨어져 있다는 점이 꼽힌다.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은 이미 합작법인(JV) 형태로 생산라인을 공동 운영하고 있지만, 지난해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 키옥시아는 올해 1분기에도 1조 7000억원대의 적자를 냈으며, 웨스턴디지털도 5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업계는 이 추세대로라면 시장이 안정화되는 2024년 중반기까지 손실이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SK하이닉스도 합병의 걸림돌이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최대 주주인 한미일 컨소시엄에 4조원 정도를 투자했으며, 정확한 보유량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도 연초 "우리가 보유한 지분을 보통주로 전환하면 40% 정도를 보유한 주주가 된다"라고 언급했다. 만일 2·4위의 합종연횡이 불리한 것으로 판단되면 민감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합산 점유율을 계산하면 삼성전자를 웃도는 수치지만, 실제 생산 능력이나 재무 상태 등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것은 과도한 우려"라며 "고객사도 점차 고도화된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세계 최고층·최대 용량을 확보한 국내 기업이 경쟁에서 앞서 있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