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신해철 수술 집도의 강모씨가 1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25일 오후 서울 광진구 동부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강모씨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만 적용해 금고형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6.11.25 스타뉴스/뉴스1
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시행되기까지 남은 6개월 동안 의료법 재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며, 현재의 의료인 면허 취소법이 공포되면 바로 '헌법소원'을 낼 것"이라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헌법소원(憲法訴願)이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공권력으로 침해받았을 때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그 침해된 기본권의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를 말한다. 박태근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은 "이 법안은 금고형으로 단순히 면허가 취소되는 것뿐 아니라 형 집행이 종료된 후에도 최소 2년간 의료인으로서의 업무 수행이 금지된다"며 "치과의사로서의 의료행위 자유를 완벽하게 말살하는 위헌행위"라고 비판했다.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2021년 2월 2일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 등 10명이 대리 수술 논란으로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금고형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금고형'은 유죄로 판결받은 범죄자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으로, 형사 처벌 가운데 비교적 약한 '벌금형'보다 강도가 높은 범죄가 금고형에 해당한다.
법조계 "금고 이상 형 범죄 중 가벼운 죄 없어" 법조계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은 '가볍지 않은 범죄'로 인정된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전문직 종사자 대다수는 이미 면허 취소법에 저촉받아왔다. 특히 변호사는 변호사법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변호사는 면허가 취소되는 것뿐 아니라, 죄가 금고형보다 가벼워도 대한변호사협회 사이트에 실명이 공개된다. 금고 미만의 형에는 벌금형, 과태료, 견책, 정직 처분 등이 그 예다.
반면 현행 의료법상 의사는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이에 여론을 의식한 의료계는 한발 물러서서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한해서는 면허를 취소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우리 협회는 특정 강력범죄, 성폭력 범죄 등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큰 범죄에 대해 의료인 면허 결격사유를 확대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모든 범죄가 아닌, 금고 이상의 형 중에서도 '강력범죄' 또는 '중범죄'로 불리는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만 면허를 취소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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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견이 반영된 '중재안'이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현안 민(民)·당(黨)·정(政) 간담회'에서 제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이 내놓은 중재안에 따르면 의사 면허 취소 대상은 금고 이상의 형(선고유예 포함)을 선고받은 '모든 범죄'에서 '의료 관련 범죄, 성범죄, 강력 범죄'로 한정하자는 것이다. 또 의사 면허가 취소된 후 재교부까지의 기간을 10년(원안)에서 5년(중재안)으로 절반을 깎자는 내용도 들었다. 이는 의료법 개정안에서 명시한 의사 면허 취소 사유를 '완화'하자는 제안이다. 이에 대해 이필수 의협회장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료현안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 정책위의장,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제정특위원장. 2023.04.11.
김민호 변호사는 "그간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어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했고, 의협의 자정 능력도 부족해 입법 단계까지 온 것 같다"며 "국민이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원안대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의료법 개정안의 원안대로라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모든 의료인이 면허 취소 대상에 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또 "법조인·의료인에 대한 테러 행위에 대해 가중처벌 법안이 계류 중이고, 법조인과 의료인의 기준 모두 동일하게 설정했다"며 "그런데 정작 의료인 면허 취소법에 대해선 (중재안처럼) 의사 단체가 이익단체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협 '자정 시스템' 자구책에도 법조계 "의료법에 명시부터" 그런데도 의료계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의 '한의사의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 합헌' 판결로 사이가 껄끄러웠던 한의사 단체에도 손을 내밀어 법안을 공동 저지하겠다는 전략을 구상했다. 16일 박태근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은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치과의사·한의사 등 의료인 누구에게나 다 해당한다"며 "대한한의사협회와도 헌법소원, 의료법 개정에 공동 대응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레 제안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 황만기 부회장은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조정될 필요가 있다"면서도 "우리는 법안의 취지에는 동의하기 때문에 복지부와의 세부 협의와 조정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만기 부회장은 "흉악 범죄 등으로 면허가 취소되는 것엔 당연히 동의할 수 있지만, 스쿨존 등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 특례 등으로 인한 면허 취소에는 반대한다"며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현재 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건의약 전문가 단체(대한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에게도 자체 징계권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가 개최한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가 의사면허 취소법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한편 의료인 면허 취소법을 줄곧 반대해온 대한의사협회는 그 대안으로 협회의 '자정 시스템'을 내놨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 면허 관리에 대한 의료인 단체의 자율정화 기회를 부여하고, 충분한 계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며 "보건복지의료연대와 강경 연대해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의사 면허 취소법을 절대 저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김경태 부대변인은 "협회 자체적으로 징계위원회를 갖춰 죄를 지은 의사에게 자율정화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호균 변호사는 "의료법에 의료인의 결격사유부터 먼저 만들어놓은 다음, 변호사협회처럼 의협에 징계위원회를 차리고, 복지부가 그걸 위임하면 되는 것"이라며 "의협에선 결격사유 자체를 법안에 만들지 말자면서 어떤 기준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