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
‘슬픔의 삼각형’은 ‘크루즈판 ‘기생충’’이란 소개가 나올 만큼 자본주의로 인한 계급사회와 불평등을 전면에 내세워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다룬다. 영화 초반, 모델 오디션을 위해 모인 남자 모델들에게 리포터가 던지는 주문부터 돈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는 현대사회를 노골적으로 풍자한다. “발렌시아가 표정을 보여줘요. 자, 이제 저렴한 옷으로 갈아입었어. H&M이에요.” 모델들은 값비싼 명품 브랜드인 발렌시아가의 모델이라고 가정할 땐 세상 모든 것을 거머쥔 듯 도도하고 거만한 표정을 짓다가 값싼 스파 브랜드인 H&M의 모델이라고 할 땐 누구에게나 호감을 갈구하듯 무해하고 순진한 미소를 짓는다. 뒤에 이어진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장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흘러나오며 세상 도도한 표정의 모델들이 런웨이를 거니는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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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들의 위선이 드라마틱하게 전복되는 순간은 거센 풍랑으로 배가 침몰할 것 같은 위기 상황에서 극적으로 그려진다. 샴페인과 캐비어, 송로버섯 등 최고급 만찬을 즐기던 부자들이 극심한 뱃멀미를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분수처럼 구토하고, 고급 화장실 바닥에서 역류하는 토사물과 배설물 위를 굴러다니며 토악질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전복적이다. 술에 진탕 취해 러시아 사업가와 함께 마르크스와 레닌을 들먹이며 논쟁하는 선장 토마스(우디 해럴슨) 대신 헤드 승무원 폴라(비키 베를린)를 비롯한 승무원들이 전전긍긍하며 승객들의 안전을 도우려는 모습도, 승객들이 싸지르는 토사물과 배설물을 묵묵히 치우는 존재가 작업복을 입은 유색인종 노동자라는 점도 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가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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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섬’에 이르면 영화 속 세계관은 모든 것이 뒤집어진다. 난파된 배에서 겨우 살아남은 여덟 명의 사람들은 백인 부자, 백인 서비스 노동자, 칼과 야야 커플, 유색인종 노동자로 구성되는데, 이들이 난파된 섬에선 자본을 중심으로 하던 계급도, 성별도, 인종도 무의미하다. 롤렉스 시계와 보석이 힘을 잃는 대신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불을 피울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3부에서야 온전히 존재감을 내비치는 화장실 청소 담당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이 섬에서 살아남는 생산수단으로 순식간에 권력을 장악하고 일종의 모계사회를 구축하는 장면은 묘한 통쾌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무인도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그로 인해 새로 형성되는 계급사회의 모습은 대단히 독창적이라 느껴지진 않지만, 동남아시아계 여성 노동자 애비게일을 내세워 기존의 사회에 완전히 대치되는 사회를 탄생시킨 건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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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삼각형’은 엔딩에서 기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 앞에 선 애비게일의 선택을 보여주지 않은 채 끝을 맺는다. 관객은 분노와 울분과 결의 등으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는 애비게일의 표정을 보며 강렬한 여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애비게일의 선택이 무엇이든 차치하고, 이 사회에 통렬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슬픔의 삼각형’은 곱씹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147분의 러닝타임이 그리 지루하지 않다. 5월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덧1-영화 제목인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은 찌푸릴 때 미간에 주름이 생기는 영역을 뜻하는 뷰티업계 용어로, 외적인 미모에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사회의 세태를 집약한다.
덧2-야야 역을 맡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배우 샬비 딘은 지난해 8월 세균성 패혈증으로 유명을 달리하며 이 영화가 유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