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상은 다른 회사들도 동일하다. 미국에 본사를 둔 진단키트 업체 엑세스바이오 (8,890원 ▼590 -6.22%)는 올 1분기 흑자 기조를 이어가긴 했으나, 매출(2513억원)이 전년동기 3분의1, 영업이익(568억원)이 8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초 최대주주가 진승현 창업주에서 루하프라이빗에쿼티로 바뀐 랩지노믹스 (3,995원 ▼65 -1.60%)는 올 1분기 매출(147억원)이 1년 전의 5분의1, 영업이익(11억원)이 50분의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진단키트 업체들의 실적 악화는 올 2분기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5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11일 국내 코로나19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다음달 1일부터 방역조치 대부분이 해제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입소형 감염취약시설을 제외하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확진자는 7일격리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즉 이번 1분기보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요가 줄어 실적 악화가 지속될 것이란 의미다. 진단업계 한 관계자는 "또 다른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없는 이상 최근 2~3년간 올린 실적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현금을 많이 확보하고, 코로나19 기간 동안 국내외 대형병원, 연구기관 등에 진단장비를 많이 까는 식으로 인프라를 확대한 진단회사들만 살아남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일부 업체들은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준비했다. 씨젠 (23,200원 ▼900 -3.73%)은 분자 진단장비 등 인프라를 바탕으로 호흡기 바이러스, 소화기 종합진단, 인유두종바이러스 등 비(非)코로나19 진단시약의 지속 성장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올 1분기 코로나19 진단시약 매출이 줄었지만, 코로나19 이외 진단시약 매출(463억원)이 크게 늘었다. 씨젠 관계자는 "비코로나 제품은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동안 7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며 "이 기간 동안 전년동기 대비 매출 성장률은 평균 35%였다"고 강조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 (11,930원 ▼120 -1.00%)는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올초 미국 진단기업 메리디안바이오사이언스를 약 2조원에 인수하는 등 대규모 M&A(인수합병)를 단행해왔다. 이를 통해 미국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겠단 전략이다. 스탠다드 M10(코로나19·결핵·독감 등 다양한 질병 동시 검사하는 신속 분자 진단기기), C10(인체 혈액 내 간 기능, 전해질 등 수치 정량적으로 진단하는 검사 플랫폼)과 같은 신성장 동력도 잇따라 선보였다. 한송협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수혜를 입은 진단기업 중 가장 명확한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제시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