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풍력 기업, 환경단체와 굴·홍합 연구 나선 이유

머니투데이 코펜하겐(덴마크)=권다희 기자 2023.05.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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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의 경제학]④기후변화 대응 넘어 생물다양성으로

편집자주 [편집자주] 지난달 23~24일 유럽 풍력협회 윈드유럽·덴마크 스테이트오브그린·그린파워덴마크가 주최해 덴마크에서 열린 프레스 투어 및 같은 달 25~27일 코펜하겐에서 열린 윈드유럽 콘퍼런스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국에 함의를 줄 수 있는 내용들을 추렸습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안보 제고라는 정치적 동력·에너지 전환으로 산업 활로를 찾겠다는 경제적 동력이 맞물려 강력한 변화가 일어나는 중입니다. 올해 이 곳의 최대 화두는 풍력발전 확대를 위한 '공급망'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였고, 이 공급망 구축을 지배하는 의제가 '지속가능성'이었습니다. 추상적 구호가 아닌 시장에 의해 가속화하는 지속가능성입니다. 이 공급망에 속한 한국 기업들도 직면하게 될 흐름의 일부인만큼, 이 곳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세계 최대 풍력 기업, 환경단체와 굴·홍합 연구 나선 이유


기후 위기·에너지 위기·생물다양성 위기 이 세 가지가 교차로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을 보호해야 하지만 동시에 풍력 터빈 건설을 멈출 수 없습니다. NGO·정부·정치·업계가 함께 협력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롭 제튼 네덜란드 기후 및 에너지부 장관(4월 25일 윈드유럽 장관급 회의)

유럽 기업들이 현재 매진하는 과제는 기후변화 대응을 지나 '생물다양성' 복구다. 기후변화 대응이 교토의정서 이후 탄소 가격제 도입·재생에너지 확대·전기차 상용화 등 제도와 산업의 구조적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면, 생물다양성을 기업의 이윤 추구와 조화시키는 건 상대적으로 새로운 영역이다.



기업 중에서도 해상풍력 단지를 개발하는 기업들에게 생물다양성은 특별히 중요하다. 일차적 이유는 입찰에서의 우위다. 유럽의 더 많은 국가들이 생물다양성을 입찰 기준에 포함시킬 전망인 만큼 이에 대한 역량을 갖출수록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입찰에서의 가점이 다가 아니다. 해상풍력 개발 사업을 장기적으로 하려면 해양생태계와 '공존'하는 게 필수라는 평가를 업계 최상위 기업들은 내리고 있다. 당장은 비용이 들지만 생태계 정보를 얻고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오래 경쟁 우위를 갖고 사업을 하는 길이란 판단에서다. 단지 마케팅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많은 수익을 거두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생물다양성 확보다.



 덴마크 뉘쾨빙 모르스 소재 DTU아쿠아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오스테드, WWF, DTU아쿠아의 공동연구/사진=권다희 기자 덴마크 뉘쾨빙 모르스 소재 DTU아쿠아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오스테드, WWF, DTU아쿠아의 공동연구/사진=권다희 기자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업체 오스테드, 환경보호단체와 해양복원 연구

환경보호단체 WWF(세계자연기금)와 해양생물 공동연구에 나선 덴마크 에너지 기업 오스테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상풍력단지를 개발한 오스테드는 지난해 10월부터 WWF덴마크, DTU(덴마크 공과대학교)의 DTU아쿠아(덴마크 국립 수산자원 연구소)와 덴마크 해역 해양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달 24일 프레스투어 중 찾은 덴마크 북부 마을 뉘쾨빙 모르스 소재 DTU아쿠아 연구소에서는 유럽 굴(Ostrea edulis)과 홍합의 한 종류인 털담치(Modiolus modiolus)를 배양하는 연구가 한창이었다. 이 두 종은 한때 덴마크 인근 북해에 풍부했지만 남획, 기후와 수질변화 등으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문제는 이런 굴·홍합 껍질이 생물학적 산호초를 만들고, 이 산호초가 다른 해양 생물의 번식지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서식지 조성자' 격인 종들이 멸종위기에 처하면서 해양생태계 전반의 위기가 초래 됐다는 점이다. 오스테드·WWF·DTU는 이 굴과 홍합 종을 번식시켜서 생물학적 산호초를 다시 구축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오스테드가 돈을 들여 생물다양성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는 뭘까. 오스테드의 캐서린 헤밍슨 생물다양성 선임 전문가는 이날 기자단 대상 발표에서 "생물다양성을 포함한 지속가능성이 정부의 해상풍력 조달(입찰)에서 핵심 기준의 일부란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더 근본적인 필요를 부연했다. 그는 "(화석연료 사업을 하던) 오스테드는 지난 10년간 전적으로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둬 왔고 2040년까지 전체 공급망 순배출량 제로라는 목표를 향한 궤도에 있다"며 "그러나 이 전환 과정에서 기후변화만이 해결해야 할 유일한 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육상 생물종의 약 70%가 사라진 글로벌 생물다양성 위기에도 직면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오스테드는 2030년 이후부터 우리가 관리하는 모든 재생에너지 자산에서 순(net) 긍정적 다양성 영향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예컨대 해양풍력발전 단지를 지을 때 해양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해양 서식지 복원 등 추가적인 긍정적 효과를 조성하는 데까지 나서겠다는 의미다.

'순 긍정적 영향'이란 기업의 이윤 추구와 환경보호를 같은 방향에 놓는 개념이다. 환경에 대한 적극적 행보가 당장은 돈이 들어도 남는 게 더 많은 투자 일 수 있다는 관점을 드러낸다. 사회적 저항을 막고, 생물다양성에 대한 규제가 늘어날 때 경쟁사 대비 가질 수 있는 우위가 예상가능한 편익이다. 오스테드 덴마크 해상풍력 부문 관리 담당자 소렌 셰르피그가 같은 자리에서 "입찰과정을 현명하게 개선해 (가격만 반영하는 대신) 생물다양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한 것도 이 부문에서의 경쟁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오스테드의 방향을 보여준다.

현재는 데이터를 쌓으면서 '생물다양성 측정 방법론'을 구축하는 단계다. 헤밍슨 전문가는 "해상풍력 발전 단지 자산을 조사할 때 생물다양성 상태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또 생물다양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입찰 과정에서 가격 이외의 경쟁력 있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생물다양성을 측정한 이후에는 실제로 어떻게 다양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에퀴노르가 자사 해상풍력 단지에서 조류 행동 연구를 위해 설치한 부표 및 부표의 CCTV/출처=에퀴노르 에퀴노르가 자사 해상풍력 단지에서 조류 행동 연구를 위해 설치한 부표 및 부표의 CCTV/출처=에퀴노르
물고기·새 움직임 분석…'공존'이 기업에게 중요한 이유

데이터 축적은 생물다양성 분야 경쟁력 제고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집중하는 분야다. 연구에 기반한 누적된 데이터를 확보한다면 생물다양성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를 만들거나 정확한 규제를 위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역량을 보유한 기업에게 유리하다.

노르웨이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에서 지속가능성 전략을 담당하는 하나 비귬 해상풍력 컨셉 리더는 같은 날 오전 별도의 기자단 대상 발표에서 자사의 해양생태계 조사 내용을 소개하며 "데이터를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업계 전체가 해당 지역 생태에 대한 깊은 지식을 얻게 된다"고 했다.

에퀴노르는 2017년 가동을 시작한 세계 첫 부유식 해상풍력 단지 하이윈드 스코틀랜드에서 생물체가 바다에 흘리는 유전물질인 환경 DNA(eDNA)를 분석해 풍력단지가 어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지난해 노르웨이에 세운 하이윈드 탐펜에서는 풍력 발전기에 레이더를 달아 새가 풍력 터빈에 충돌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새의 움직임을 연구한다. 부표에 CCTV를 부착하는 방식으로도 새의 움직임을 살핀다.

어촌·주민 수용성 측면에서도 생태계와의 공존은 핵심이다. 산유국이면서 어업을 핵심 산업으로 둔 노르웨이의 국영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가 50년간 해양 석유·가스 프로젝트를 해 오며 체득한 점이다. 비귬 리더는 "우리는 해양산업 및 수산업과 공존한 오랜 경험을 갖고 있다'며 "초기단계의 대화와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정말 많이 경험했다"고 전했다. 어종이 풍부하고 민감한 조업 지역을 피하는 등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해양환경을 조사한 게 그 예다.

RWE가 시험 중인 '검은 블레이드'/출처= RWERWE가 시험 중인 '검은 블레이드'/출처= RWE
풍력발전기 날개 검은색으로 바꾸면 새가 덜 부딪힐까?…RWE의 실험

풍력발전이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더 구체적인 단위에서도 이뤄진다. 독일 RWE리뉴어블이 네덜란드에서 2021년 9월부터 2년간 시행 중인 '검은색 블레이드' 연구가 대표적이다. 풍력 터빈 날개를 검은색으로 칠하면 새들이 터빈 사이를 안전하게 이동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는 연구다. 검은색이 하늘의 색과 대비를 높여 새들이 풍력 터빈을 더 쉽게 알아채 충돌을 피할 수 있을 거란 가정에서 출발했다.

이 연구는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질 때 블레이드가 받는 영향도 살펴본다. 검은색 페인트가 열을 흡수해 날씨가 더워지면 블레이드 온도가 상승하고 과열될 수 있어서다. 기술적 효과 외에 '사람들이 검은 터빈을 어떻게 보는가' 등 경관에 미치는 영향도 알아보고 있다.

폴 콜데빈 RWE 리뉴어블 북유럽·폴란드·발트해 연안 개발 부문 총괄 부사장은 같은 달 23일 기자단 대상 발표에서 검은색 블레이드 실험을 예로 들며 역시 '순(net) 생물다양성 긍정적'이란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가 운영 한 후에 어떤 식으로든 운영하기 이전보다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어야 한다"며 "이것이 전반적인 전략"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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