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바삐 움직였지만 이튿날 국내 금융당국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금융위원회든 금융감독원이든 FRC 관련 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국내 금융권의 FRC 익스포저 점검도 없었다. "이미 JP모건이 인수하기로 해서 별도로 조사하지 않을 예정"이라는 게 금융당국에서 나온 말이다. 반면 불과 2개월전 SVB가 폐쇄됐을 때 금융위, 금감원은 각각 위원장, 원장 주재 임원회의를 열고 시장을 점검했다.
게다가 JP모건은 FRC 예금은 인수하지만 주식과 채권은 인수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용평가사인 S&P는 FRC 신용등급을 지난 3월15일 'A-'에서 'BB+'로, 나흘 후인 19일 'B+'로 잇따라 낮췄다. FRC는 3월초까지만해도 투자등급 은행채를 찍었던 곳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위기의 내성화' 과정을 겪고 있는게 아닐까 우려된다. 국내 금융시장이 튼튼하다고 하지만 위기의 징조들은 서서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특히 체력이 약한 곳은 징조가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예가 저축은행 업계가 1분기 손실을 기록, 9년만에 적자전환했다는 점이다. 79개 저축은행들은 1분기 600억여원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말 예금금리가 갑작스럽게 뛴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저축은행은 금융권의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카드사도 고금리 불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분기 적자를 기록하진 않았지만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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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도 안심할 순 없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는 순이익이 소폭 늘었지만 이자이익은 감소했다. 그동안 은행권의 버팀목이던 '이자장사' 역시 순탄치 않음을 보여줬다. BNK·DGB·JB금융 등 3대 지방금융지주 순이익은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는 2021년 하반기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도 그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려 0.5%였던 기준금리는 2년도 안돼 3.5%로 3%포인트 올랐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세는 꺾였고 시장금리도 더이상 오르진 않고 있다. 하지만 '고물가', '고금리'는 이제 시작이다. 하반기엔 고금리, 고물가가 가져올 부실이 금융권을 본격적으로 덮칠 수 있다. 9월엔 코로나19 비상사태로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도 마무리된다. 이미 높아진 연체율이 가파르게 뛸 수 있다.